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곽재용 감독과의 인터뷰

조회 수 3046 2002.04.18 16:07:51
피아노치는 대통령이란 영화의 시나리오를 이분이 쓰셨다고 하더군요...
어떤 분인가 함께 보고 싶어서 퍼왔습니다......^^

**********************************************************
“지난 8년, 관객의 웃음이 가장 그리웠다”

<엽기적인 그녀>로 돌아온 곽재용 감독 (1)

● <엽기적인 그녀>로 다시 관객과 만나기까지, 곽재용 감독에게는 적잖은 세월이 걸렸다. 의붓남매의 사랑을 수채화처럼 서정적인 영상으로 그려낸 멜로드라마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떠들썩한 감독 신고식을 올렸던 게 벌써 89년. 영상미가 돋보이는 이 청춘영화의 성공은, 단편영화와 <내일은 뭐할 거니> <깜동> 등의 연출부를 막 거쳐온 그에게 상업영화의 주목할 만한 신인이라는 느낌표를 달아줬다. 하지만 2년 뒤, 컴퓨터 프로그램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청춘남녀의 여행을 담은 스릴러풍의 멜로드라마 <가을여행>으로 그는 이른 실패를 맛봤다. 전열을 가다듬고 93년에 전편의 캐릭터와 줄거리를 잇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2>를 내놨지만, 전편의 성공까지 이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8년. 영화를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액션영화인 <영웅의 이름으로>처럼 스쳐간 작품도 있긴 하지만, 끝을 보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요즘 20대의 경쾌한 연애담을 쏟아놓은 <엽기적인 그녀>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여전히 청춘들의 사랑이야기지만, 이미지보다 인물간의 에피소드와 드라마에 치중하면서 웃음이 많아진 신작. 관객 시사를 앞두고 씨네플러스 극장 12층, ‘견우가 그녀의 새 남자에게 그녀를 위해 지켜야 할 수칙을 들려주는’ 그 카페에서 곽재용 감독을 만났다. 사진기자의 주문에 자세를 잡으며 “어떻게 해도 폼이 안 난다”고 웃는 그는 “이것도 오랜만”이라며 못내 쑥스러운 기색이었다. 시사회 반응도, 개봉 주 예매 현황도 순항 조짐인데 아직 맘이 놓이지 않는다고, 일단 입을 열자 그는 할말이 참 많았다. 영화 없이 지나온 8년부터 카메라와 필름에 매료된 유년, 혼자 단편영화를 찍으며 영화의 꿈을 배양하던 시절을 거쳐 “관객이 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는 게 가장 그리웠다”는 고백까지.

+ 8년 만에 새 영화로 돌아온 감회가 어떤가. 지금은 물론 현장에서도 남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
= 극장에 개봉되는 영화는 8년 만이지만, 사실 4년 전에 <영웅의 이름으로>란 영화를 찍다가 중단한 적이 있다. 50% 정도 촬영하고 여건이 안 좋아져 엎어졌지만. 특별히 오랜만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현장에서는 시간과 제작비, 스탭들의 요구 등에 맞춰가며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설렌다든가, 어떤 감흥을 느낄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45회 촬영으로 끝내면서 참 빨리 찍었다. 하루에 70컷 이상씩 찍은 적도 있다. 예전 같으면 촬영 전에 배우들, 스탭들과 친해진 뒤에 시작하는데, 이번엔 캐스팅한 지 1달 만에 촬영에 들어가서 술 한잔 미리 같이 못 마셨다. 그래도 소설도, 시나리오도, 촬영도 정말 재밌었다.

+ 영화를 찍지 않는 동안 어떻게 지냈나.
= 쉴새없이 시나리오 쓰고, 계약해달라고 떼쓰고. 빚 얻어가며 살았다.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가끔 적으나마 시나리오료가 들어올 때도 있고. 한번 8년 동안 놀아봐라. 만약 지금부터 8년간 영화 못한다고 하면 그만뒀겠지. 이 작품 가지고 영화되겠지, 저 작품 가지고 영화되겠지, 그렇게 1년씩 가면서 8년이 됐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희망, 판도라의 상자 맨 밑에 남아 있던 그 희망이 있었으니까. 8년 동안 그렇게 힘겹게 살아도 내색없이 견뎌준 아내가 참 고맙다. 성질도 별로 안 좋은 남편인데. 답답한 맘에 시나리오 쓰러 떠날라치면 아내가 돈을 마련해줬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가 컴퓨터 안에 쌓여 있다. 난 창작욕이 굉장히 많다. 시나리오는 1주일, 소설도 열흘이면 1편 정도 쓴다. <엽기적인 그녀>의 초고도 5일 만에 쓴 거다. 화장실 가는 것 외엔 하루 종일 썼으니까. 지난해에는 데뷔 준비하는 후배들 시나리오도 2편 써줬다.

