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차례 피는 꽃...

조회 수 3069 2002.07.10 21:51:09
토미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시인詩人 나희덕의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니 복숭아가 생각이 나서요...

  낮에 산책을 하다가 본 여러 꽃을 생각하니... 시인 도종환의 글이 생각납니다.

     차례차례 피는 꽃

  어느 날 갑자기 피는 꽃은 없습니다. 어떤 꽃이든 오랫동안 끊임없이 준비하면서 핍니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꽃을 발견한 것뿐입니다. 봄 들판에 여린 꽃다지 한 송이도 겨우내 준비한 뒤에 꽃송이를 내밉니다. 오랜 날을 추위와 목마름과 싸워 오면서도 때가 되어야 꽃송이를 내밉니다.

  잿빛으로 죽어 있는 겨울 들판을 쉬지 않고 달려와 봄이 온 것을 제일 먼저 알리고 난 뒤 산수유꽃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걸 보면서 비슷한 크기, 똑같은 빛깔의 생강나무꽃이 덩달아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산수유꽃이 충분히 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할 만큼 시간이 지난 뒤에 비로소 꽃을 피웁니다. 산수유보다 더 진하고 강한 향기를 지닌 줄기와 꽃을 키워 갑니다.

  진달래가 피었다고 해서 철쭉도 같이 꽃을 피우지 않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꽃을 피웁니다. 연분홍 진달래가 먼저 피고 난 뒤에 좀 더 진한 빛깔의 분홍꽃을 피웁니다. 진달래보다 늦게 꽃이 피었다고 진달래를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꽃을 피워도 되겠다고 생각할 때 꽃을 피우는 것뿐입니다.

  조팝나무꽃이 피었다고 싸리나무가 몸살을 앓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조팝나무는 봄이 절정에 이르는 4월 곡우 무렵에 짙은 향을 내뿜으며 피지만, 싸리나무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에야 꽃을 피웁니다. 그렇다고 싸리나무가 보랏빛 꽃을 피우고 서서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을 게으르고 못난 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 꽃을 피우는 꽃들이 모여 이 나라 산천을 꽃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이 나라 들판이 사철 꽃향기로 가득하게 합니다. 먼저 핀 꽃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늦게 꽃이 핀다고 조바심 내거나 안달하지 않습니다.

  같은 땅에서 난 것을 먹고 같은 바람을 쏘이면서 자란 동갑 친구 중에도 먼저 되는 친구와 늦게 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일찍 성공하고 자리잡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늦게까지 고생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일찍 출세하고 이름을 얻었는데 실패와 시련도 남보다 먼저 겪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핀 꽃이 먼저 지는 것처럼.

  남들보다 늦게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고, 꽃 한 번 피우지 못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천천히 들길을 걸으며 생각해 보세요.

  찔레꽃은 언제 피고 국화꽃은 언제 피는지. 그리고 그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지난 일요일에 사무실을 가고 오는 지하철에서 읽은 새뮤얼 스마일스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이겨라>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 부분을 소개하자고 합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

  유명한 역사 소설가인 윌터 스콧은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생애 말년을 빚에 쪼들려 고난에 허덕여야만 했다. 물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빚이었다.

  그의 작품을 출간했던 출판사와 인쇄소가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본의 아니게 스콧이 그 빚을 떠 안게 된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그를 아끼는 많은 동료들이 돕겠다고 나섰다. 대신 빚을 갚아 주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조금씩이나마 모금을 하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스콧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니, 걱정해줘서 고맙네만 사양하겠어. 내 오른팔이 있니 않나. 오른팔로 부채를 깨끗이 갚아 보이겠네."

  그는 의연했다. 이제까지 썼던 것보다 더 많은 작품을 쓰기로 작심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편지로 전했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명예만은 죽을 때까지 보존하고 싶은 심정일세. 그런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도움을 거절한 것이 섭섭하지 않으리라 믿네."

  그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잡지 <쿼털리 리뷰>에 기고하는 글부터 시작해서 <우드 스톡>, <캐넌 게이트 연대기>, <할아버지 이야기>, <나폴레옹전>, <그는 나폴레옹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있었다>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page.149∼150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책임감은 아름답다. 또한 책임감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신뢰가 간다. 그 책임감을 지탱해주는 것은 용기다. 용기는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며 스스로를 고양시키는 힘이 되어준다. 기원전 1세기 때의 일이다. 로마로 진군하려는 폼페이우스 장군과 그의 병사들이 출항을 앞두고 있는데 거센 태풍이 휘몰아쳤다. 병사들은 동요하며 장군의 눈치만 살폈고, 누구도 태풍을 뚫고 출항을 강행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장군은 돛을 올리라고 명령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만류했지만, 폼페이우스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내겐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한번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간다!'

  -- page.208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그 사실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날이 무덥습니다.
  어제 밤까지만 해도 선선했는데...
  모두가 시원한 저녁 잠자리를 맞이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1'

토토로

2002.07.11 00:37:08

항상 토미님의 글은 제마음을 정화시켜주는것 같아 고맙습니다.날씨 더운데 건강 조심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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