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8]

조회 수 3084 2003.07.04 01:25:45
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8)


작성일: 2002/07/19 01:16
작성자: 녹차향(ippnii76)


개학날 아침..
무거운 마음을 추스리며.. 다시 한번 결심을 다져본다.
정유진.. 명심해.
이제 학교엔 준상인 없어.
절대로.. 준상이 흔적같은거 찾으려고 하지마.
그리고.. 호수에서 준상이한테 한 약속.. 잊어버리지마.
이제 준상이는 가슴에 묻은 거야.
추억 꺼내보며 우는 짓 따위.. 이제 하지 않기로 한거.. 기억하지?
넌 잘 할 수 있을꺼야.. 그럼.. 정유진이 누군데..
너.. 자신있지..?

버스를 타러 갔다.
저만치서 상혁이가 걸어온다.
상혁이가 날 보곤 잠시 멈칫한다.
난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상혁아!]
상혁이 얼굴이 굳어있다.
난.. 괜시리 말이 많아진다.
[상혁아.. 방학 잘 보냈어?
아휴.. 난 맨날 잠만 잔 거 있지..?
그동안 연락 한 번 안하구.. 너 혼자만 어디 놀러갔던 거 아냐?]
상혁이 어깨를 툭툭 쳤다.
[앞으로 놀일 있음 꼭 이 누나한테 연락해라. 엉?]
상혁인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다가.. 미소를 짓는다.
[그래. 알았다.. 정유진. 야.. 버스온다. 가자..]
[어... 그래..]
버스에 올라서는 상혁이 뒤에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잘 하고 있는거야.. 너..

한 차례 다른 학교 아이들이 내리고 버스 안이 한가해진다.
상혁이가 빈 좌석을 가리킨다.
[저기 앉아.]
상혁이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창밖 풍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자꾸만 뒤쪽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걸 참으면서..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떠올려지는 준상이의 모습..
처음 만난 날.. 나를 바라보던 준상이의 눈빛..
후.. 순간 가슴이 두근.. 거린다.
입술을 깨물었다..
너..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벌써부터 이러면.. 어떡하니..?
[유진아..]
[어?]
정신이 번쩍 든다..
[너.. 정말 방학 때 잠만 잔 거 맞구나?]
[어..?]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웬일이냐? 잠꾸러기 정유진이..?
버스에서 잠도 안자고..? 서서도 졸던 애가..]
그제서야 상혁이 말이 이해가 된다.
[야.. 김상혁. 나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고3인데..
새해를 맞아 결심했다. 인제 버스에서 졸지 않기루..
고3이 졸다가 학교 지나쳐버리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안그래?]
[이야.. 정유진. 결심이 대단한데..?
근데 두고보자.. 몇일이나 가나.. 하하]
상혁이의 웃음소리에 맞춰 나도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결심했지.. 다신 버스에서 자지 않겠다고..
누구도.. 준상이 대신 날 깨우게 하지 않겠다고.. 그런 일 이제 만들지 않겠다고..

교실에선 한바탕 소란이 인다.
아이들끼리 여기저기 모여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용국인 아이들을 모아놓고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어디에 놀러가서.. 어떤 여자를 만났고.. 그래서.. 이랬고.. 저랬고..
진숙인 옆에서 계속 투덜대고 있다.
[치.. 용국이 쟨 어쩌면 저렇게 뻥을 잘치니?
행여 여자 만나서 진짜루 저랬겠다.. 안그래. 유진아?]
[그러게..]
여전하구나.. 다들..
[근데 너.. ]
[응?]
[너.. 인제 괜찮아? 준상이...]
난 서둘러 진숙이 말을 끊었다.
[야.. 진숙아. 우리 3학년때도 같은 반 될 수 있을까?
같은 반 안되면 어떻하니..? 서운해서..]
[그러게 말야. 너랑 헤어지기 싫은데.. 용국이랑도 같은 반 됐음 좋겠다. 헤...]
훗...
[아휴.. 용국이 뻥치는 거 더이상 못들어 주겠다. 가서 한소리 해야 그치지. 저거... 유진아 잠깐만..?]
[야! 권용국!]
진숙인 용국이한테 가서 뭐라뭐라 소리를 친다.

