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조회 수 3368 2002.08.20 23:15:47
토미
  철산리(鐵山里)의 강과 바다

  당신은 바다보다는 강을 더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강물은 지향하는 목표가 있는 반면 바다는 지향점을 잃은 물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오늘 한강 하구(河口)에 서서 당신의 강물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강물은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물임에 틀림없습니다. 골짜기와 들판을 지나 바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숱한 역사를 쌓아가는 살아 있는 물입니다.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돼 뛰어 내리고 댐에 갇히면 뒷물을 기다려 다시 쏟아져 내리는 치열한 물입니다. 이처럼 치열한 강물과는 달리 바다는 더 이상 어디로 나아가지 않는 물입니다. 바다로 나와버린 물은 아마 모든 의지가 사라져버린 물의 끝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엽서를 들고 먼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통일 전망대를 찾아 왔습니다. 태백산에서 시작해 굽이굽이 천리 길을 이어온 한강과 마식령 산맥에서부터 5백리 길을 흘러온 임진강이 서슴없이 서로 몸을 섞으며 바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물길을 따라 강화도의 월곶리에 있는 연미정(燕尾亭)으로 왔습니다. 마침 밀물 때 만난 서해의 바닷물이 강화해협을 거슬러 이 두 물을 마중 나오고 있었습니다. 드넓은 강심江心에는 인적 없는 유도(流島)가 적막한 DMZ속에서 잠들어 있고 기다림에 지친 정자가 녹음 속에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강안(江岸)을 따라 강화의 북쪽 끝인 철산리(鐵山里)언덕에 올랐습니다. 이곳은 멀리 개성의 송악산이 바라보이고 예성강물이 다시 합수合水하는 곳입니다. 생각하면 이곳은 남쪽 땅을 흘러온 한강과 휴전선 철조망 사이를 흘러온 임진강, 그리고 분단조국의 북녘 땅을 흘러온 예성강이 만나는 곳입니다. 파란만장한 강물의 역사를 끝마치고 바야흐로 바다가 되는 곳입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일깨우는 곳입니다. 멀리 유서 깊은 벽란도(碧瀾渡)의 푸른 솔이 세 강물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이곳 철산리鐵山里에서 바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띄웁니다.
  당신이 내게 강물을 생각하라고 하듯이 나는 당신에게 바다의 이야기를 담아 엽서를 띄웁니다. 바다로 나온 물은 이제 한강도, 임진강도, 예성강도 아닌 바다일 뿐입니다. 드넓은 하늘과 그 하늘의 푸름을 안고 있는 평화로운 세계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이 강물을 사랑하는 까닭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강물은 고난의 시절입니다. 강물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물이되 엎어지고 갇히고 찢어지는 고난의 세월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한강과 임진강·예성강 유역은 삼국이 서로 창검을 겨누고 수없이 싸웠던 전장(戰場)입니다. 지금도 임진강은 휴전선철조망에 옆구리를 할퀴인 몸으로 이곳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강물의 시절은 이념과 사상과 이데올로기의 도도한 물결에 표류해온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존엄尊嚴이 망각되고 겨레의 삶이 동강난 채 증오와 불신을 키우며 우리의 소중한 역량을 헛되이 소모해온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 철산리鐵山里 앞 바다에 이르러서는 암울한 강물의 시절도 그 고난의 장을 마감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목표를 향해 달리는 물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바다가 됩니다. 목표가 없다기보다 달려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곳은 부질없었던 강물의 시절을 뉘우치는 각성의 자리이면서 이제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시야를 열어나가는 조망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은 강물의 본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해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목표를 회복하고 청천하늘의 흰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방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목표로서의 평화입니다.
  평화는 평등과 조화이며 평등과 조화는 갇혀있는 우리의 이성과 역량을 해방해 겨레의 자존(自尊)을 지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자유(自由) 그 자체입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마지막 엽서를 앞에 놓고 오랫동안 망설이다 엽서 대신 파란 색종이 한 장을 띄우기로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언젠가 이곳에 서서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받은 색종이에 담긴 바다의 이야기를 읽어주기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 국토와 역사의 뒤안길을 걸어왔던 나의 작은 발길도 생각하면 바다로 향하는 강물의 여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마지막 엽서를 당신이 내게 띄울 몫으로 이곳에 남겨두고 떠납니다. 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나무야 나무야'에서 골라 본 구절입니다.
  제 글에 대한 '토토로'님의 답글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적어 본 구절입니다.

  아침에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무실을 나가면서 느낀 제 생각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기분 탓인 거 같습니다.

