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씁니다...

조회 수 3063 2002.10.18 23:16:28
토미
     아버지와 오랜만에 같은 잠자리에 누웠다.
     조그맣게 코고는 소리
     벌써 잠이 드신 아버지
     많이 피곤하셨나보다.
     작지만 야문 손 잡아보고
     주름진 얼굴 살며시 바라보다
     어느새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아버지도 사람이셨구나.
     성황당 나무처럼 마을어귀 장승처럼
     백 년이 한결같은 줄로만 알았는데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슬픈
     춥고 배고프고 아프고 슬픈
     아버지도 사람이셨구나.
     그리고 언젠가는
     내 할아버지가 가신 길을
     아버지도 가시겠지.

  도종환 시인이 엮은 시집詩集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에 나오는 조현정님의 '아버지'라는 詩입니다.

  아버지는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때는 태산(泰山)처럼 보였으나, 지금은 작은 동산의 아기자기한 둔덕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 때는 분명 흔들림 없는 거목(巨木)과 같았는데, 지금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와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때는 신(神)인 줄 알았던 아버지도, 지금 보니 인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오지 못한 근近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원 없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아버지가 모아주신 신문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칼럼 중에 위와 비슷한 내용의 글이 있어 여기에 옮겨 적어봅니다.

  아버지는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 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 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 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前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 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助言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後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車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참 오랜만에 여기에 와 봅니다.
  그동안 여름 휴가도 가지 못하고 일을 한 탓인지 일 벌이기 좋아하는 저의 선배가 오늘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며칠 휴가를 줘서 좀 여유를 가지고 여기에 왔습니다.
  솔직히 그동안은 오고 싶어도 마음에 여유도 없어서 여기에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여기에 계속 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선배가 어제 미국으로 들어갔거든요.

  지난주에 집에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케이블 TV를 보고 있는 저를 놀라게 한 시가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 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지요
     온 몸이 아프고 멍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가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에요 바로 제 장례식날 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어요 저를 때려서 죽음으로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저는 드라마에 나오는 이 시를 읽고 들으면서... 솔직히 좀 무서웠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건을 받지 않는 탓에 찾아오는 의뢰인은 없지만, 최근에 개업한 제 선배의 사무실에는 이런 종류의 사건이 전문이어서 그런지 이와 유사한 종류의 사건을 가지고 찾아오는 의뢰인을 종종 볼 수 있거든요.
  가끔 들러서 선배에게 말을 들어보면 제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마치 힘이 센 것이 모든 것을 우선시하는 원시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제 여동생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좀 걱정이 됩니다.
  사람을 겉만 보고는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써서 그런지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
  다음에는 좀 줄여서 쓰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럼...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시집에 나오는 도종환 시인의 시를 마지막으로 적으며 글을 줄일까 합니다.
  쉬세요.

     벗 하나 있었으면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흙 속에서도 다시 먼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댓글 '15'

토토로

2002.10.18 23:21:31

토미님 넘 반갑습니다.많이 궁금했답니다.동생분 아픈것은 괜찮으신지요.어디 아픈건 아니지 궁금했답니다.이제 자주 와 주세요.

바다보물

2002.10.18 23:26:45

토미님 너무 반가워요 우리가족들이 많이 기다린거 아시죠? 혹 무슨 일이 생기셨나 했답니다 다들.....아침마다 이제 토미님의 글을 볼수있겠군요 정말로 반가워요

sunny지우

2002.10.18 23:28:48

토미님 ! 너무 반가워서 손이 떨리는군요. 많이 바쁘셔서 자주 못오신거죠? 정말 기쁘군요. 옛친구를 만난 것 같이 ....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도종환님의 시를 좋아해요 . 접시꽃 당신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처음 접했는데. 아름다운 시상을 가진 시인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개꽃

2002.10.18 23:32:09

정말 반갑네요.

세실

2002.10.18 23:38:53

모처럼 이 시간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스타에 왔더니 반가운 이름이.... 그 동안 궁금했었는데 긴 여행?을 다녀오셨네요. 어렵게 휴가를 얻으셨다니..참 좋으시겠어요. 덕분에 우린 책 읽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으니 저희들도 선배님께 감사드려야겠어요.^^ 아버지란 글 읽고 이 시대의 아버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도 해보고...꽃을 선물하는 남자 ...참 섬찟하네요. 오늘 토미님의 글 읽는 동안 옛친구를 만난 듯 즐거웠습니다. 강같은 평화가 토미님과 늘 함께 하기를..그럼 푹 쉬세요.^^

초지일관

2002.10.18 23:41:11

감사해요..

아린맘

2002.10.18 23:43:14

이렇게 토미님 다시보니 너무도 반갑습니다...아침마다..산책하는듯한 느낌의 글들...이제 자주 볼수 있는거죠? 정말 기분 좋네요..토미님...

코스

2002.10.19 00:05:05

토미님...넘 반가워요.그동안 참 많이 궁금 했습니다.귀하게 얻은 휴가시간을 우리에게 나눠주셨서 고마워요.오랜만에 보는 님의 긴글에 마음이 꽉 차는 느낌입니다.깊어가는 가을에 건강 조심하시고늘..행복하세요.^_^

재며니

2002.10.19 00:12:03

님의 글을 볼수 있어 반갑고 든든합니다.

온유

2002.10.19 00:12:38

토미님 많은 우리 가족들이 님의 글을 기다렸답니다 저도 도종환님의 시를 좋아해서 글을 한번 올린 기억이 나네요..자주 뵙게 되길 바랍니다

김문형

2002.10.19 00:16:02

토미님. 정말 반가워요. 모두들 토미님을 많이 궁금해 했어요. 건강은 어떠신가요. 쉬는동안 편하게 계시고 울 스타지우에 자주 와 주세요.

이지연

2002.10.19 01:17:43

토미님 참 오래간만이네요.... 가을이라 책을 꼭 읽어야 할것 같은데... 토미님 편하게 읽을수있는 작은책 한권 소개해주세요?....이가을밤에 읽으면 좋은책으로요...

달맞이꽃

2002.10.19 08:14:50

(이정옥) 토미님 너무 반가워요 아주 많이 궁굼했는데 .좋은글 많이 부탁드려요 ,가을이라 토미님이 더 생각났어요 ,후후후~~행복하세요 ,자주 뵙는거죠?

태희

2002.10.19 09:30:45

토미님 반가워여~~위에 글을 읽으니 아버지에 대해 다시한번 더 생각하게 되네요..넘 뜻깊은 글 잘 보았습니다..늦은 휴가지만 휴가답게 잘 보내시고, 종종 좋은 글 부탁해요..넘 좋네요...자주 들어오세요~~

앨피네

2002.10.19 11:48:43

토미님.. 오랫만에 보네요.. 모처럼만에 휴식이라... 편안한 가을 날을 만끽하실꺼니 부럽네요.. 헤헤.. 좋은글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쉬는 동안.. 여유를 가지는 동안... 자주자주 글을 남겨주세요..그럼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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