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22] 녹차향님글 펌

조회 수 3004 2003.06.18 10:37:29
소리샘
유진의 겨울연가.. (22)


허탈한 한숨을 깊게 토해내고 돌아서다 저만치 서 있는 그를 보았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을까.
그럼 다 보았겠지.
상혁이가 어떻게 하면서 떠났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가 그런 말 만 하지 않았더라면.. 상혁이 앞에서 그러지만 않았더라면..
상혁이와 나 사이가 이렇게 깊게 골이 패는 일은 없었을꺼야.
다.. 당신 때문이야.
그와 마주서자마자 난 다짜고짜 고함부터 질렀다.
[날 사랑 한다구요? 이게 이민형씨가 말하는 사랑이었나요?
나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었죠? 지금 대답할께요.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상혁이에요! ]
난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은 상혁이야.
지금까지 내가 누굴 사랑했든.. 지금 내게 남은 건 상혁일 사랑해야 하는 일 뿐이야.

호텔 로비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런데.. 이 허전한 마음은 무엇인가..
갑자기 내 마음 그리고 내 곁이 모두 텅 비어버린 느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느낌..
그래도 상혁이가 있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허전한 걸까..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호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꺼져있었다.
언제부터 꺼져있었던 걸까..?
전원을 켜는 순간부터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몇 갠지 모를 만큼 쉴새없이 들어온 음성들..
모두 상혁이와 진숙이였다.
들어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일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앞에 것들은 그냥 두고 방금 진숙이에게서 들어온 음성만 확인을 했다.
[유진아. 너 어떻게 된 거야. 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침에 상혁이랑 채린이 올라갔는데.. 얘들한테도 아무 연락도 없구.
답답해 죽겠어. 여기 704혼데 용국이랑 있어. 이거 들으면 빨리 와. 알았지? ]
다 같이 온거구나.. 그런데 하필 이런 날 다들 오다니.. 후...
마음 같아선 그냥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진숙이에게 안 가볼 수 도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걱정 많이 하고 있을 텐데..

704호..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이 상황을 애들한테 뭐라 설명해야 할지.. 후...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채린이를 보았다.
철썩!
뭐라 말할 여유도 없이 채린인 다짜고짜 내 뺨을 쳤다.
난 뺨을 감싸쥐고 놀라서 채린일 쳐다보았다.
[니가 민형씨더러 나랑 헤어지라고 했니? 나쁜 기집애..
니가 무슨 짓을 하든 난 민형씨 포기 안 해. 절대로! 너한테 뺏긴 건 준상이 하나로 족해! ]
그리곤 채린인 방을 나가버렸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난데없이 뺨을 맞은 수치심과 채린이가 악을 쓰듯 내 뱉은 말들에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유진아! 괜찮아? ]
놀란 진숙이의 얼굴을 보고 난 점짓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괜.. 찮아.. ]
[근데 쟤 왜 저러는 거야? 많이 아프지? 채린이 쟨 정말.. 근데 무슨 일이야? 응? ]
[조금.. 오해.. 가 있었나봐. ]
[오해? 무슨 오해? 그리고 상혁인 어딨어? ]
[응... 그게... 먼저 갔어. ]
[뭐? 먼저 갔다고? 왜? ]
난 더 이상 뭐라 설명할 수가 없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용국인 진숙일 재촉해 방을 나서게 했다.
[야. 그냥 이렇게 가면 어떡해? ]
[그냥 무슨 오해가 있었다잖아. 우리도 그만 가자. ]

진숙이와 용국일 배웅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거울에 비친 날 쳐다보았다.
아직도 왼쪽 뺨엔 붉은 기가 남아있었다.

니가 민형씨더러 나랑 헤어지라고 했니?
너한테 뺏긴 건 준상이 하나로 족해!

그와 채린이 사이에도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어쨌든 내가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내 존재가.. 또 한사람. 채린이한테 까지 상처가 되는 것인가..
하지만.. 채린이에게서 준상이의 이름을 듣게 된 건 뜻밖이었다.
더군다나 나한테 준상일 뺏겼다니...?
예전에 채린이가 준상이한테 관심을 보였던 것.. 그게 다가 아니었던 건가.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날 원망할 만큼.. 그렇게 좋아했었던 건가.
난 나와 준상이 사이에서 채린일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를 멀리해야 할 이유 중에 채린이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껏 난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 애쓰고 내 감정을 앞세워서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난 최소한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잘 하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건 내 자만이고 오만이었다.
지금 내 주위를 돌아봐도 나 때문에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은가..
내 감정에 빠져.. 그와의 선을 명확히 긋지 못해 결국 그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고..
그것 때문에 상혁인 씻지 못할 상처를 받고.. 나에 대한 믿음까지 잃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채린이까지 상처를 받고 돌아가지 않았던가..

