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나무...

조회 수 3043 2002.06.21 22:49:58
토미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것을 안다.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꼬여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워 줄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이 숲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볼품이 없는 나무라는걸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 한 가운데를 두 팔로 헤치며
     우렁차게 가지를 뻗는 나무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본래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나는 그저 가죽나무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종환의 <가죽나무>라는 시詩입니다.
  요 근래 들어 마음에 들어오는 글입니다.
  아마 얼마 전에 읽은 이 글 때문인 거 같습니다.

     도시생활의 지겨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시골에 몸을 돌렸다.
     토요일이라 시골은 붐비고 있었다.
     5일마다 서는 장에 오후 2시라는 시간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충분하였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동산이 보이고 가을 정취에 맞는 잔디가 깔린 곳이었다.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려 했는데,
     흙담장의 전형적인 시골의 초가집에서 임산부인 아낙네가 나와서 바라본다.
     '임신중인가 보구나!' 생각하는데 조금 지쳐 보이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땅히 쉬실 자리가 없으면 저희 집 마루에서 쉬어 가시지요."
     감사의 마음이 흘러나온다. 역시 시골 인심이야.
     부엌에서 아낙은 나무를 태우면서 자꾸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는다.
     무엇 하느냐고 물어 보니, 아이를 가져 입덧을 하는데 요즘은 자꾸 불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다.
     마땅히 고기를 살 형편이 안되어 가죽나무를 태우면서 고기냄새를 맡는다고 하면서….
     나는 그 길로 당장 장으로 갔다.
     집에 갈 차비를 제외하고선 소고기 2근을 사서 조용히 그 흙담집 마루에 슬그머니 놓고
     도망치듯이 빠져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에게 가죽나무가 단지 패션장식에 지나지 않는 샌들sandal의 소재가 되는데 비해, 또 어떤 이에게 절박함을 대신하는 대용물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손바닥과 손등은 하나다.

     이상과 욕망에 이끌려 불안한 것도 손바닥 뒤집듯이
     한 생각 돌이키면 대자유의 경지로 바뀐다고 노장은 설파한다.

     잘살고 못사는 것이 내 마음에 달렸다.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으면 잘살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내 마음이 알거든.
     죄도 알고 짓지 모르고 짓는다는 건 거짓말이야.

     도둑놈이 왜 밤에 몰래 다니겠어.
     좋은 일이 아닌 줄 알기 때문이지.
     그러니 바르게 익히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돼."

  <산중에서 길을 물었더니 : 우리 시대 큰스님 33인과의 만남>中에 나오는 고송스님의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잘사는 길'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끄러운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됩니다. 항상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기적인... 나만 편하면 된다는 마음에 자꾸 반복합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마음에 부끄럽지 않은 생각을 항상 한다면 괜찮아지려나...

  이해인 수녀의 기도시집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中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가난한 새의 기도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誓願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가끔은 하늘을 보며... 바다를 보며.. 자연을 보며...
  내 삶 속에 허락하신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서 생기는 넉넉함을 누려보며...
  가진 자의 여유를 만끽해보았으면 합니다.

  식구들이 모두 빛고을로 내려가 버리니 집안이 고요하다 못해 적적寂寂합니다.
  지금쯤 큰형님 집에서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따뜻하게 우유 한 잔 데워서 먹고 자야겠습니다.
  그럼... 모두 편히 쉬세요.


댓글 '5'

호재원유

2002.06.21 23:28:40

마음속에 가득 저금을 한것 마냥 풍요로우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 ~~~~~~~~

세실

2002.06.22 09:49:58

토미님 고향이 빛고을이군요, 민주의 성지가 4강의 도시가 되길^^ 전 가죽 장아찌를 좋아한답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

이정옥

2002.06.22 10:12:43

토미님 글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항상 님에글 너무 잘읽고 있어요 ..님에글을 읽다보니 고향에 신작로길이 생각나네요 버스한대만 지나가도 희뿌연 흙먼지가 자욱했죠 지금은 다 포장이 되었지만 ..오늘은 4강에 도전하는날 토미님 글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응원을 할까해요 ..혹 선수들이 맘에안든다고 흥분하지말고 ~~근데 가죽장아찌가 뭐래요~~

운영2 현주

2002.06.22 10:28:41

늘 어떤 분일까 궁금한 분이세요.호호~ 제가 토미님께서 가입하실때 작성한 소갯말을 보았는데요 (도꼬 맑음에 나오는 시마즈를 닮았음.)이라고 하셨던데.도꼬맑음의 시마즈...가 누구여욤~ 아시는분 안계시나요? 호호~ 언젠가 꼭 뵐 기회를 주실런지. 우리 모임하면 꼭 나오세요~ 저뿐만 아니라.모두들 궁금해할껄요~ 좋은 하루 되시길..^^

세실

2002.06.22 14:34:27

정옥여사~~가죽장아찌는 가죽나무 여린 잎을 고추장에 재워 만든 거랍니다. 제가 원래 매우면서 쌈박한 맛을 좋아한답니다. 지리산 아랫동네에선 알아주는 밑반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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