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 아이들...

조회 수 3031 2002.11.13 22:23:08
토미
     파트너를 고를 때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상대의 가치관에서 나온다.
     여기에는 돈에 대한 가치관, 기업활동을 하는 이유, 약속에 대한 책임감,
     커뮤니케이션의 진실성 같은 것이 포함된다.

     또 당장의 이익에만 내몰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함께 발전하는 관계를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이익만 추구하는 자세나, 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파트너십이 형성되면 그 관계는 언젠가 말썽이 생긴다.

  '안철수'의 <영혼이 있는 승부>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파트너 한 사람이 사업을 흥하게 만들기도 하고, 망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다 못해 운동이나 취미 생활조차도 같이 하는 파트너에 따라 그 깊이와 묘미가 달라집니다. 부부, 사랑의 파트너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파트너십이 아름다운 인생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 며칠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여동생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인데... 제목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입니다.

  먼저 이 책에 대해 적자면...

  제목題目에 나오는 괭이부리말은 인천의 달동네로 예전에 그 근처에 '고양이 섬'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의 역사는 참으로 간단합니다. 일제시대부터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마을을 이루고 살았고, 6.25때는 피난민들이, 산업화시기에는 농촌에서 몸 하나 믿고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 윤기가 흐르거나 풍요로웠던 적이 없는 괭이부리말... 그 곳에도 어린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괭이부리말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대체로 우울하게 보입니다. 한참 까불어야 할 숙희와 숙자 쌍둥이 자매도 그렇습니다. 하긴 빚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데 무엇이 즐겁겠습니까. 둘은 오늘도 취한 아버지를 피해 친구네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준이와 동수... 이 아이들은 숙희네 집보다 더 비참합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지는 한참 되었고, 얼마 전에는 아버지마저 돈벌겠다며 집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동수는 얼마 전까지 선생님 말씀 잘 듣던 '착한 학생'의 모습을 완전히 버렸습니다. 어린 동생만 자기에게 남겨두고 간 부모에 대한 배신감 때문입니다. 동준이는 그런 형이 무섭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어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동준이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착한 숙자와 함께 노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우울한 게 아닙니다. 괭이부리말 사람들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삶이 힘겹고 지겹습니다.

  세상에 버림받지 않으려고 기술도 배우고, 정말 뼈빠지게 일하면서 나름대로 희망을 키웠던 영호는 삶의 지주였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언젠가는 호강시켜드리고 싶었는데, 가난 때문에 병을 얻은 어머니는 기다리지 못하고 가버리셨습니다. 또 괭이부리말을 벗어나가겠다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겨우 마을을 떠날 수 있었던 명희는 바라는 대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지만, 하필 첫 부임지가 괭이부리말입니다. 명희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습니다. 날짜만 채워 이곳을 떠나리라... 희망 없는 아이들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누군가와 동무가 된다'고 썼던 작가(김중미)는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어른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서서히 독자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동무로 만들어갑니다. 냉정한 듯 하지만 깊숙이 스며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말입니다.

  그 첫 시도가 구더기가 들끓는 부엌, 무너져 내리는 집안에서 동준이 형제를 끌고 나온 영호의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곳에 아이들을 남겨둘 수 없다는 조그마한 의협심으로 출발했던 영호의 아주 작은 발걸음은 조금씩 우울하던 아이들의 마음을 훈풍으로 열어갑니다. 하지만 사람한테 입은 상처는 아주 큰가봅니다. 그것이 누구보다 친한 혈육일 때는 더욱 더...

  동준, 숙자, 숙희, 명환이는 영호의 인정에 그대로 몸을 맡기지만, 동수는 여간해서 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상처 입기 싫은 까닭입니다. 작가는 절대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랜 공부방 생활을 토대로 여러 번의 실망과 절망으로 닫혀진 아이의 마음 열기가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이유 때문입니다. 작가가 기다리는 와중에도 동수와 영호의 지리멸렬한 신경전은 계속되지만,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들을 떠나지 않는 영호에게 동수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갑니다.