+ 활동이 뜸하던 터라 <엽기적인 그녀>를 만나는 데도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다.
= 원래 99년부터 SF멜로 <유리정원>이란 작품을 준비했는데, 캐스팅이 잘 안 되길래 신씨네에서 기획을 맡아주면 쉬워질까 하고 찾아갔다. <엽기적인 그녀>는 다른 젊은 감독이 하기로 돼 있었는데, 써온 시놉시스가 신씨네와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소설을 권하길래 재밌게 읽었고, 시놉시스를 써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쯤 <유리정원>을 이미 접은 상태였고, 내 시놉시스를 맘에 들어해서 시나리오 각색과 감독을 맡게 됐다. 캐스팅 과정에서는 내가 감독이라고 내세우면 어려워질까봐 감독을 숨겼었다. 시나리오를 읽고 재밌다고, 감독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때 <비오는…>의 곽재용이다, 그랬다. 차태현도 그랬다지만, 대부분은 ‘어? 노땅 감독 아닌가?’ 했다. (웃음) 하지만 시나리오를 좋아들 했으니까.

+ 그러고보니 차태현, 전지현 두 배우가 감독님이 나이보다 참 감각이 젊다고 하던데.
= 젊다는 말이 싫다. 나이보다 젊다면, 이미 늙었다는 것 아닌가. 어리다고 하면 또 모르지만. (웃음) 생각하는 게 어리다. 어렸으면 좋겠다. <양철북>처럼. 고교 이후 키도 안 자라더니, 정신연령도 안 자랐나보다. 세월은 어쩔 수가 없어서 나이는 나이대로 먹지만. 나이가 들고, 아버지가 되면 자식들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는데, 그런 게 별로 없는 편이다. 나한테는 아직 내 꿈이 있으니까. 무게 안 잡고, 속을 열어놓는 편이라 그렇게 말했나보다. 젊은 감각에 뒤처지지 않는 영화 만들 수 있는 감독이란 인식을 남길 수 있으면 만족한다. 신인감독 같은 느낌으로 여러 영화를 찍고 싶으니까. 관객도 많이 만나고.

+ <엽기적인 그녀>는 코미디로 슬쩍 비틀긴 했지만, 데뷔부터 지금까지 멜로드라마란 바탕을 고수해왔다. 특별히 멜로드라마를 선호하나.  
= 꼭 좋아한다기보다는 내 감성이 멜로드라마쪽인 것 같다. 멜로드라마 느낌 때문에 <엽기적인 그녀>가 <비오는…>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과정은 다르지만, 라스트를 끝맺는 게 비슷하다. 시나리오 쓰다보면 멜로가 많은데, 특히 슬픈 감정을 아주 좋아한다. 좀 감상적인 데가 있다. 연애에 한창 빠져보고 싶은 사춘기 때, 연애도 못하고 발산을 못해서 그런가? 작고, 왜소하고, 여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인물이다보니 상상으로만 사랑을 많이 했다. (웃음) 지금도 그때 그 감정은 잘 찾아진다. 우는 연기하라고 하면 당장 할 수 있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보러 가면 슬픈 감정에 잘 빠져들곤 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김정훈이 우는 장면, 아빠랑 같이 밥을 먹고 싶다며 밥상을 엎는 걸 보고 집에 와서 따라했다가 엄청 맞고. (웃음) 사실 액션영화도 굉장히 좋아한다. <영웅의 이름으로>도 액션영화였고, 앞으로도 만들게 될 거다. 오우삼의 액션영화에서처럼, 형제간의 갈등이나 영웅이 가진 슬픈 느낌, 비장미가 좋다.

+ 원작소설을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영화화하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췄나.
= 소설은 가벼운 연애담이란 느낌이었다. 영화에도 좀 그런 부분이 있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게 작위적이란 생각도 들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더해가면서, 라스트를 행복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또 <엽기적인 그녀>인데 사실 엽기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소나기 패러디 버전, 토사물 삼키는 장면, 하이힐장면 같은 걸 추가했다. 좀더 엽기적으로 재밌게, 후반부는 행복하게. 영화를 본 관객이 정말 즐겁고 행복했으면 했다. 대단한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다면 더 좋고. 치열한 예술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소설 자체가 재밌으니까 영화도 재밌게 만들고 싶었다. 스무살, 젊은 시절의 감성을 복기해보는 영화.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8년간 가장 그리웠던 게 관객이 내 영화를 보고 웃고, 즐거워하는 거였다. 언젠가는 <동년왕사>처럼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도 만들고 싶지만, 지금은 좀더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

+ 남녀의 캐릭터가 전도된 설정은 새로워 보이지만, 사랑이야기를 끌어가는 감성은 구식이란 생각도 든다. 감상주의적인 신파로 흐르기도 하고.
= 구식이라기보다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편지를 쓰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그런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 2년씩 기다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지금 사귀고 있는 연인들도, 지나온 사람들도 내 사랑이 어땠나 돌아볼 수 있으면 했다. 신파와도 좀 다르다. 신파는 슬픈 감정에, 슬픈 대사에, 슬픈 음악과 함께 마냥 슬프게 가면서 구구절절 슬픔을 강요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차역에서 둘이 헤어지는 장면도 슬픈데 코미디로 풀었다. 하나는 올라타고, 하나는 뛰어내리고. 탈영병이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고 총을 겨누는 장면이 좀 신파스러운데, 결국 코미디로 바뀐다. 슬프면서도 웃긴 감정, 그 두 가지 감정을 섞어놓는 것. 아주 진지한 데서 나오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비오는…>에서도 이경영이 ‘까르르’ 소리를 낼 때 웃기면서도 슬픈 상황인 것처럼.

