'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조회 수 3169 2002.02.19 07:23:11
토미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창문을 열고 찬 새벽공기를 느끼며 따뜻한 헤이즐럿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앉았습니다.

  '그 해 겨울, 지리산 이름 모를 골짜기에 내가 사랑했던 여인과 내가 결코 미워할 수 없었던 한 친구를 묻었다. 그들은 가고 난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 무정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으므로...'

  예전에 본 '여명의 눈동자'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림(박상원)이 하는 독백獨白입니다.
  갑자기 이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는 사람에게 쓴 편지에 썼던 말인데... 지금 생각이 나네요.
  그 사람이 이번에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거든요.

  책이 꽂혀 있는 책장冊欌을 보다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책을 펼치다 보니 전에 스크랩해서 넣어둔 신경숙님의 책 소개가 나옵니다.

  지난해 읽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첫 장을 펼치는데 바싹 마른 나뭇잎 한 장이 툭 떨어진다. 너무 말라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으스러지기까지 한다. 나뭇잎이 끼여 있던 자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무서운 적 암癌과 용감히 맞서 싸우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있는 동생 피터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제목 그대로 루게릭 병에 걸린 모리라는 노은사와 함께 나눈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제자 미치 앨봄이 정리한 글이다. '정리한'이라고 써놓고 보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지금도, 어제도, 오늘도 유동적으로 늘 흘러가는 이 생의 순간들을 어떻게 언어로 정리할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 그렇다 해도 미치 앨봄은 죽음 앞에 선 노은사老恩師의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쓰듯이 정리해놓았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지만 쓸쓸하지 않고 괴롭지 않다. 때로는 이 사람이 정말 죽음 앞에 선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인간이 최후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화요일마다 만나는 모리의 사랑, 일, 공동체사회, 가족이 나이 든다는 것, 용서나 후회의 감정, 결혼과 같은 인생에 대한 사려깊은 강의를 듣다보면 인간이 참 존엄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이 보여주는 생에 대한 열망은 간절하고 쓰라리나 그걸 통해 읽는 이는 오히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며 소소昭蘇한 기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얻어 가는 과정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대목인가가 파악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서로의 존재가치를 드높여 각자의 인생을 아름답게 상승시키는 풍경을 목격하게 된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외투 속에 들어있는 손수건처럼, 왼손 옆의 오른손처럼, 직선 옆의 곡선처럼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과 다름이 없고 보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언제나 가슴에 끼고 살아가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언제든지 불시에 죽음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나직나직하게 알아듣기 쉽게 그걸 껴안는 방법을, 죽음까지도 인생의 장으로 받아들여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헛되지 않게 보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배려하고 활발하게 감정을 나누는 인간. 그리하여 작별인사의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드는 인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은 그런 인간을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쪽지를 끼워 놓았는데, 한 번 적어 보겠습니다.

  '자네가 말하라구, 내가 들을 테니.'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었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썼다. 행복하게도 그런 상상 속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갑자기 나는 손을 내려다 모았다. 손목시계를 보고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화요일이었다.

  '어제 누군가 내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더군.'
  선생님은 내 어깨 너머로 벽걸이를 보면서 말했다. 그것은 친구들이 그의 70번째 생일에 직접 바느질해서 만들어준 희망의 말이 담긴 퀼트였다. 천조각 하나하나에 다른 메세지가 담겨 있었다. '꿋꿋하게 그 길로 계속 가게. 아직 정상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구. 모리. 정신건강에 있어 항상 넘버원 !'
  '무슨 질문인데요?' 내가 물었다.
  '죽은 후에 잊혀질까봐 걱정스럽냐더군.'
  '그래요? 그런가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 내겐 친밀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참 많네. 그리고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뜬 후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방법이지.'

  '미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리느냐고 물었지. 하지만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줄까?'
  '뭐죠?'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소근거리는 듯 낮아졌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이라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게 바로 그거였어. 소위 '정신적인 안정감' 이 가장 아쉽더군. 가족이 거기서 나를 지켜봐 주고 있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이 지. 가족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어. 돈도. 명예도.' 선생님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덧붙였다.
  '일도.'

  '우리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타인만이 아니라네, 미치, 우린 자신도 용서해야해'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용서해야 하네.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지 않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지. 나같은 상황에 빠지면 그런 태도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네.'
  '자신을 용서하게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

  '선생님이 어떻게 더 젊고 건강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요.'
  '아니, 부러워한다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헬스클럽에 가거나 수영을 하러 갈 수 있는 게 부럽지. 혹은 춤을 추러 가거나 하는 것이. 그래, 춤추러 갈 수 있는 것이 가장 부러워, 하지만 부러운 마음이 솟아오르면 난 그것을 그대로 느낀 다음 놔버린다네. 내가 벗어나기에 대해 말했던 걸 기억하지? 놔버리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그건 부러운 마음이야. 이젠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야겠다.' 그런 다음 거기서 걸어나오는 거지.'

  '어떻게 질투가 나지 않으세요?'
  '미치. 늙은 사람이 젊은이들을 질투하지 않기란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받아들이고 그 속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 중요하지. 자네는 30대를 살고있지. 나도 30대를 살아봤어. 그리고 지금 나는 78살이 되는 때를 맞이했네.'
  '살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 발견해야 되네.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한데 나이는 경쟁할만한 문제가 아니거든.'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지.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은 다 거쳐왔으니까, 그때가 어떤지 알지, 어린애가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어린애인 게 즐거워, 또 현명한 노인이 되는 것이 적절할 때는 '현명한 어른'인 것이 기쁘네.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이해가 되나?' '이런데 자네가 있는 그 자리가 어떻게 부러울 수 있겠나. 내가 다 거쳐온 시절인데?'

  '죽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야, 우리가 죽음을 두고 소란을 떠는 것은, 우리를 자연의 일부로 보지 않기 때문이지. 인간이 자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네도 잘 알듯이 죽음은 전염되지 않아. 삶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죽음도 자연스럽다네...
  그것은 우리가 맺은 계약의 일부라구.'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지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 있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이죠.
  저도 쓰면서 읽어보니 새롭네요.

  날이 많이 춥네요. 추운 날씨에 고생하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의 하루가 빛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그럼...

        애정愛情에는 한 가지 법칙法則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幸福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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