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커..

조회 수 3072 2002.06.19 00:28:04
천년의후에

어느 아가씨가 공원벤치에 앉아 고즈넉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신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남아 있는 책을 마저 보고 갈 참이었다.

방금전 가게에서 사온 크레커를 꺼냈다.

그녀는 크래커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다.

크레커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빠르다 싶어 곁눈짓으로 보니,

아니 곁에 앉은 그 노신사도

슬며시 자기 크래커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이 노인네가...’

화가 은근히 났지만 무시하고 크래커를 꺼내 먹었는데,

그 노신사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꺼내 먹는 것이었다.

눈은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신경은 크래커와 밉살스러운

노신사에게 잔뜩 쏠려 있었다.

크래커가 든 박스는 그 둘 사이 벤치에서 다 비어갔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그녀는 참다못해 그 노신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뭐 이런 웃기는 노인이 다 있어?"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까지 열이 올라 쏘아보았다.

그 노인은 그런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씨익 웃으며 소리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별꼴을 다 보겠다고 투덜대며

자리를 일어나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사가지고 온 크래커는

새 것인 채로 무릎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다.

자신이 그 노신사의 크래거를 집어먹었다는 사실을그제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자기 것을 빼앗기고도 부드럽게 웃던 노신사.

하지만 그 노신사는 정신없는 그 아가씨에게 크래커를 뺏긴 게 아니고,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제 것도 아닌데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햇살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조차 모두 잃어버린 그 아가씨는

스스로에게 이 좋은 것들을빼앗긴 것이다.

이 차이가 오백원짜리 크래커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455 추억통장 [10] 바다보물 2003-04-17 3054
454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5월 작은사랑모임다녀와서..;; [7] ★벼리★ 2003-05-02 3054
453 지우표 수면제를... 우리 님들께 [9] 꿈꾸는요셉 2003-05-02 3054
452 <사설2>꿈쟁이의 엉뚱한 생각1- 지우씨는 좋겠네... [4] 꿈꾸는요셉 2003-05-04 3054
451 제목 :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4] 비비안리 2003-05-13 3054
450 윤도현의 러브레터중...빅마마공연.. 페퍼민트 2003-05-24 3054
449 현주님... 번역...-_-;; [1] Jake (찬희) 2003-05-26 3054
448 딱 걸렸스..... [4] 꿈꾸는요셉 2003-05-30 3054
447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14] 스타지우 2003-06-06 3054
446 후기. [19] 2003-06-10 3054
445 쑤....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8] 순수지우 2003-06-12 3054
444 아름다운날들이여~~~[펌..허니허니 출처] [4] 비비안리 2003-06-22 3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