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제목의 시를 적어보았습니다.

  금방 봤는데도 또 보고싶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곁에 얼굴을 맞대고 숨을 나누고 있는데도 간절함이 사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쁨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 같기도 하고 아픔 같기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을 흔드는 그대! 당신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서점에 나가서 산 冊중에 구효서의 '인생은 지나간다'라는 제목의 수필집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제 느낌은 적지 않겠습니다.
  다 정리가 되지 않았거든요... 다만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본문의 일부만 적어드리겠습니다.

  <엘란트라 GLS.>

  6년 전, 이 소형 승용차를 구입하겠다고 했을 때 '가회'(큰아이 이름이다)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 우리도 자가용을 갖게 되었다는 감격과 자부심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니었다. 걱정 때문이었다.

    "그거 사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여덟 살짜리 아이의 걱정치고는 뭐랄까, 대견하다고 해야할지, 걱정도 팔자라고 해야할지 몰랐다. 눈가를 살짝 적시는 눈물 정도가 아니었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구슬(혹은 닭똥)같은 눈물이 툭 떨어졌었다.

  참, 이거.

  이 애가 집안의 경제를 그토록 걱정했단 말인가. 전업 소설가의 보잘것없는 벌이를 이미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주 다각적인 측면에서 소름이 끼쳤다.

  '승용차 정도는 살 수 있어'라고 얼른 말해야 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과연 그걸 어떻게 살 수 있다는 건지 아이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사려고 엄두를 냈는지 나도 모를 지경이었으니까.

  '임마, 그쯤은 살 수 있어'라고 호기 있게 말하기엔 허세 같았고, 실제로 허세였다. 허세를 부리지 않고는 아이에게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서글퍼서 혼났다.

  그런데 다행히도(다행히도?) 아이의 눈물은 집안 경제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소신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소심함과 고지식함이 그 원인이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바는 아니지만 '가회'는 그때 슈퍼에 가서도 얼른 먹고 싶은 것을 집어 들지 못했다. 제 어미가 "골라 봐"라고 말해도 진열대를 흘낏거릴 뿐이었다.

  "이거?" 참다못해 제 어미가 아무 거라도 집어 내밀면, "비싸잖아요"라고 톡 쏘았다. 그리고선 조그만 놈이 일일이 가격표를 확인했다. '맛'보다는 '가격'을 우선시하던 아이였다. 과자 하나 사려면 솔찮게 시간이 걸렸다. 제 어미는 매번 속이 터졌다.

  한번은 동생아이('지회'다. 여기다 제 이름을 써 주지 않으면 이 놈은 분명 나한테 뭐라 하고도 남을 놈이다)가 짧은 다리로 겁 없이 두발 자전거를 타다가 된통 넘어졌다. 공원 잔디밭 저쪽 너머에서였다.

  "얼른 가서 일으켜 줘라!"라고 내가 말했다. '가회'는 달려갔다. 그 먼 잔디밭을 비잉 돌아서. 잔디밭을 곧장 질러가면 좋으련만 잔디밭에 '잔디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서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가회야, 잔디밭을 질러가!"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야인 마, 잔디밭을 질러가라니까아안!" 아비의 목청이 만신창이가 되든 말든 아이는 결국 잔디밭을 비잉 돌아서 갔다. 비이잉.

  뿐만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반장을 한 적이 있었다. 소심하고 고지식한 놈이 반장이 되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스승의 날 일일 교사를 했던 영향인 것 같았다.

  어쨌든, 반장이 되었으니 부반장 되는 아이의 전화번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학교에 무슨 일이 있을 때 부반장 되는 아이의 엄마와 상의라도 할까 싶어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애 어미가 말했다.

  "쉬는 시간에 부반장한테 집 전화번호 꼭 물어 봐라, 알겠지?" 아이는 "예"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 닿았을 시각에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가회'였다. "왜? 왜 돌아왔어?" 제 어미가 물었다. 아이가 헐떡이며 물었다.