  그리고 작가는 누구보다 괭이부리말을 증오했던 명희의 변화하는 모습을 동수의 마음열림과 한 이음새로 묶어놓았습니다. 동수와의 상담을 계기로 '선생'이라는 이름에 명희는 깊은 고민을 갖게 되고, 결국 동수와의 대화를 통해서 명희도 서서히 변해가게 됩니다. 경멸하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조금씩 마음에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가는 것입니다. 동수 역시 본드와 허탈함에서 벗어나 기술을 배우면서 희망 품는 법을 배워갑니다. 사람관계가 가져온 따뜻함에 다시 눈물이 맺힐 정도로 말입니다.

  나이에 맞게 어리광도 부리고 싶었다고 울먹이며 이야기하는 숙자처럼 사실 괭이부리말 아이들 가슴에는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싶어하는 열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너무나 차갑고 척박해서 아이들의 열망은 저 공장 매연에 사라져버리거나, 선생들의 포기 속에 차갑게 식어가게 만듭니다.

  그럼 작가인 '김중미'는 이 동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호처럼 사람을 놓지 않는 그런 따뜻함과 성실함 속에 아이들을 구원해달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시간동안 빈민촌 아이들과 함께 했던 작가가 그런 낭만적인 꿈만을 꾸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꾸 작가가 머리말에서 이야기했던 '눈물'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눈물은 바라보고 있을 때에만... 그 장면에 몰입해야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이해해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머리말에 눈물얘기부터 해댄 그 속의 의미는 우리에게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 외면하지 말아달라고... 그 아이들을 바로 보고 이해해달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눈물을 그렁그렁 담은 눈으로 이 아이들을 제발 따뜻한 눈으로 보아달라고... 그러면 아이들이 빈민촌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그런 뜻은 아니었을까.

  본문에 나오는 구절 중 마음에 남는 부분을 적자면...

  그 아이는 배만 고팠던 것이 아닙니다. 배가 고플 때 마음도 같이 고팠습니다. 하루 세끼 밥으로 텅 빈 그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기엔 너무 늦었나봅니다. 그 아이를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그 아이가 젓가락 한 벌만 들고 학교로 갈 때 가방에 도시락을 넣어 줄 수 있었더라면, 외로움에 지쳐 방 한구석에서 울다 지쳤을 때 이불이라도 덮어 줄 수 있었다면, 그렇다면 그 아이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병에도 걸리지 않았을 테고,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아파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그 아이를 만났다면 그 아이는 사람이, 세상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조금만 더.

  --- 머리말 중에서

  이 집이 나랑 니 아버지가 올 나르고 시멘트 포대 한 봉지씩 사서 몇 달이나 공들여 지은 집이여. 뱃일 나갔다 와서 한밤중에도 시멘트를 발랐다니께. 근데 이 집을 너한테 물려 줄라면 시에다 돈을 내고 땅을 사야 헌다구 그러더라. 이게 왜 시 땅이라고 허는지 나는 모르겄다. 맨 갯벌 천지인데를 동네 사람들이 굴 껍데기랑 돌이랑 쓰레기 갖다가 메워 만든 땅인데.

  --- page.48

  그러나 선생님의 말은 숙자의 마음 깊은 곳에 난 상처를 쓰다듬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숙자는 선생님한테, 사실은 부채춤 출 때 입을 한복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운동회 때 올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일기를 쓰려고 일기장을 펴 들면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서 일기를 쓸 수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 page.52

  '숙자는 착하고 똑똑해. 난 가능성이 없는 아이들은 관심이 별로 없어. 난 문제아들에겐 관심이 잘 안 가.'
  '불량배에다 문제아들이라구?'
  '사실이잖아. 본드 하고 경찰서나 들락거리고 가출하고, 그런 애들 불량한 애들 아냐?'
  '난 니가 나한테 왜 이런 부탁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나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동순지 무너지 하는 애를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너도 좀 이상한 거 아니니?'
  영호는 할 말을 잊었다. 영호는 명희에게,
  '너도 똑같구나. 하긴, 넌 초등학교때도 선생님 같았어.'하고 말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꼼짝 않고 서서 창문 밖만 바라보았다.

  --- page.132∼133

  선생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좀 그럴듯한 직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전 그냥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전 그냥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한가지 기술로 오랫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그런 기술자, 그게 제 꿈이예요.
  .....
  선생님은 제 소원이 시시하다고 생각하시죠?

  --- page.228

  자, 지금부터 촛불 의식을 합니다. 숙자가 먼저 한 해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말하는 거예요. 속상한 일, 슬픈 일, 고마운 일, 그리고 새해에 바라는 일, 그런 걸 얘기한 다음에 옆에 있는 사람의 초에 불을 붙여 주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얘길하는 거예요. 알았죠?

