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그렇다.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적(籍)에서 사라져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일상에 소용되는 물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

  법정(法頂) 스님의 <무소유>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루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우리들은 그 때문에 더 큰 것을 잃거나 낙마(落馬)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10억 인도 인구를 하나로 움직인 간디의 힘이 과연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생각하면, <무소유>의 법정스님마저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고백하는 것을 듣노라면, 우리 역시 없어도 좋은 것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낮에 있었던 결혼식에 갔다가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읽은 글 중에 괜찮은 것이 있어 옮겨 적어봅니다.

     아름다운 삶

  한 세미나에서 아름다운 부부를 보게 되었다. 아내와 남편의 나이는 회갑을 전후한 노부부라고 할까. 젊고 앳띤 부부는 아니다. 그런데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금실 좋은 신혼부부를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면 저렇게 평화롭게 보일 수가 있을까 감탄을 하며 바라보았더니, 옆에 있던 선배문인도 저 아름다운 부부를 보면서 나와 같이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긴 해도 남편이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남다르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외모부터가 자상하면서도 고운 모습을 지닌 부부이지만 외모와 함께 내면에 흐르는 마음의 정이 곱고 자상해 보인다. 남편 되는 분이 아내에게 와서 반찬은 입에 맞느냐고 물으며 아내의 식사하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고 가더라는 것이다. 또 다른 때는 "당신 식사하는데 불편할까봐 이 김을 사왔지. 이거하고 밥 많이 먹어야 해." 마치 어린애에게 하듯이 자상한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김을 전해주고 가기에, 그 옆에 있던 다른 여인들이 모두 부러운 눈으로 그 부부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작은 일이긴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놀라움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자들, 더구나 그 나이 또래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며, 남편이 아내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다가는 공처가라고 비아냥을 당할 것이며, 또 바라보는 우리들도 저렇게 곰살맞을 수가 있을까 공연히 심술이 발동할 수도 있으나, 저들 부부의 일은 왜 이렇게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

  꿈과 이상이 전혀 다른 집안에서 20여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부부라는 인연, 많은 사람도 아닌 단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사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한 사람이 독선을 갖고 살면 다른 한 사람은 따스하지 못한 서늘한 생각의 그늘 속에서 늘 곤혹스럽고 불편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도 있으며, 양보만을 강요당하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일도 있다. 근검절약마저도 부부가 함께 해야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편이 검소하게 살고 싶어도 다른 한 사람이 낭비벽을 갖고 산다면, 이런 부부는 동상이몽의 부부일 뿐이다. 더구나 양가 친척을 비롯하여 부모들간의 관계도 별 탈 없이 부드러운 상황이 유지될 수 있을 때는 그런 대로 덤덤히 살아갈 수도 있으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인생살이 중에 남남이 만나 부부로 살아가는 결혼은 인륜지대사의 첫째로 꼽는가보다.

  어느 한편에서만 잘한다고 해서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을 때, 서로를 배려하느라 조금씩 자기의 주장을 숙이며 같은 높이의 수준으로 맞출 때 거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사랑의 꽃은 향기로운 향기를 담고 있으며, 무심코 바라보는 다른 사람에게까지 은은한 기쁨을 주는 꽃이다. 은은한 기쁨이란 두 사람이 함께 그리고 가까운 주위의 사람들에게까지 조그만 의구심도 주지 않는 만남이어야 한다. 백년해로百年偕老 하면서 다정한 정을 주고받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부부에게는 평시에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주위에서 만나게 되는 뭇사람에게 지나치게 곰살맞은 정을 마구 베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친절한 배려라고 해도 마음에 든다하여 아무에게나 절제하지 못하고 덥썩덥썩 사랑의 정을 표현한다면 부부간에 지켜야 하는 예의에 벗어난다. 남남이 되고 싶어 세포 분열하듯 마음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마음을 쓰는 것조차 쉬운 듯 하면서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 부부를 다시 바라본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부부는 아내의 몸짓이나 얼굴표정이 어찌 그리도 곱기만 할까. 자리에 앉을 때도 덜컥 아무데나 앉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사뿐히 앉는다. 언제 오고 가는지 조용조용 하면서도 나긋나긋하다. 또한 음식솜씨까지 일품이므로 갖가지 반찬에서 배어 나오는 맛깔스러움이 대단하다고 한다. 게다가 일류 가수 못지 않은 아름다운 목소리는 몇 곡의 노래를 들어도 부드럽고 싫증이 나지 않을 정도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나오는 소리가 있다. 지금까지 가수가 안된 것은 남편의 욕심 때문이니 너무 공평치 않다는 표현들을 건네어도 남편은 웃음으로만 대답할 뿐 변명을 하지 않는다. 아내 되는 사람이 말하기를 나이가 20세가 되기 전부터 레코드社에서 취입을 하자고 했지만 그 시절 식구들의 반대로 감히 가수가 될 생각은 못했다고 한다. 이제 생각해 보니 가수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그리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어떤 아쉬움 같은 원망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분위기는 조금도 없다.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아쉬움을 느낀다.

  그 남편 또한 자상함이 대단하다. 책을 보내주겠다고 하면서 내 주소를 적는데, 그 종이를 보니 광고지를 가지런히 잘라서 만든 메모지이다. 이들은 사후세계에서도 곱게 사실 것만 같다.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면이 바로 이런 점이다.

  내가 이들 부부를 오래도록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몇 소절만 듣고도 아름다운 부부임에 틀림이 없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한가지를 보면 열 일을 알 수 있다는 속담까지 있으니 내 추측이 맞을 것이다.

  며칠 뒤 그들 부부의 소식을 들었다. 그 댁에 열 명의 문인들이 놀러갔다고 한다. 음식솜씨며, 아기자기한 집안 분위기가 아주 모범적이라고 하였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이란 말이 꼭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난 오랜만에 아름다운 두 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사람 사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닌가. 내가 이루지 못하는 것을 남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님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이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서로의 마음을 얻은 아름다운 두 노부부처럼 이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있을까, 세상에 힘든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의 고리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그냥 우연이겠지?'라는 생각과 더불어 우연히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인다면 또 남긴다면 세상이 더 환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어두워 보여서요.

  날이 더 차가워집니다.
  모두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을 느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4'

꿈꾸는요셉

2002.10.27 08:34:59

토미님의 귀한 글 잘 읽고 갑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접하는 시간이 거의 없네요... 토미님의 글을 대할 때면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함께 교차합니다... 추운 날씨가 저를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좋은 계기가 되면 좋겠죠!

달맞이꽃

2002.10.27 09:19:29

손목을 잡으면 다아 어진사람이 된다는 글을 읽은적이 있는데 토미님에 글을 읽고 있으니 ,문득 생각이 나네요 ,.아름답게 사는 방법 알면서도 잘 안되고 , 순리대로 사는 그 부부가 부러운 아침 ,주말 님이 올리신 좋은글 맘껏 읽고 포만감을 느끼고 갑니다 , 편한주말 되시고 ,,자주 님에 글을 대하니 무척 반갑고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코스

2002.10.27 17:47:22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 자신과 세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볼수있게 되드라고요."인생의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며...노력해야지요.토미님!!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오늘보다 더 행복한 날들을 보내세요.^^*

세실

2002.10.28 09:34:00

마음을 얻는 일..마음을 머무게하는 일..참 어려운 일이죠.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이웃들 너도 나도 무표정하게 지나칩니다. 한번 씩 웃고 좋은 아침 인사하며 헤어진다면 하루가 좀 더 행복할텐데...토미님 감기 들지않게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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