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옵니다...

조회 수 3079 2002.11.17 09:55:13
토미
  "아무리 단풍이 요란스럽게 들고, 텃밭에 감이 빨갛게 익는다 해도 ,우리가 '아! 가을이구나!'하고 마음 속에 느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앞을 못 보는 장님도 따스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단풍의 계절을 눈으로는 보지 못하여도 가을을 볼 수 있단다. 그러니까 가을은 우리들 마음에서 오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
  "참, 그렇군요. 아빠 얘기를 듣고 보니까, 가을이 어디서 오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요. 가을은 온 세상 누구에게도 따뜻한 마음씨만 있다면 느낄 수 있겠네요?"
  "그렇단다."

  '박정덕'의 <안경 쓴 잉꼬>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동심(童心)을 가진 이들에게는 가을이 오는 곳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나 봅니다.
  한 아이는 텔레비전 속에서 온다고 했고, 또 한 아이는 뒷산의 나뭇잎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이제는 알았을 것입니다.
  가을은 우리 모두의 따뜻한 마음 속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초록이 지쳐서 단풍이 들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름다운 이 가을... 아니 이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우리 모두의 따뜻한 체온을 나눠 가졌으면 합니다.

  어제 결혼식 때문에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탁상卓上위에 있는 달력을 들춰보았습니다.
  그 안에 소나무 삽화揷畵가 있더군요.

     리기다소나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은 한 그루 리기다소나무 같았지요
     푸른 리기다소나무 가지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던 바다의 눈부신 물결 같았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솔방울이 되길 원했지요
     보다 바다 쪽으로 뻗어나간 솔가지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솔잎이 되길 원했지요

     당신을 처음 만나고 나서 비로소
     혼자서는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알았지요
     사랑한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 줄 알았지요

  지금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보충수업을 빼먹고 <남이섬>으로 가던 '준상'과 '유진'의 버스 안에서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녀의 머리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댄 이런 나를 타이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어느 순간부터 '눈'하면 '유진'과 '그 사람'생각이 납니다.
  백양사白羊寺에서 연못을 바라보며 그 사람과 마셨던 차茶도 생각이 나고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이 묻혀지고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대 이름만은 내 가슴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언젠가 내가 바람편에라도
     그대를 만나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그대와의 사랑, 그 추억만은 고스란히 남겨두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까닭입니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내 삶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 안겨준 사람.
     슬픔에서 벗어나야 슬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서 벗어나 나 이제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네.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인연이여.

  조카가 옆에서 난리입니다.
  삼촌의 분위기가 이상한 지 자꾸 밖에 나가 놀자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만 일어나 보아야 하겠습니다.
  더 써봤자 기분만 더 가라앉을 거 같아서요.
  그럼... 편안한 하루 되세요.


댓글 '2'

안개꽃2

2002.11.17 10:20:58

여기는 눈이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미님덕에 마음으로 맘껏 느끼고 갑니다.

코스

2002.11.17 12:15:22

토미님..저희도 눈을 보면 유진과 지우씨가 생각나지요. 우리들에겐 같은 추억을 지우씨가 준 셈이네요. 토미님의 주말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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