  --- page.230∼231

  높다란 공장 천장 바로 밑에 벽돌 한 개가 떨어져 나가 생긴 구멍으로 마알간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구멍으로 저렇게 밝은 햇살이 들어온다는 것이, 어두운 공장 한구석을 환하게 비출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동수는 햇살이 내려꽂히는 곳으로 가서 섰다. 동수의 뺨 위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동수의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해놓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동수는 잠시 그 햇살 아래 서 있기로 했다. 그 동안 동수의 몸과 마음을 채우고 있던 어둠들을 햇살로 다 씻어 내고 싶었다.

  --- page.272

  '어 새싹이네!' 허리를 펴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니 햇볕이 드는 곳마다 푸른 싹들이 비쭉비쭉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동수는 저 여린 풀들이 볕도 잘 안 드는 공장 지대 한구석에서 긴 겨울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 신기했다. 그리고 아직 여린 민들레 싹이 비좁은 철문 틈에 뿌리를 내리고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민들레의 노란 꽃이 참말로 보고 싶어졌다. 동수는 민들레 싹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담 밑에 먼지처럼 쌓여 있는 흙가루들을 쓸어다가 뿌리 위에 덮어 주며 말했다.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고 나왔니? 외로웠지? 그래도 이렇게 싹을 틔우고 나오니까 참 좋지? 여기저기 친구들이 참 많다. 자, 봐. 여기 우리 공장 옆에도, 저기 길 건너 철공소 앞에도 네 친구들이 있잖아. 나도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친구들 덕분에 이젠 괜찮다. 우리 친구하자. 여기가 좀 좁고 답답해도 참고 잘 자라라. 아침마다 내가 놀아줄게.'

  --- page.272

  날이 춥습니다. 그리고 졸립니다.
  요즘은 몸이 굉장히 피곤합니다.
  집에 오면 씻고 잠자리에 곧바로 눕기 일수입니다.
  지금도 제가 쓴 글을 교정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올리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문맥에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4'

토토로

2002.11.13 22:49:43

이책이 실화라고 해서 더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토미님 날씨가 많이 춥네요.건강조심하세요.

sunny지우

2002.11.13 22:56:19

토미님 저도 이책은 읽지 않았지만 모 TV 방송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았답니다 .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앨피네

2002.11.14 11:25:05

토미님 고맙습니다... ^^ 첫글귀의 파트너를 고를때의 중요한 기준이란 글을 보면서.. 현재 제가 고민하고 있는 뭔가에 도움이 될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저도 TV에서 소개할 때 그냥 좋은 책이구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소개해주시는 글을 읽으면서.. 맘아픈 책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책.. 좋은 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미님도 좋은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래요..

온유

2002.11.14 22:53:26

토미님 이런말을 들은것 같아요...발전이 있을려면 위를 쳐다보구 행복을 갖고 싶으면 아래를 내려다 보라구요 ..위만 쳐다보구 살수 없구 아래만 내려다 보구 살수 없는게 우리네 삶인것 같아요..토미님이 차곡차곡 적어 놓으신 괭이부리말 아이들..꼭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토미님 편안한 시간되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530 러브레터 [5] 화이트 백작 2002-11-14 3037
11529 제가 홈페이지를 업뎃 했답니다~ [4] 차차 2002-11-14 3037
11528 대만팬들과 얘기를 나누며...... [11] 운영자 현주 2002-11-14 3623
11527 고백성사 [5] ★벼리★ 2002-11-13 3262
11526 사랑하는 그들을 기억하며....12회중 3 [9] 현주 2002-11-13 3214
11525 사랑하는 그들을 기억하며....12회중 2 현주 2002-11-13 3044
11524 사랑하는 그들을 기억하며....12회중 1 현주 2002-11-13 3051
11523 이문세노래 모음(sunny지우언니는 꼭 보세요) [1] 토토로 2002-11-13 3132
» 괭이부리말 아이들... [4] 토미 2002-11-13 3031
11521 잊지는 않았겠죠 [14] 김구희 2002-11-13 3032
11520 결혼 축하해주세요~ [18] 운영자 현주 2002-11-13 3050
11519 영화 "라이딩 위드 보이즈" [8] 삐노 2002-11-13 3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