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15]

조회 수 3067 2003.07.19 12:02:14
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15)


작성일: 2002/07/30 05:44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아침이 되어도.. 내 맘은 도무지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제의 그 빈 가로등이.. 사진처럼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아무나..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지금보단 덜 가슴이 아플텐데..
왜 아무도 그 자리를 거들떠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을까..
허망함으로 가슴 한켠이 쓰리다..
지난 1년 동안.. 그 장소를 지나칠 일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조마조마했던가..
누군가 그 자리에 서 있으면.. 마치 내 비밀장소를 침범당한 것 마냥
당장 달려가 그 사람을 밀쳐내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아무도.. 그 자리에 서 있게 할 수 없어..
거긴.. 나와 준상이 자리야.. 우리 외엔.. 아무도.. 서 있을 수 없어...
...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내 바램처럼.. 어제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는데.. 그런데..
그 옆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함..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어떻게.. 다들.. 아무 관심이 없는 건지..
후...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수없이 많이 서있는 똑같은 가로등일 뿐..
딴 생각을 하며 걷다가 어쩌다 부딪힐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일 뿐인 것을..
그랬어... 그 자리는.. 단지 나에게만 중요한 곳이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똑같은 가로등일 뿐이었어..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점점 그 가로등에서 멀어지면서..
준상이가 서있기를 간절히 원하던 그 가로등 밑도.. 사람들에게 가려 보이지 않았다.
잠깐.. 준상이가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준상이의 모습은 사람들 틈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텅 빈 가로등 밑..
사람들에게 어깨를 툭툭 치이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준상이에게서 멀어지는 느낌..
나도.. 이젠.. 현실속의 사람들 속에 섞여가는 느낌..
허망함으로 무너지는 가슴을 애써 추스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난.. 그렇게 많은 똑같은 가로등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오늘.. 그 날인데...
호수에 갈까...
문득 두려워진다.
혹시.. 그곳에서.. 준상이가 떠오르지 않으면.. 어떡하지..?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문을 열길 기다리며 그냥 누워있었다.
띵동..
아.. 엄만 일찍 시장에 간다고 그랬었지..
그럼 희진인..?
지금 몇시지..?
벌써 12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란걸 알고 놀라서 일어났다.
여태.. 잔거야?
부시시한 모습을 대충 정리하고 대문을 열었다.
[상혁아.. ]
[아직까지 자고 있었니? ]
[어..? 어... 어제 늦게 잠들어서... 그런데 무슨 일이야? ]
그제서야 상혁이 손에 들려있는 국화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어.. 오늘.. 준상이.. 호수에 같이 가자구.. 너도.. 가 볼 생각이었지..? ]
[ ... 어... 잠깐 들어올래? 준비하려면 좀.. 시간이 걸릴꺼야.. ]
[그래.. ]
상혁일 거실에 두고.. 욕실에 들어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쳐다보았다.
퉁퉁 부은 얼굴.. 부석부석한 머리..
한숨을 내쉬며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상혁이와 함께 버스에 올랐다.
무릎위에 놓인 국화꽃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난..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상혁이가 준비를 했네.. 후...
버스에서 내려 호숫가로 내려갔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우리 외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상혁이가 말을 꺼낸다.
[올 겨울엔.. 이상하게 눈이 안온다.. 그치..? ]
[그러게.. 첫눈이.. 왔었니..? ]
[글쎄..? 저번에 조금 날리기만 했었지.. 첫눈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조금.. ]
[그래.. 그랬었지.. 참.. ]
1년전에 여긴.. 눈으로 온통 하얬었는데..
바짝 마른 나무들과 건조한 땅.. 호숫가가 더 쓸쓸해 보인다.