[유진아! ]
문이 벌컥 열리며 정아 언니가 뛰어 들어왔다.
[어.. 언니. ]
언닌 잠시 말없이 가뿐숨을 내쉬며 날 쳐다보았다.
[너 괜찮은 거야? 언제 내려왔어? ]
[아침 일찍.. ]
[근데 상혁인..? ]
[어.. 조금 아까 서울 갔어. ]
언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난 일부러 얼굴을 활짝 폈다.
[언니. 어제 밤에 걱정 많이 했지? 실은 분위기 괜찮았는데..
모닥불 피워놓고 밤새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더라구. 배가 고파서 좀 그랬지만. 후후. ]
하지만 언니의 얼굴은 여전히 개운치 않아 보였다.
[너. 딴소리하지마. 무슨 일 있었지? 상혁이랑.. ]
난 언니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아니라면 상혁이가 이렇게 일찍 갈 리가 없잖아? 이 이사하고.. 무슨 일 있었니?
이 이사도 아침부터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
[아무 일.. 아니.. 좀.. 일이 생겼어. 하지만 곧 해결될 일이니까 신경 쓰지마.
근데 오늘은 뭘 해야 되더라? ]
난 수첩을 괜히 뒤적이며 자리를 피했다.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후... 그래 알아서 잘 해라. 나도 모르겠다. ]

몇 번이나 전화길 들었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반복했다.
상혁이에게 전활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연히.. 상혁이에게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난 일부러 더 바쁘게 일에 매달렸다.
너무 바빠서 미처 전화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상혁이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밤이 되자 상혁이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신호가 한참 가도 상혁인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혁아.. 너 많이 속상하지..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은 것 같아.. 미안해..
메시지 받는 대로 전화해.. 기다릴게.. ]
전화를 끊고.. 한편으로 상혁이가 전화를 받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상혁이와 대화를 나눈다는게 아직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 전화를 걸었으니 한가지 일은 끝내놓은 것 같은 이 뻔뻔한 마음이란..
전화를 끊은 후 한참이 지나도 상혁이에게선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금방 풀릴 일이 아니지..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

내게 일어난 일.. 앞으로 겪어야 할 일.. 생각하는 것조차 모든 게 힘겨웠다.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상혁이와의 마찰.. 그것을 단지 그가 나타났기 때문만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상혁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일지도..
만약 상혁이가 날 사랑하는 것만큼 내가 상혁일 사랑한다면.. 그랬다면 달랐겠지..
이렇게 쉽게 흔들리고.. 망설이는 일 따윈 없었겠지..
아무리 그가 내 맘속의 준상일 깨웠다 해도.. 이렇게 어이없이 무너지진 않았을 테지..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상혁이에 대한 내 마음의 변화였다.
상혁이에게서 느꼈던 친구 같은 편안함조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엔 책임감만이 무겁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상혁이에게 받은 사랑과 정성을 이제 와서 모른 체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후에 가족들이 겪을 상처를 감당할 용기도 없었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약속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았다해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젠 들어가 봐야겠다는 마음에 호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와 마주쳤다.
호텔로 가려면 꼭 지나가야 하는 그 길목에 그가 서 있었다.
날 기다린 걸까..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던 그는 날 발견했는지 몸을 바로 세웠다.
[잠깐.. 나랑 얘기 할 수 있어요? ]
[네.. ]
[밖에 오래 있었죠..? 입술이 새파래요. 모닥불이 있는 따뜻한 곳을 아는데.. 거기로 갈래요? ]
난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에게 건네지는 따듯한 말 한마디가 몹시도 그리웠나 보다.
날 배려해주는 그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맘이 따뜻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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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펌










댓글 '6'

소리샘

2003.06.18 10:38:52

녹차향님 글이 22번에서 끝나 있습니다
아쉽게도 언제 다시 쓰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

이지연

2003.06.18 10:54:30

노래하고 글이 넘 잘맞네요^^
아쉬워요..언제쯤이나 유진이 이야기가 계속될지..
지난해겨울이 다시생각나는 오늘입니다..

혜경

2003.06.18 15:22:02

정말 아쉽네요 다음글 기다리고 있을게요

코스

2003.06.18 23:02:44

마음이 너문도 혼란스러웠을 유진의 아픔...
녹차향님의 다음글을 기다려볼께요.
두분께 감사드립니다.^0^

달맞이꽃

2003.06.19 13:41:36

정말 아쉽네요 .
아침이면 어김 없이 게시판에 그들에 흔적이 반가웠는데 ....설원속을 뛰놀던 그들이 많이 그리울것 같군요 .. 정말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겨울연가

2003.06.19 19:10:45

왜 녹차향님은 22회에서 멈추었을까요 ?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셜록홈즈가 와야 해결될 추리사건인지...
아님 녹차향님이 풀어야할 기다림인지...
X 파일(X-file)로 남겨둘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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