     자유로自由路를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서 버렸습니다.
     큰 차, 작은 차, 아예 시동을 꺼 버린 차들도 있습니다.
     뒤쪽 사람들은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그렇게 멈춰 서 있어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열 마리도 넘는 아기뜸부기들이 너른 자유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씽씽 달리는 차들도 아랑곳 않고 아주 점잖게 길을 가로질러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네들끼리 마음껏 유유자적하며, 해찰海察할 것 다 하면서, 천천히 도로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차들이 그토록 씽씽 달리는, 그것도 1분이 아쉬운 아침 출근길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그 작은 아기새들을 발견한 운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급제동을 걸었고, 그들이 행여 놀라지 않도록 시동까지 껐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차들에게 신호를 보내어 함께 멈추게 했습니다.
     그들이 안전하게 다 건너기까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습니다.

     아기뜸북새들이 도로를 다 건너 반대편 둑에 닿은 다음에야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참으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뒤쪽에서 영문도 모르고 마냥 멈춰 서 있던 사람들도 그 이유를 알고서
     터뜨린 아침의 웃음은 오랜만에 하늘을 쩡쩡 울리는
     티 없이 맑고 상쾌한 웃음이었습니다.

  최원현의 <살아 있음은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겁니다. 때로는 급제동을 하고 멈춰 주변을 둘러보면, 맑고 상쾌한 웃음과 행복의 재료들이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 다리를 유유히 건너가는 또 다른 아기뜸부기의 아름다운 행렬을 지금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 지난 글에 달아주신 답글중에 '찔레꽃'님께서 써주신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이라는 표현이 지금 저에게 이 구절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세상을 사노라면
     둘이지만 하나임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부부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교우 사이에서...
     마치 하나의 막대기 양끝을 잡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듯,
     외모는 달라도 생각이 같을 때 그런 순간을 느낀다.
     살맛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행복할 때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처럼,
     내가 슬프면 그 끝을 잡고 있는 상대도 슬프기에,
     되도록이면 나는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오늘 하루의 행복을 위하여 목숨을 걸자!

  민주현이 쓴 소설 <가슴에 묻어둘 수 없는 사랑>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소설中에 나오는 구절처럼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러나 나만 혼자 행복하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남도 함께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막대기 양끝을 함께 잡고 가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도 내일도 행복했으면 합니다.

  밤이 늦었습니다.
  일 때문에 어제 밤을 꼬박 세웠더니 좀 피곤합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6'

이지연

2002.08.21 01:49:03

토미님... 어제 토미님의 글을 보면서 지난날이 생각되어지더라구요... 토미님은 외사랑을 하신건 아니시죠?..제가 아는 오빤 지독한 외사랑을 하셨어요 넘 간절하게요...그걸 지켜보는 제가 눈물이 나더라구요 근데요 며칠전에 멜이 왔더라구요 제가 오빠 생각해서 소냐의 "눈물이 나" 라는 노래를 보냈는데요 이젠 슬픈노래 듣지 말자고요 아마 좋은기억으로 이젠 가슴에 남겼나봐요 ...토미님 사랑은 이루어지면 더 없이 행복하지만 그래도 기억할수있는 사랑이 있는것 또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토미님은 행복한 사랑기억있으시죠?..

바다보물

2002.08.21 23:17:24

토미님 아직 첫사랑을 못 잊어시나봐요 잊는다는 표현이 어째 좀 그렇긴 하지만.....제가 넘 주제 넘었나봐요......가끔 도로에서 겁없이 사람이 던져준 먹이를 먹기 위해 차도에 내려가 있는 비둘기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 뿐이던데....그 운전자분은 참 맘이 따뜻한 분이시네요 아직 인정?은 살아 있는거죠?

코스

2002.08.22 11:14:51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 간다ㅏ면 그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요...저도 오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하루를 보낼께요..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내세요..^_^

박혜경

2002.08.22 12:46:32

좋은분 만나셨음 좋겠네요 물론 기도는 하고 계시겠지만...

토미

2002.08.23 01:18:59

지연님... 먼저 몇 번씩이나 이름을 틀리게 써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드려야 하겠습니다. 님의 글처럼 제가 그 사람에 대한 외사랑을 했었나...하는 질문을 거듭 제 자신에게 해보지만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냥 자꾸 그 사람 이름이 입에서 맴돌 뿐입니다... 문득 문득 준상이가 '유진아... 유진아...'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님이 저에게 물으신 것처럼 저도 행복한 사랑의 기억 있죠... 제가 2차 시험을 보던 성균관 대학교로 그 사람과 서강대학교에 다니던 그 사람 남동생이 찾아온 기억... 그 사람과 공포영화를 보고 서로 무서워했던 을지로 입구에 있던 극장에 대한 기억... 그 사람이 좋아하는 피자를 먹고 집에 와서 배탈난 기억... 그 사람이 좋아하던 클래식 CD를 구하기 위해 서울 시내에

토미

2002.08.23 01:19:43

있는 음반가게는 다 누비고 다니던 기억, 그러게 하고도 구하지 못해 외국에 유학을 가 있는 선배와 동기들에게 편지를 적어 보내며 협박 반, 애걸 반 하였던 기억... 모두 생생하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그 사람에게 잘해 준 기억보다 못해준 기억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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