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스포일러 有]

별점=[★★☆] 누구나 비밀은 있다


이제 섹스는, 더 이상 종족보존의 신성한 의무감 때문에 치러지지는 않는다. 깊은 방의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는 두 남녀만의 비밀스러운 의식도 아니고, 그것을 위해 보름달 뜬 밤, 목욕재계로 정갈하게 심신을 다듬고 난 뒤에 큰 호흡으로 달의 정기를 빨아들이지도 않는다. 우주의 음기와 양기가 만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는 거창한 의미부여도 물론 없다. 그렇다고 해도, 내쇼날 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세계 같은 다큐멘타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들의 짝짓기와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 다른 점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남녀의 유혹적인 제스처로 가득 넘치는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질문으로도 이어진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맞는 말이다. 부모형제 절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하는 비밀이 조금씩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 비밀이 섹스와 관계되어 있고, 그것도 세 자매와 한 남자 사이의 엉키고 엉킨 섹스와 관계되어 있다면,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결코 심각하게 무게 잡지 않는다. 섹스는, 이제 밥 먹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목격할 수 있는 가벼운 일상사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한 남자가 서로 가까운 여자들과 동시에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은, 서구 문화에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교적 도덕관념이 오랫동안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던 우리 사회에서, 한 남자가 동시에 여러 여자를, 그것도 서로 자매간인 여자들과 동시에 관계를 갖는다는 설정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 이 금기는 가볍게 깨진다. 이제는 새삼스럽게 금기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한 것처럼 대담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 여자를 차례로 유혹하여 관계를 갖는 남자는 매력적인 외모의 수현(이병헌 분)이다. 그는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셋째 미영(김효진 분)부터, 두꺼운 안경을 끼고 도서관에서 살다 시피하는 둘째 선영(최지우 분), 결혼의 권태에 사로잡혀 나른한 일상을 살고 있는 첫째 진영(추상미 분)의 순으로 유혹한다. 영화의 구성은 이 유혹의 과정을 세 파트로 나누어 보여주면서, 각각의 파트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여자의 모습을 다른 파트를 진행하면서 보여 줌으로써 다층적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세 자매의 캐릭터는 각각 다르다. 셋째인 재즈 보컬리스트 미영은 자유연애주의자다. 간단히 말하자면 선수인데, 그녀는 수현을 보고 내 남자로 만들어야겠다고 점찍는다. 그러나 수현은 한 수 위다. 그는 미영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언니인 공부만 아는 범생이 선영을 유혹한다. 이 영화의 재미는 유혹 뒤의 행위나 이야기보다는, 이런 유혹의 과정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이미 선수인 미영과 수현의 만남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서 이론에는 훤하지만 실전에는 쑥맥인 범생이 선영과 수현의 만남이 훨씬 재미있다. 영화의 가운데 토막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해 가장 노력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 파트인 첫째 진영과 수현의 이야기는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유부녀인 첫째 진영이, 비록 결혼 후에는 긴장감이 사라진 남편과의 무감각한 섹스에 신물이 나 있다고 해도, 배가 툭 튀어나온 남편(김해곤 분)이 가족과는 섹스하는게 아니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도 아닌 여동생의 약혼자와 손쉽게 섹스하는게 과연 현실적인 설정이냐고 되물을 필요는 없다. [정사]에서 이미숙은, 여동생의 약혼남인 이정재와 컷 키스를 하기까지 영화 시작 후 50분이나 걸렸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그때보다 무려 5년이나 지난 것이다. 첫째 진영과 수현의 섹스에 대해 당신이 의문점을 갖는다면, 지금처럼 속도전의 시대에 5년이면 성의식이 얼마나 변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고 핀잔받기 딱 좋다.

