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은 내 삶의 기쁨입니다...

조회 수 3022 2002.04.22 06:48:32
토미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사르트르는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반대라고 확신한다.
     타인들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다.
     '너는 홀로 족하기를 원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홀로 족하거라!'

     그와 반대로 천국은 무한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아베 피에르(Abbe` Pierre)가 쓴 <단순한 기쁨 -Me'moire d'un croyant>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912년생으로 아흔이 된 프랑스 노신부 피에르의 이름 앞에는 '프랑스 최고의' 혹은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동체 '엠마우스Emmaus'의 창시자이며 프랑스에서 7번이나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선정된 그에 대한 애정의 표시입니다.

  <단순한 기쁨>은 이 아베 피에르 신부의 자전적 회고가 담긴 에세이집입니다. 평범한 소년에서 신부로, 레지스탕스로, 국회의원으로, 엠마우스의 아버지로 자리바꿈해온 일생을 회고하며 '더불어 사는 기쁨'을 고백하는 평안한 목소리에는 가장 회의적인 사람조차도 발목이 잡힐 것 같습니다.

  쫓기는 유대인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오는 사람, 누군가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레지스탕스에 참가한 사람,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나눔을 통해 '살아야 할 이유'를 안겨주는 사람. 인간적이면서도 강한 그 모습에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표현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습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상식적이어서 종교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이지만, 피임을 부정하는 '비현실적인' 권고를 따끔하게 쏘아붙입니다.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독수리들', 인간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피에르 신부는 사르트르와 까뮈 등 '절망의 교사들'과는 정반대의 인생관을 설파합니다. 그는 '부조리와 신비'중에서 삶을 '단순한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은 신비라고 말합니다. 삶은 어렵고 사람들은 악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희망이 숨겨져 있다는 신비한 이치를 굳게 믿는 것 말입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이 책을 읽고 쓰신 글이 있습니다. 실은 저도 이 글을 보고 책을 골랐습니다.

     이웃은 내 삶의 기쁨입니다

  '타인들 없이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혼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과 공감할 것인가.' 매일 아침 새롭게 다짐해야 할 이 선택은 그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의 실체를 결정짓고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던 피에르 신부. 흔히 '넝마주이'로도 알려진 그의 존재는 우리 시대에 더욱 빛난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8년 연속으로 인기투표 1위에 뽑힐 만큼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가 90 평생을 정리하면서 펴낸 비망록 '단순한 기쁨'에는 책갈피마다 지혜의 보물이 가득하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채석장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같으며 삶의 희망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고, 그 의미는 최선을 다해 사랑을 베푸는 데 있다고 역설한 피에르 신부. 그는 현재 전 세계 44개국 350여 곳에서 봉사하는 빈민구호공동체 엠마우스(Emmaus)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글에서 종종 '상처 입은 독수리'로 비유되기도 하는 거리의 부랑자, 알콜 중독자, 감옥에서 나온 이들, 가정이 파괴된 이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사랑의 집으로, 피에르 사제는 반세기를 헌신해 왔다.

  1912년 프랑스의 상류층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항독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전쟁 후 몇 년간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의 생애를 토대로 만들어진 '겨울 54'라는 영화는 1989년 세자르 상을 받기도 하였다. 쫓기는 유태인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험준한 산맥을 넘고 헌 신발을 신은 유태인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눈길을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 인류애에 불타는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 처음엔 자포자기하던 가난한 이들이 피에르의 돌봄 속에 땀흘려 수고한 보람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는 마침내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도 마음을 담아 나누고 구원을 베풀고 있는데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소유한 여러분이 그런 일을 못할 게 뭐 있습니까?" 하고 외치는 대목에선 깊은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극심한 상황에 처한 어려운 이웃에게도 섣부른 위로와 일방적인 도움을 주기보다는 늘 인격적으로 이해하며 함께 하는 협력관계를 강조하고 실천했던 사제였기에 따르는 사람들도 급속히 늘어갔을 것이다.

  위인이나 성인들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고백록은 자칫하면 너무 교훈적이거나 진부하고 밋밋해서 지루한 경향으로 흐르기 쉽다. [단순한 기쁨]은 이러한 통념을 깨고 매우 생생하고 흥미로운 기록으로 읽힌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다. 피에르 신부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로 불리는 마더 테레사처럼 초교파적인 인류애의 표현이 곳곳에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교황 요한 23세처럼 인간적인 유머, 경직된 권위나 규칙보다는 사랑을 우선하는 파격이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가 자주 인용하는 성서 텍스트들은 체험과 직결되어 있기에 이해하기 쉽다. 그의 어린 시절에 얽힌 몇몇 일화들은 마치 동화처럼 아름답고 따뜻하다. 집에서 잼을 훔쳐먹은 벌로 친척집 파티에 못 갔던 그에게 형이 자랑스레 다녀온 이야기를 전하자 "좋으면 뭐해? 내가 안 갔는데?"하고 퉁명스레 대꾸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너는 다른 사람이 행복한 걸 보고 기뻐해 줄 줄 모른단 말이냐?" 했던 말은 어린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잘났든 못났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는 모두가 다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에 '내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없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기심이며 무관심이라는 것, 삶은 환상에서 깨어나 실제로 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우쳐 주는 피에르 신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도 사랑의 집 한 채를 짓고 싶은 갈망을 지니게 된다.

  이 갈망은 무심히 지나쳤던 옆 사람에게도 문득 "내 삶의 기쁨이군요"라고 환한 인사를 건네고 싶게 만든다. 삶이 공허하고 재미없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들의 욕구와 고통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늘 관상을 갈망하는 수행자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덕을 쌓는 데만 몸을 도사리느라 형제들을 짓누르는 불의 앞에서 사랑의 분노를 느끼지도 못하는 장님이 되면 안됩니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가장 강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위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 약한 자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봉사할 것인가는 우리가 내려야 할 진정한 사회적 선택입니다. 바로 이 선택이야말로 한 가족이, 한 부족이, 한 나라가 또는 한 문화가 위대한지 또는 저급한지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단순한 기쁨'을 다 읽고 나면 제목처럼 단순한 기쁨보다는 어쩌면 무거운 슬픔을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의 의무에 소홀했던 날들을 돌아보며 좀더 구체적인 결단을 하라고 이 책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니까. 그리고 사랑의 결단은 결코 안일하고 무사할 수 없는 갈등과 도전을 우리에게 요구해 올 테니까.

  아침입니다.
  회의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리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서 삶의 기쁨을 찾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2'

밥통

2002.04.22 08:22:36

토미님,,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이웃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군요,,월요일 잘 시작하십시오,,^^*

세실

2002.04.22 09:23:28

토미님은 제게 기쁨을 주는 이웃입니다. 토미님도 그리고 우리 스타지우 가족 모두 행복한 한주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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