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전쟁터에서도 공항에서도 거침없이 하이힐!
[매거진t 2007-05-29 10:30]
<쩐의 전쟁> 박진희 VS <에어 시티> 최지우
어젯 밤 야심한 시각, <야심만만> 출연자들이 사랑의 기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사랑은 때로 고기를 멀리하게 만들고, 때로는 씻지 않게 만들며, 어떨 땐 공부를 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난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랑의 기적’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1년 365일, 운동화로 연명하던 여자에게 하이힐을 신게 만드는 것이다.
뭍에 나온 인어공주의 고통이 이럴까?
여자들도 알고 있다. 살인무기가 따로 없다는 걸.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하이힐로 갈아 신은 뒤 주구장창 하이힐만 신어온 여자들이나, 딱딱하면서 울퉁불퉁하기까지 한 보도블럭 위를 하이힐을 신고 걸어보지 않은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편안한 신발에 길들여진 여자에게 하이힐은 공포의 대상이자,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하고 싶은 싸움 상대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해 뒤뚱거리고, 발바닥이 찢어질 듯이 아프며, 좁은 볼에 갇힌 발의 살로는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들 때마다 유리 조각에 발바닥이 피범벅이 되는 한이 있어도 싸움의 패배를 인정한 다음, 맨발로 걷고 싶은 심정이 된다.
‘오빠’때문에 일어난 ‘사랑의 기적’
그런데 최근 우리 편집부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다. ‘루저’ 패션을 표방하며(본인은 조니 뎁과 사귀던 시절의 케이트 모스 스타일이라 주장했지만) 너덜너덜한 스니커에 미군 부대에서 주운 듯한 군복 재킷을 걸치고 다니던 에디터 C가 꼬질꼬질하기가 ‘홈리스’의 그것 못지않던 스니커를 벗어 던지고, 10센티미터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의 놀람에 대한 C의 반응은 짧고도 간결했다. “오빠가 이걸 좋아해요.”
아아, 야속한 오빠들. C의 ‘오빠’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오빠’들이 하이힐을 좋아한다. 남의 속(발)사정도 모르고…. 그런데 세상엔 ‘오빠’도 없으면서 매일 밤 발만 피로 물들이는 여자들도 있다. 그녀들이 하이힐의 불편을 감내하는 이유 역시 대단히 간단하다. 하이힐이 더 섹시하게 만들어주고, 더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니까.
전쟁터에서도 섹시한 그녀의 비결
<쩐의 전쟁>에서 서주희 역을 맡은 박진희를 보자. 이 드라마에서 박진희는 캐주얼한 옷차림을 선보인다. 대개 스키니 진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테일러링 재킷을 걸쳐 입는데 캐주얼하고 중성적인 옷차림인데도 1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은 덕분에 중성적이기는 커녕 ‘야시시’한 느낌이 뚝뚝 흘러넘친다. 굽이 높은 데다 발등이 드러나는 디자인의 스트랩 슈즈(때로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는 그녀가 입은 옷에 관계없이 ‘여자!여자!여자!’ 룩을 만들어준다. 굽 높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어지는 가슴선과 뒤로 빠지는 엉덩이 라인이 이루는 S라인은 불편한 신발을 감내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쯤 되겠다.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심심한 선택
몸매로 치자면 <에어 시티>의 최지우라고 질쏘냐. 바지로 가렸지만 충분히 상상이 되는 쭉 뻗은 다리, 길고 우아한 목선, 보드러워 보이는 머릿결까지 그녀가 타고난 미학적 우성 인자들은 답답하고 딱딱하기 십상인 검은색 정장 차림마저 아름답게 만든다.
검은색 바지 정장, 간만에 보니 새롭기도 하고, 블라우스를 잘 고른 날은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신발을 고르는 안목은 ‘꽝’이다. 일하는 여성이 검은색 바지 정장을 즐겨 입는다는 설정은 좋지만, 일하는 여성이라고 꼭 촌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나? 세련된 커리어 우먼은 기본형 펌프스만 신어야 한다는 법은? 지금 그녀가 신고 다니는 펌프스(앞코가 뾰족하고 옆선이 ‘얄상’하며 굽높이가 어중간한)는 변두리 여중생들의 가방 속에 숨어 있는 ‘어른 위장용’ 신발 같아서 제가 섹시한 줄 알지만 전혀 섹시하지 않고, 제가 섹시한 줄 알아서 오히려 답답해 보인다.
그녀가 앞코가 동글동글하고 굽이 전혀 없는 발레리나 슈즈를 신었다면 훨씬 더 사랑스러웠을 테고,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다면 한결 더 시크해보였겠지만, 여성스러움과 시크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면 컬러가 좀더 화려하고 디자인도 좀더 과감한 스틸레토 힐이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C의 ‘오빠’가 C의 컨버스를 벗긴 것처럼 김지성이 한도경의 촌스러운 펌프스를 벗기는 날이 오기를. “벗!겨!라!” “벗!겨!라!” 포르노 삼매경에 빠진 중학생처럼 소리라도 지르고픈 심정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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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t 2007-05-29 10:30]
<쩐의 전쟁> 박진희 VS <에어 시티> 최지우
어젯 밤 야심한 시각, <야심만만> 출연자들이 사랑의 기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사랑은 때로 고기를 멀리하게 만들고, 때로는 씻지 않게 만들며, 어떨 땐 공부를 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난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랑의 기적’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1년 365일, 운동화로 연명하던 여자에게 하이힐을 신게 만드는 것이다.
