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연예문화탐험기[펌]

조회 수 3052 2003.11.09 14:24:32
지우사랑

  배국남의 연예문화탐험기


1998년 2월 국제부 기자로 있다가 문화부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방송 연예 부분을 맡으라는 부장 지시에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연예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들에 대한 관심 역시 일반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탓에 영상 분석이나 드라마 분석은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방송 연예면의 상당 부분은 연예인 그것도 스타를 취재해 기사를 써야하기 때문에 곤혹스러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곤혹스러움을 확대재생산 한 사건은 평소 알고 지내던 MBC 장수봉PD(‘아들과 딸’, ‘카레이스키’, ‘마당 깊은 집’, ‘흐르는 것은 세월뿐이랴’ 등등 진중한 작품을 주로 연출하고 연기자들에게 독종으로 알려진 연출자)가 대뜸 방송연예 담당기자 하려면 절대 연예인에게 정주지 말라는 충고였습니다. 20여년 넘게 연예인을 만나고 인연을 맺었던 연출가의 입에서 “정주지 말라”는 말은 저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지요.

사람 사는데 정주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라는 답으로 장PD의 충고를 받아 넘기고 방송연예 담당 기자로서 원칙을 하나 세웠지요. 아무리 만능 엔터테이너시대이지만 연기자는 연기력을, 가수는 가창력을 판단해 기사의 비중을 결정하고 비판과 칭찬을 하자는 생각이었지요.

물론 칭찬과 사생활 위주로만 흐르는 스타 기사에 반발도 제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 원칙을 지켜나갈수록 스타의 팬들로부터 무자비한 비판과 항의는 쏟아졌고 그리고 연예계의 악명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소신과 명분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원칙 때문에 인터뷰를 하던 수많은 연기자들이 저를 만나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요. 저는 질문을 할 때 절대 우회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볼께요. 송혜교에게 저는 “당신처럼 연기 못하면서 당신처럼 인기가 높은 것은 우리 대중문화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송혜교의 당시 힘들어하는 모습이 선하군요. 물론 본인은 가슴이 아팠겠지만 그의 발전을 기원하는 비판은 존재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요.

드라마나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작업을 하기에 개인의 생활보다 팀워크를 존중해야합니다. 드라마 ‘토마토’ 촬영때 신구, 박원숙, 전원주 등 중견 연기자들이 모두 제시간에 촬영장에 도착해 연습하고 대기하는데 김희선이 몇 번 늦었는데 전 김희선에게 인기보다 소중한 것이 성실함이라고 충고한 적 있지요. 그것을 기사로 쓴 적도 있습니다.

서설이 길었군요. 장PD의 충고를 깨닫는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식은 죽 먹기 하듯 어기던 곳이 연예계이더군요. 대중에게 비쳐지는 이미지와 실제 스타간의 괴리 속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차인표를 만났지요. ‘왕초’ 라는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는데 저는 그에게 대뜸 당신의 연기는 세밀하지 못하고 캐릭터와 당신이 따로 노는 것 같아 이제 어깨에 힘을 빼고 연기를 하면 좋겠는데요라는 말을 했지요.

다른 연예인 같으면 얼굴이 찡그러지고 신경질적 반응이 나올 법한데 그는 달랐습니다. 적확한 지적이라며 자신도 그 부분에 대해 개선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그 말을 ‘왕초’에서 실천하는 노력도 보여줬고요. 이후 그와의 만남은 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지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연예계에도 신의와 약속을 지키는 친구가 있으며 정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은 제가 갖고 있는 연예계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였고 취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거였으니까요.

저는 차인표의 생활인으로서의 모습과 연예인으로서의 모습을 오랜 기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술 한잔하면서 부모의 이혼으로 힘들었던 유년시절 그리고 가난한 유학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당당하게 성장한 그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고 언제 어느 때나 선배, 후배 연기자들에게 깎뜻하게 대하고 늘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에 먼저 나타나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저도 저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반성도 하게됐지요.

가끔 차인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모습이 있습니다. 신문사에서 인터뷰 도중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야간 고교생들이 우르르 몰려 사인을 부탁하는데 그는 싫은 내색하지 않고 사인을 해주며 열심히 살라는 당부까지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차인표에게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그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본적 있지요. 폴더가 떨어져 테이프로 붙인 낡은 전화기였지요.

스타면 좋은 핸드폰 쓰지 그러냐고 농담을 건넸는데 대뜸 쓰는데 전혀 지장 없는데 바꾸기는 왜 바꿔요라는 대답을 하는 겁니다.(후에 절친한 후배 윤태영이 핸드폰 선물을 해 장기간 썼던 핸드폰을 교체했음) 자신의 병역 문제와 유승준의 병역기피 의혹이 비교가 될 때에도 그는 저에게 저도 잘못을 많이 하고 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고 유승준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하더군요.

영화계로 진출한 다음 그와의 만남이 뜸해졌는데 간간이 그는 전화를 해 안부를 전해왔습니다. ‘아이언 팜’ 등 그가 출연한 영화가 흥행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힘들었을 터인데 남까지 챙기는 것이 고마웠지요.

최근 스타와 매니저가 몸값 올리기에만 급급한 줄 알았더니 차인표가 출연한 ‘목포는 항구다’ 영화가 투자의 문제가 생겨 차질을 빗자 그가 투자자를 직접 만나 자신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영화에서 빠지겠다며 투자자를 설득하는 차인표를 보고 연예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한 영화 제작자의 말을 듣고 차인표가 한결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저는 거의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차인표에 대한 사생활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요즘 연예계가 돈만이 지배하는 그래서 더욱더 대중문화가 척박해지는 풍토가 아쉬웠고 돈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차인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인표가 10월 4일 첫 방송하는 김수현 극본의 ‘완전한 사랑’에서 주인공으로 나서 오랜만에 안방 시청자들과 만나 반갑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 술한잔 하면서 인터뷰를 할 생각입니다.(인터뷰 모습을 다음 글과 동영상으로 보여줄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연예계에 정줄 사람이 많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래야 저는 연예계를 담당하는 후배 기자에게 연예인들에 정주지 말라라는 냉정한 말을 안 할 수 있으니까요.

배국남 문화평론가


댓글 '4'

sunny지우

2003.11.09 17:01:11

지우사랑님~ 좋은기사 감사드려요.
저도 아름다운배우 치인표씨를 좋아합니다.
참 훌륭한 분같아요.
신앙인으로도 동질감을 느끼고요.
인격의 성실함이 연예계의 학같은 분위기를 느낀답니다.
지우-그녀의 배우자감도 어느 분야의 분이든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같는 답니다..
새로운 한 주 행복하시길...

소망

2003.11.09 21:49:56

차인표님이 성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연예계의 학같은 인품을 지닌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훌륭한 분들이 연예계에 많아 기쁩니다
그런데... 배용준님은 어떠한지 매우 궁금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다음에는
배 평론가님의 "배용준 평"을 꼭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문형

2003.11.10 00:13:25

지우사랑님.
참 사람의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게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우리 지우님도 늘 겸손하고 자신보다는 상대배우나 스텝분들에 대한 배려가 더 많은 배우로 인정 받았음 좋겠어요.
우리는 알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많다는게 늘 안타까웠거든요.
좋은 소식 감사해요...

박혜경

2003.11.10 13:39:36

좋은글 감사합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 괜찮은 배우군요 차인표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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