자칫 질펀하고 음란한 섹스 이야기로 점철될 것 같은 이야기에 균형을 잡고 생기를 전해주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이다. 누구보다 이병헌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이 영화의 기획 자체가 한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동남아 시장의 큰 그림을 갖고 만들어진 것처럼, 이병헌 최지우로 이어지는 캐스팅의 시너지 효과는 상당하다. 이병헌은 세 자매를 모두 유혹하여 그들과 차례로 섹스하는 선수의 진면목을 보여주면서도 밉지 않게 스스로의 격을 만들어가는데 성공하고 있다. 역시 그는 선수다. 청순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최지우도 성공하고 있다. 동생의 남자인줄 알면서도 알 수 없이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면의 흐름은 비교적 잘 드러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영국 워킹톨사의 원작 [어바웃 아담 About ADAM]과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문화적 차이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수현은 세 자매를 유혹하는가? 성적 자유를 위해서? 모두에게는 비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기 때문에? 비밀이 있음으로서 수면 위로 드러나 있는 현재의 삶이 탄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세 자매를 동시에 유혹해 섹스를 했다고?

화제를 생산하기 위해 이런 설정을 빌려와 영화적으로 기획을 했다면 그것은 성공했다. 이 영화가 표방하는 성적 자유는 충분히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위성의 측면에서 수긍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영화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개방적으로 변모해가는 현단계 성의식과 비교해봐도 파격적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성의식은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성의식을 훨씬 앞질러가고 있다. 그런 문화적 차이나 당혹감을 진지하게 정면으로 돌파하는 대신, 영화는 코믹하고 가벼운 터치로 정면승부를 피해나가려고 한다. 그것은 상업적으로는 안전한 방법이고 현명한 방법은 되겠지만 미학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말초적 감각을 자극해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화제를 양산해서 주목을 받는 것 이외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진정으로 성혁명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이런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될 것이다.




댓글 '2'

코스

2004.07.21 23:19:23

이분의 평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누.비.다에 대해서 쓴 글이라 읽게 되네요.
많은 평론가들이 이런 장르에 후한 점수를 주진 않드라구요.
무슨...영화 한편에 많은걸 바라보고 있는지...
이보다 더 못한 영화에 후한 점수와 좋은 평론을 썼던게 기억이 나서리...
이쁜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지 않는 평론가랍니다.
난...항상 이분 이름을 듣게 되면... 자기 글에 대한 평점은 얼마나 줄까??
이것이 궁금하다눈...쩝ㅡ.ㅡ;;

자몽

2004.07.21 23:45:22

저도 이 사람 글을 그닥 좋아라 하진 않지만....
저도 궁금해요...왜 수현이 자매 모두를 유혹하는지..그래서 더 보고싶어지는걸요..
그 비밀을 꼭 알고야 말리다...8월 1일 부산팀 다 모엿!!!!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459 비밀의 크기만큼 행복해진다.....누비다 [3] 주주~ 2004-07-22 3142
20458 한밤의 TV연예(SBS 오후 11시5분)...오늘 지우님 나오십니다.^^ [5] 미리내 2004-07-22 3228
20457 큰일 났습니다.. [5] ★벼리★ 2004-07-22 3071
20456 jiwoo news and ..... [3] shun 2004-07-22 3252
20455 ~보셔요~ [3] †토끼지우† 2004-07-21 3067
» 영화평론가 하재봉의 '누구나 비밀은 있다' 평~~~ [2] 2004-07-21 3478
20453 파로마가구 사진 보정이미지 10장 [8] 김진희 2004-07-21 3298
20452 늦 은 ..후기 ㅎㅎㅎ [4] 채송화 2004-07-21 3085
20451 지우씨, 변신도 성공적이고 이제 영화 대박나는것만 남았죠...^^ [1] 미리내 2004-07-21 3092
20450 누비다 시사회 갔다왔어요... ^_______^ [3] 앨피네~★ 2004-07-21 3441
20449 최지우 '베드신 쉬웠다' 도발적인 소감 눈길 [6] 지우러브 2004-07-21 3262
20448 최지우,가장 기억에 남는 베드신? [1] 앤셜리 2004-07-21 3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