  "몇 째 시간 끝나고 물어 봐요?"

  이런 아이니 차를 산다고 했을 때의 눈물이 어떤 성격의 눈물이었을지 짐작들이 가실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와 내가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들어 보자. 올 추석 고향 성묘길이다. 물론 6년 전에 산 그 엘란트라 GLS를 타고 가는 길이다. 올 추석엔 비가 내렸다.

  "아빠 차엔 왜 그거 안 달아요?"
  "그거라니?"

  "비 들이치지 말라고 차문 위에 붙이는 거 있잖아요."
  "아, 그거? 빗물 챙인가 뭔가 하는 거?"

  "그래요. 그게 없으니까 유리에 김이 서려도 창을 열 수 없잖아요."
  "아빠도 사서 달려고 했었지."

  "근데 왜 안 달았어요?"
  "생각해 봐라. 아빤 그거 없이도 이미 6년을 다녔어."

  "6년 다닌 것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아빤 이 차를 최소한 10년은 타려고 하거든. 그런데 이미 6년을 탄 거야. 진작이라면 모를까 이제 와서 뒤늦게 빗물 챙을 사서 달면 지난 6년이 아깝잖아. 억울하잖아. 같은 값 주고 기껏 4년밖에 못 쓰는데."

  그러자 아들 녀석이 하는 말, "것도 그러네요..."

  하여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거더라구요.

  내용이 짐작이 가시죠.
  그런데 보시고 나면... 뿌듯해지실 겁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제가 그렇거든요.

  사무실에서 일찍 나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며 생각난 글이 있습니다.

     고난은 죄를 씻어준다.
     고난은 인생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
     고난은 인생을 깊게 만든다.
     이마 위에 깊은 주름살이 갈 때
     마음속에 깊은 지혜가 생기고,
     살을 뚫는 상처가 깊을 때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높다.
     평면적 세속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은
     고난의 잔을 마셔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만든다.
     고난을 견디어 냄으로써 생명은 한 단계씩 진화한다.
     핍박을 받음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을 포용하는 관대함이 생기고
     궁지와 형벌을 참음으로써 자유와 고귀함을 얻을 수 있다.
     개인에게나 민족에게나 위대한 성격은 고난의 선물이다.

  함석헌옹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중에 있는 글입니다.

  역사학자 노명식 선생은 '함석헌'과 '토인비'를 비교하면서 '두 사람의 역사를 보는 자리와 시각은 놀랄 만큼 일치한다. 그 일치에 가장 깊은 데가 인생과 역사의 본질을 고난으로 파악한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을 체험합니다. 그 고난을 불행이나 불운으로 여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함석헌옹은 그 고난을 불행·불운으로 생각하지 않고 위대한 인물, 위대한 민족을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설파하는 함석헌옹의 영혼에서도 위대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이 글이 생각이 난 이유는 요즘 저에게 육신의 고난이 닥쳤거든요.
  진찰을 받아보았는데... 몇 일 아무 일도 하지말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답니다.
  바로 내일 외국어학당으로 '반편성시험'을 보러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천양희님의 '단추를 채우면서'를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모든 것이 시작에 달려 있다는 의미인 거 같습니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의 시작이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이만 줄일까 합니다.
  그럼... 새벽에는 아직까지 추우니 덮는 거 잘 덮고 주무세요.


댓글 '4'

흠냐~

2002.03.15 22:57:58

토미님 항상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구요..희망이 되는 좋은글들을 이렇게 주시는 님에게도 항상 행복함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토미

2002.03.15 23:09:15

흠냐∼님... 제 글에 답글을 달아주시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고맙습니다. 그런데 님은 채팅방에 안 가신 모양입니다... 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주말 잘 보내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동이

2002.03.15 23:17:07

늘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하얀사랑

2002.03.16 08:56:47

토미님... 사랑이두 잘 읽었습니다,, 토미님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으시는 걸까?...*^^* 오늘 모두 행복한 주말 되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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