우린 곧장.. 1년전 그 자리로 갔다.
이상하다.. 온 몸의 신경이 굳어버린 걸까..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커다란 상자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온통.. 고요하기만 하다..
추위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멍하니..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만 쳐다보았다.
[호수가 얼지 않았네..? 올 겨울이 예년보다 따뜻하다더니.. 정말인가봐. ]
상혁이가 국화꽃을 싼 비닐을 벗기며 혼잣말처럼 툭.. 말을 던진다.
상혁이의 말에 새삼스럽게 물결을 바라보았다.
정말... 호수가.. 얼지 않았구나..
그래.. 작년엔.. 여기 호수가 다 꽁꽁 얼어있었는데..
상혁이가 꽃 몇송이를 나에게 건네주고 물가 가까이로 다가선다.
나도.. 상혁일 따라서 옆에 섰다.
상혁인 한송이 한송이.. 천천히 물위에 던진다.
[시간.. 참 빨리 간다... 벌써 1년이 지났다니.. 그치..? ]
난.. 아무 말 없이.. 조금씩 멀어지는 국화꽃을 바라보았다.
상혁인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그냥 말을 계속 잇는다.
[정말.. 다행이야.. 너 괜찮아보여서..
사실.. 오늘 너한테 가면서.. 많이 걱정했었어.
혹시나.. 못 일어나고 있으면 어쩌나.. 준상이.. 생각하면서 울고 있으면..
그런 네 모습을 어떻게 보나.. 그랬었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괜찮은 모습을 보니까.. 안심이 되면서도.. 맘이 아프다.
1년전 오늘도.. 너.. 이랬었잖아..
그때도.. 네가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네가.. 더 가슴이 아팠어.. ]
상혁인 손에 든 꽃을 다 물위에 던지고 나서 날 바라본다.
[유진아.. ]
난.. 아무말 없이 그냥 멍하니 꽃들을 바라보았다.
[너.. 괜찮니...? ]
상혁인 한숨을 내쉬며.. 다시 호수로 고개를 돌린다.
[준상이.. 그렇게 가고.. 많이.. 아쉽고.. 미안하더라..
준상이하고.. 서로 안좋은 모습만 보였는데..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을텐데..
오해도 풀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텐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짧을 줄.. 정말 몰랐었어.. 후... ]

호숫가에 앉아.. 말없이 한참을 있었다.
[유진아.. 안 춥니? ]
[응..? 글쎄.. 추운지 잘 모르겠는데... 너.. 춥니? ]
상혁이가 옷깃을 여미며 어깨를 으쓱인다.
[조금.. 춥네..? 내가 몸이 약해졌나..? 너 같이 추위 잘타는 애보다 더 추워하다니 말야.. 훗.. ]
난 상혁이에게 억지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먼저.. 갈래..? 나.. 조금 더 있고 싶은데.. ]
[왜.. 같이 가... ]
상혁인 같이 가자고 하려다.. 알겠다는 듯 말을 멈춘다.
[그럴.. 래..? 너무 오래 있진 마라.. 감기 들지도 모르니까.. ]
상혁이가 툭툭 털고 일어선다.
[유진아.. 너무.. 오래 있진 마.. 알았지..? ]
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호수로 눈을 돌렸다.
발치에 놓인 국화꽃 몇송이를 들고 물가 가까이 다가갔다.

상혁이가 가고.. 나 혼자 남아있게 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신경이 한순간에 풀려버린다.
목아래 돌덩이가 얹힌 것 같이 아프다..
가슴이 싸하게.. 쓰려온다.

들고 있던 꽃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 힘껏 던졌다.
조금더.. 준상이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물가로 다시 떠밀려 온 꽃들도 건져서 힘껏 던졌다.
후....
폐 깊숙히 쌓여있던 한숨을 토해냈다.

준상아...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펌












댓글 '2'

소리샘

2003.07.19 12:05:56

방학이라서 컴 차지하기가 어렵네요
월요일은 용평리조트 가족과 함께 갑니다
여름의 용평리조트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유진이와 준상의 추억의 장소를 그 흔적 찾기를 해 볼참입니다
그럼 좋은 주말 되세요

스타 지우팬

2003.07.19 13:09:41

소리샘님 께서도 즐거운 주말 되시고, 즐거운 여행되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701 [연합뉴스]KMTV 특집 '뮤직비디오 10년 결산'- 최지우 눈팅 2003-07-19 3073
14700 힘내세요, 지우님, 현주님 그리고 스타지우 여러분!! [2] jwfan 2003-07-19 3288
14699 스타쥬가족들 - 귀여운 `황구'봐요..(펌) [2] sunny지우 2003-07-19 3112
14698 sidus HQ [12] 김정용 2003-07-19 3205
14697 지우씨? [4] 눈팅이 2003-07-19 3097
» 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15] [2] 소리샘 2003-07-19 3067
14695 운영자님 알아봐주세여. [2] 포엡지우 2003-07-19 3249
14694 웃교 디집어짐..ㅋㅋㅋ [1] ★벼리★ 2003-07-19 3203
14693 지우님 오늘 파로마 가구 cf [1] 눈팅팬 2003-07-18 3289
14692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동영상] [1] 자유의여신 2003-07-18 3125
14691 [헤럴드경제]겨울연가 일본에서 인기몰이 [2] 제니 2003-07-18 3117
14690 겨울연가재방송해요 [1] 이윤정 2003-07-18 3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