+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비디오 가게를 하다가 감독에 데뷔한 이력이 특이하다.
= 원래 연영과를 가고 싶었는데, 말도 못 꺼내볼 만큼 아버지가 워낙 무서웠다. 그나마 물리를 좋아해서 물리학과를 갔지만 영화를 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필름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바늘구멍 사진기와 필름을 이용해서 카메라를 만들어 사진을 찍고, 옛날 사진의 필름 표면을 죄다 긁어서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환등기에 비춰보곤 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진의 필름이 거의 없다. 그것 때문에 감독이 되기도 했겠지만, 가끔 안타깝다. 언젠가 꼭 그 유년 시절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환등기에 모터를 걸어 영사기처럼 만들고, 안양에 있다는 신필름에 순전히 필름 주우러 가겠다고 걸어가다가 고개 하나 넘고 지쳐 돌아온 기억도 있다. 공부 열심히 하겠다며 어머니를 설득해서 아버지 몰래 영사기 한대, 카메라 한대를 구한 게 재수 시절이다. 그때 찍은 게 프랑스문화원에서 단편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대학 3학년 때 만든 단편영화 <선생님 그리기>로 청소년영화제에서 상금 200만원을 받고부터는 영화만 했다. 영화세상의 안동규, 영화평론가 이효인 등 동기들과 ‘그림자놀이’란 영화패도 만들었고. 비디오 가게는 졸업하고 <비오는…> 하기 전까지 잠깐 했는데, 마음껏 영화보는 재미가 있었다. 왕가위의 <열혈남아> B자 테이프,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 등등 보물을 찾아내는 느낌이었으니까.

+ 감독의 영화라기보다 <결혼 이야기> <편지> 등으로 멜로드라마의 유행을 이끈 신씨네의 기획성이 강한 영화라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소설 잡을 때부터 기획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인 것은 사실이다. 기획영화고 트렌디영화니까 그런 느낌 들겠지. 하지만 <데몰리션 터미네이터> 같은 패러디부터 사소한 아이디어까지, 시나리오나 촬영에서 신씨네가 터치한 것은 없다. ‘낙태하러 가는데 니가 아빠라 그랬어’란 대사에서 ‘낙태’란 단어가 거부감이 든대서 ‘수술’로 바꾸는 식의 수정은 있었지만. 신씨네가 감독의 영화를 잘 싸안는 것 같다. ‘절라유쾌뭉클코미디’처럼 카피를 잘 뽑아서 포장을 잘한다.

+ 쌓아둔 시나리오는 많다고 했는데,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계획하고 있나.
= 유년 시절을 다룬 <성>(城), 죄의식에 관한 <귀의>, 이중섭에 대한 영화 등등 이야기는 많은데, 어떤 걸 해야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장르는 좀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다. <엽기적인 그녀>에 들어간 장르 중 하나겠지. 멜로, 코미디, 액션, 무협, <소나기> 같은 고전적인 드라마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다 해봤으니까. 좀더 예산이 크고, 코미디가 아닌 상업영화를 하고 싶다.

출처: 씨네21

댓글 '2'

앨리럽지우

2002.04.18 17:26:03

현주님.. 이런 자료까지 찾아주시고.. 감사합니당^^ 그런데 현주님.. 지우님 영화소식..확정된게 있나요?(궁금해서리..)

백합이

2002.04.18 18:30:26

예전에 저희학교 세미나에 오신적이 있어서 뵌적이 있었는데~정말 꼭 감자캐다오신분처럼 푸근하구 좋으시더라구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523 멀리서 영화를 보기 위해 와 주시는 정다운 분들.. [7] 코스 2004-08-09 3036
522 투표.. 어케 지우언니가 1%로 밖에.... [1] 온니지우럽 2004-08-14 3036
521 엉 ~낭자들 보기 힘드네... [1] 마르시안 2004-09-23 3036
520 はじめまして [2] yumi 2004-09-23 3036
519 누.비.다를 보고 심오해진 코스~ *^^* [5] 코스 2004-10-11 3036
518 디자이너가 된다면, 나만의 패션쇼 모델로 캐스팅 하고 싶은 여자 연예인은? [2] 지우공쥬☆ 2004-10-11 3036
517 네잎크로버~ [4] 이경희 2004-10-18 3036
516 ★ 드라마나 영화 상대역으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을 것 같은 여자배우는 ? ★ [2] 미리내 2004-11-05 3036
515 [감기 민간요법] 여러분~감기 조심하세요~~!! [4] 지우사랑 2004-11-19 3036
514 뒤늦게 게시판을 읽고서... [3] nalys 2004-11-20 3036
513 나현 하이! [4] happyjlwoo 2004-11-20 3036
512 스마스마(일본 방송)에 나온 지우씨를 보고... [4] 보름달 2004-11-24 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