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자성의 <채근담>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큰 명예와 높은 직위는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것을 독점하면 원한이 오고, 재해가 일어나게 된다.
좋은 것을 가지려다가 온몸을 잃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 얼마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불평으로 오는 해를 피해야 한다.
치욕과 불명예는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을 모조리 남에게만 밀어 넘기면
원망과 재해가 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 얼마쯤을 자기 자신이 인수하여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길러야 한다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양보와 자기 희생의 덕목을 갖춰야 합니다. 솔직히 말은 쉽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원한'과 '재해'를 피하려면 늘 가슴에 새겨 두어야만 하는 어록입니다.
여기에 오시는 님들이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기르는 분들이 되셨으면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戀歌에서 '상혁'을 닮았다고 표현한 해바라기가 있죠.
문득 지금 그 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해인님의 이 시도 생각이 났습니다.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에서 올올이 뽑는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던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께서는 사람이 불행에 처했을 때 왜 용기가 필요한 지 아십니까?...
폴 투르니에의 <창조적 고통>에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위대한 용기는 가장 위급한 시련기에 생기는 것이다.
필요한 용기는 오직 시련, 그 자체와 함께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저런 상실-
노년, 고통스러운 질병, 불구, 혹은 배우자의 죽음 등-을
감당할 용기가 있을까 하고 항상 걱정한다.
불행에 처했을 때 왜 용기가 필요한가?
그것은 용기 있게 직면하는 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용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 수도 없습니다. 용기는 자신에게 닥친 불안과 역경과 상실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것입니다.
절망보다 용기가 덜 고통스럽다는 말... 이 말이야말로 용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또 일주일의 첫 하루의 아침이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도 용기 있게 절망에 맞서고,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기르는 님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한 주를 보내야겠죠.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중의 한 구절을 적으며 저도 하루의 시작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럼... 사랑 많이 주는 하루 되세요.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마음 씀이다.
낯선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이다.
낯선 이웃에게도 우리가 너그럽게 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부드럽고 정다운 말씨를 쓰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큰 명예와 높은 직위는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것을 독점하면 원한이 오고, 재해가 일어나게 된다.
좋은 것을 가지려다가 온몸을 잃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 얼마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불평으로 오는 해를 피해야 한다.
치욕과 불명예는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그것을 모조리 남에게만 밀어 넘기면
원망과 재해가 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 얼마쯤을 자기 자신이 인수하여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길러야 한다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양보와 자기 희생의 덕목을 갖춰야 합니다. 솔직히 말은 쉽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뜻밖의 '원한'과 '재해'를 피하려면 늘 가슴에 새겨 두어야만 하는 어록입니다.
여기에 오시는 님들이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기르는 분들이 되셨으면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제가 戀歌에서 '상혁'을 닮았다고 표현한 해바라기가 있죠.
문득 지금 그 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해인님의 이 시도 생각이 났습니다.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에서 올올이 뽑는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던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께서는 사람이 불행에 처했을 때 왜 용기가 필요한 지 아십니까?...
폴 투르니에의 <창조적 고통>에 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위대한 용기는 가장 위급한 시련기에 생기는 것이다.
필요한 용기는 오직 시련, 그 자체와 함께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저런 상실-
노년, 고통스러운 질병, 불구, 혹은 배우자의 죽음 등-을
감당할 용기가 있을까 하고 항상 걱정한다.
불행에 처했을 때 왜 용기가 필요한가?
그것은 용기 있게 직면하는 것이
절망에 빠져 있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용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 수도 없습니다. 용기는 자신에게 닥친 불안과 역경과 상실을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생겨나는 것입니다.
절망보다 용기가 덜 고통스럽다는 말... 이 말이야말로 용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또 일주일의 첫 하루의 아침이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도 용기 있게 절망에 맞서고, 빛을 안으로 감추고 마음의 덕을 기르는 님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한 주를 보내야겠죠.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중의 한 구절을 적으며 저도 하루의 시작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럼... 사랑 많이 주는 하루 되세요.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마음 씀이다.
낯선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이다.
낯선 이웃에게도 우리가 너그럽게 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부드럽고 정다운 말씨를 쓰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