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가씨가
공원벤치에 앉아 고즈넉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노신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남아 있는 책을 마저 보고 갈 참이었다.
방금전 가게에서 사온 크레커를 꺼냈다.
그녀는 크래커를 하나씩 집어먹으며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다.
크레커가 줄어가는 속도가 왠지 빠르다 싶어 곁눈짓으로 보니,
아니 곁에 앉은 그 노신사도
슬며시 자기 크래커를 슬쩍슬쩍 빼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아니 이 노인네가...’
화가 은근히 났지만 무시하고 크래커를 꺼내 먹었는데,
그 노신사의 손이 슬쩍 다가와 또 꺼내 먹는 것이었다.
눈은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의 신경은 크래커와 밉살스러운
노신사에게 잔뜩 쏠려 있었다.
크래커가 든 박스는 그 둘 사이 벤치에서 다 비어갔고..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그녀는 참다못해 그 노신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뭐 이런 웃기는 노인이 다 있어?"하는 강렬한 눈빛으로
얼굴까지 열이 올라 쏘아보았다.
그 노인은 그런 그녀를 보고
부드럽게 씨익 웃으며 소리없이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별꼴을 다 보겠다고 투덜대며
자리를 일어나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사가지고 온 크래커는
새 것인 채로 무릎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다.
자신이 그 노신사의 크래거를 집어먹었다는 사실을그제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자기 것을 빼앗기고도 부드럽게 웃던 노신사.
하지만 그 노신사는 정신없는 그 아가씨에게 크래커를 뺏긴 게 아니고,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제 것도 아닌데 온통 화가 나서
따뜻한 햇살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조차 모두 잃어버린 그 아가씨는
스스로에게 이 좋은 것들을빼앗긴 것이다.
이 차이가 오백원짜리 크래커가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일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상황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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