후....
잠깐씩 혼자가 되면.. 어김없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온몸의 긴장이 한순간 풀려나가는 기분이다.
힘들게 가방을 열고 책들을 꺼냈다.
잠시 그러고 멍하니..책상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유진.]
여태껏 나한테 말한마디 걸지 않던 채린이.. 무슨 말을 하려고..?
[너.. 이제 보니 대단한 구석이 있었구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무슨.. 말이야?]
채린인 입가에 비웃음을 보이며 차갑게 쏘아본다.
[훗.. 너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 하는 말이야.
저번에 준상이 장례식 때 안 울던거 보고 독한 앤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금방 아무렇지도 않을 줄은 몰랐거든..]
울컥 치미는 화를 애써 눌렀다.
[그래서..?]
채린이의 눈에 반짝 눈물이 비친다.
[나쁜 기집애.. 누구 때문에 준상이가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이랑 이럴 수 있니..?
넌.. 준상이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양심도 없는 기집애 같으니라구...]
채린인 의자가 쿠당탕 넘어지도록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다.
잠시.. 아이들의 눈이 나에게 쏠린다.
입술을 깨물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애써 참고 있었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뭐..?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니가 어떻게 알아? 내 맘이.. 어떤지.. 니가 어떻게 알겠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참고 있는데..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다 타버리고.. 텅 비어버린 내 가슴을.. 니가 볼 수나 있어?
내 웃음이.. 즐거워 보이니?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걸.. 니가.. 어떻게 알겠어..

채린이 니가 부러워..
나도.. 너처럼 그렇게 속시원하게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무나 붙잡고.. 울고싶어..
나.. 정말 힘들다고..
준상이 생각..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나서.. 참기 힘들다고..
준상이가 너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어 미치겠다고..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누구한테 내가 그런 얘길 할 수 있겠어..
나 때문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런 내 모습 때문에.. 가슴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참고 있는데.. 나 혼자 아픈걸로 끝내고 싶은건데..
이게 그렇게 잘못 된거니..?
나만 참으면.. 다들 힘들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게 하려는 게 잘못 된거야?

책상위에 손수건이 놓인다.
고개를 들었다.
상혁이가 옆에 서있다.
상혁인 안타깝게 날 바라보고 있다.
[그만 울어. 유진아.]
[상혁아.. 미안해.. 나.. 안 울려고... ]
상혁인 한숨을 내쉰다.
[채린이가 한 말.. 신경쓰지마.
니가 얼마나 힘들게 참고 있는지.. 나 다 알아..
그냥..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냥.. 나한테 만이라도.. 털어놓지..
그럼.. 니가 덜 힘들었을꺼 아니야..
왜 바보같이 너 혼자서 그렇게 참고 있니.. 바보같이.. ]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미안해.. 상혁아..
난.. 그냥.. 너 한테 미안해서..
준상이 얘기.. 너 한테 말한다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서..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한다는거.. 잘 알고 있는데..
어떻게 너한테 그런 얘길 할 수 있겠어..
준상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너무 그리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어떻게.. 내가.. 후....

상혁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펌










댓글 '4'

달맞이꽃

2003.07.04 09:49:54

소리샘님..
어제는 하루종일 겨울연가 씨디를 들었어요 ..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그들에 아름다운 모습이 주마등 처럼 스쳐 가는데 기분은 좋든데요 ..가슴 한켠에 아련한 마음도 있지만 행복했어요 ..후후후~~~잘읽고 있어요 .고마워요~

영아

2003.07.04 10:35:24

소리샘님~~이 음악만 들어도 가슴이 저려오네요...
눈물이 두 눈에 그렁그렁 맺혀....열연하던 우리지우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소리샘님 좋은날 보내세요....^0^

sunny지우

2003.07.04 22:37:03

항상 녹차향님의 글을
정성껏 올려주시는 소리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그리고 계속 좋은 글 기대합니다.
평안한 밤되세요

코스

2003.07.04 22:48:45

오늘의 글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을 이어주었네요.
준상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유진의 아픈 마음들....
유진이가..민형이 한테 그랬었죠!!
'하루 아침에 옆에 던 사람이 없어진 느낌'
어떤건지 아느냐고 물었었죠.
소리샘님....겨울연가에 향한 감성이 식지 않게 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남은 시간 행복한 시간 되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70 ( M/V) "장화홍련" OST [2] sunny지우 2003-07-04 3079
14569 지우 - 그대는 나의 아름다운 선물 [5] sunny지우 2003-07-04 3136
14568 time to say goodbyeㅡSarah Brightman/ Andrea Bocelli[뮤비] [3] 자유의 여신 2003-07-04 3091
14567 고무장갑 소녀[헤르메스 펌] [4] 비비안리 2003-07-04 3090
14566 jiwoo & bae yong jun liz 2003-07-04 3092
14565 다들 안녕하세요. [6] 지우애 2003-07-04 3110
» 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8] [4] 소리샘 2003-07-04 3084
14563 아 나의 실수....! [4] 마르시안 2003-07-04 3152
14562 외모에 대한 관심도 검사 [3] 마르시안 2003-07-04 3150
14561 피,치,대에서의 다양한 표정의 지우 [4] 코스 2003-07-04 3159
14560 사랑스런 그녀... 최지우<7> [6] 꿈꾸는요셉 2003-07-03 3199
14559 바자 자선 바자회를 찾은 스타들 [지우님도 함께] [5] 눈팅 2003-07-03 3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