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조회 수 3032 2002.04.20 06:13:30
토미
  헬렌 켈러의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만약 내가 사흘 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는 나를 가르쳐 주신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
     그 분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트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들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낮에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마지막으로
     사흘 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하루의 연속입니다.
  봄에는 하루에 136번 정도 날씨가 변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변하는 '계절'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장애인의 날 아침을 맞아 비록 그들에게 보게 하고 듣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주신 것을 마음껏 느끼고 감사하며 풍성히 나누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새벽, 겨우겨우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 땀 훔치며
     퍼져버린 라면 한끼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 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장애인의 날'이 되면 생각나는 시인이 있습니다.
  <무갑상선기능항진증에 의한 각피석회화증>이라는 우리나라에서 한 명뿐인 불치병을 앓고 있는 '박진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시인입니다.
  몸이 돌처럼 굳어져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고, 흐르는 눈물조차 혼자서는 닦을 수 없는....

  제가 적은 위의 시는 볼펜을 입에 물고 타이핑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쉽고도 하찮은 일이 그에게는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짜증나게 하던 그 일이, 때로는 그것들에서 벗어나고 싶던 그 일들이 말입니다.

  그가 쓴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다 -돌이 되어 죽어 가는 시인의 노래>는 에세이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시면 저 산 한 번 쳐다보며 긴 숨 한 번 토하렵니다.
     왜, 사느냐고 그래도 물으시면 고개 숙여 두리번대다가 그댈 보며 미소지으렵니다.
     그런 대답 지겹게 봤소 폼 잡지 말고 속 시원히 말해보쇼.
     왜 사시오 나 같으면 차라리 죽겠소.
     당신은 왜, 사십니까. 나여 사는 것이 좋아서 사요.
     나도 마찬가지요.
     예끼 이 사람아 차라리 마지못해 산다고 하지.
     말 다하셨습니까.
     왜, 멱살이라도 잡고 싶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고. 왜, 사시오.
     당신이 내게 관심을 보여주니 사요. 당신이 내 곁에 있으니 사요.

  질병과 싸워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진다거나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돌로 변해간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 줄 알고 지금까지 지내왔는데 이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어디 먼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나라, 이 땅에 말입니다.

  귀가 돌 조각처럼 부숴지고 장기도 돌로 서서히 변해갑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칼슘의 저주'가 그의 육체를 돌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병간호를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자는 너무나 고통스러워 마음의 병까지 생깁니다. 어쩌면, 저자가 가장 힘든 때는 피가 쉬지 않고 흐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보다 마음의 병과 싸워나가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합니다.

  저자의 상태를 볼 때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활발한 대인관계,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는 식의 처방은 너무 막연하고 도식적인 표현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살기 위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내게 됩니다. 저자가 자신의 정신병을 스스로 고치기 위해 치유법을 찾아내고 자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정신병을 극복해 가는 책 안의 과정을 보면 실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저자는 이런 모든 고통에 언제나 함께 있어준 저자의 어머니... 저자는 그런 어머니께 울지 말고 웃어달라고 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영혼마저 저당 잡힌 슬픈 곡예사'라고 칭합니다. 또한 어머니를 강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 '하찮은 존재'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자아를 상실하는 것 이외에 어머니를 초인으로 강요하는 것 역시 정신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상상하기 힘든, 아니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 앞에서 지은이가 이렇게 책을 냈다는 사실과, 눈이 번쩍번쩍 뜨일 만한 시를 써냈다는 사실에 자꾸 제 머리가 숙여집니다. 병상에서 고통을 겪으며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문장이 너무나 아름답고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고 있는 희망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보게 됩니다. 지금 이 아침에 말입니다.

  시인이 쓴 시집에 나오는 시 한 편을 적어보겠습니다.

     빈손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사랑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사랑조차 없습니다

     드릴 그 무엇도 없어
     가만히 빈손인 나의 손바닥을 쳐다봅니다

     내 생(生)의 손금에는 당신의 손금이 그려져 있고
     내 생(生)의 손금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
     당신 또한 눈물이 많습니다

  아침부터 너무 우울하게 시작하는 건 아닌가 후회가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 밝은 글을 하나 골라 적어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철환의 '연탄길'中에서

     사람은 누구에게나 마음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에 지금 무엇이 심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획을 세운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니 다음엔 포도나무를 심어야지. 그리고 그 다음엔
     멋진 소나무를 꼭 심고야 말 꺼야.....'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마음만 있다면 풀 한 포기만으로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p.s. 전 지금 수트 안주머니에 봉투 3개를 준비하고 나갑니다.
  후배들이 겁도 없이 선배를 앞질러서 하나 둘씩 짝을 찾아갑니다.
  그래서 봄이 더 심란합니다.


댓글 '3'

김문형

2002.04.20 10:11:46

토미님 글 항상 잘보고있어요. 그래요 오늘은 장애인의날이죠. 무슨날이다하면 반짝하는 그런 습성들부터 고쳐야할것 같아요. 제자신도 반성해야죠. 즐거운 하루되세요.

우리지우

2002.04.20 15:00:08

토미님 글 정말 김동적이었어요.. 지난번 텔레비젼에서 그 시인을 보았을때도 가슴이 찡하던데.. 지금 토미님의 써주신 글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 토미님.. 오늘을 예브게 살아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시인의 시집을 사서 보아야 겠어요.. 고맙습니다.

밥통

2002.04.24 02:12:30

정말 멋있는 분이세요,,토미님,,이름도 멋있네요..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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