뭍에 나온 인어공주의 고통이 이럴까?
여자들도 알고 있다. 살인무기가 따로 없다는 걸.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하이힐로 갈아 신은 뒤 주구장창 하이힐만 신어온 여자들이나, 딱딱하면서 울퉁불퉁하기까지 한 보도블럭 위를 하이힐을 신고 걸어보지 않은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편안한 신발에 길들여진 여자에게 하이힐은 공포의 대상이자, 피할 수 있는 데까지 피하고 싶은 싸움 상대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해 뒤뚱거리고, 발바닥이 찢어질 듯이 아프며, 좁은 볼에 갇힌 발의 살로는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몰려들 때마다 유리 조각에 발바닥이 피범벅이 되는 한이 있어도 싸움의 패배를 인정한 다음, 맨발로 걷고 싶은 심정이 된다.
‘오빠’때문에 일어난 ‘사랑의 기적’
그런데 최근 우리 편집부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다. ‘루저’ 패션을 표방하며(본인은 조니 뎁과 사귀던 시절의 케이트 모스 스타일이라 주장했지만) 너덜너덜한 스니커에 미군 부대에서 주운 듯한 군복 재킷을 걸치고 다니던 에디터 C가 꼬질꼬질하기가 ‘홈리스’의 그것 못지않던 스니커를 벗어 던지고, 10센티미터가 넘는 하이힐을 신고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의 놀람에 대한 C의 반응은 짧고도 간결했다. “오빠가 이걸 좋아해요.”
아아, 야속한 오빠들. C의 ‘오빠’ 뿐 아니라 대부분의 ‘오빠’들이 하이힐을 좋아한다. 남의 속(발)사정도 모르고…. 그런데 세상엔 ‘오빠’도 없으면서 매일 밤 발만 피로 물들이는 여자들도 있다. 그녀들이 하이힐의 불편을 감내하는 이유 역시 대단히 간단하다. 하이힐이 더 섹시하게 만들어주고, 더 예뻐 보이게 만들어주니까.
전쟁터에서도 섹시한 그녀의 비결
<쩐의 전쟁>에서 서주희 역을 맡은 박진희를 보자. 이 드라마에서 박진희는 캐주얼한 옷차림을 선보인다. 대개 스키니 진에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테일러링 재킷을 걸쳐 입는데 캐주얼하고 중성적인 옷차림인데도 1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하이힐을 신은 덕분에 중성적이기는 커녕 ‘야시시’한 느낌이 뚝뚝 흘러넘친다. 굽이 높은 데다 발등이 드러나는 디자인의 스트랩 슈즈(때로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는 그녀가 입은 옷에 관계없이 ‘여자!여자!여자!’ 룩을 만들어준다. 굽 높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어지는 가슴선과 뒤로 빠지는 엉덩이 라인이 이루는 S라인은 불편한 신발을 감내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쯤 되겠다.
세련된 커리어 우먼의 심심한 선택
몸매로 치자면 <에어 시티>의 최지우라고 질쏘냐. 바지로 가렸지만 충분히 상상이 되는 쭉 뻗은 다리, 길고 우아한 목선, 보드러워 보이는 머릿결까지 그녀가 타고난 미학적 우성 인자들은 답답하고 딱딱하기 십상인 검은색 정장 차림마저 아름답게 만든다.
검은색 바지 정장, 간만에 보니 새롭기도 하고, 블라우스를 잘 고른 날은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신발을 고르는 안목은 ‘꽝’이다. 일하는 여성이 검은색 바지 정장을 즐겨 입는다는 설정은 좋지만, 일하는 여성이라고 꼭 촌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나? 세련된 커리어 우먼은 기본형 펌프스만 신어야 한다는 법은? 지금 그녀가 신고 다니는 펌프스(앞코가 뾰족하고 옆선이 ‘얄상’하며 굽높이가 어중간한)는 변두리 여중생들의 가방 속에 숨어 있는 ‘어른 위장용’ 신발 같아서 제가 섹시한 줄 알지만 전혀 섹시하지 않고, 제가 섹시한 줄 알아서 오히려 답답해 보인다.
그녀가 앞코가 동글동글하고 굽이 전혀 없는 발레리나 슈즈를 신었다면 훨씬 더 사랑스러웠을 테고, 납작한 운동화를 신었다면 한결 더 시크해보였겠지만, 여성스러움과 시크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다면 컬러가 좀더 화려하고 디자인도 좀더 과감한 스틸레토 힐이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C의 ‘오빠’가 C의 컨버스를 벗긴 것처럼 김지성이 한도경의 촌스러운 펌프스를 벗기는 날이 오기를. “벗!겨!라!” “벗!겨!라!” 포르노 삼매경에 빠진 중학생처럼 소리라도 지르고픈 심정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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