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조회 수 3058 2002.06.16 14:23:26
토미
     그림자이야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매일 매일 따라다니며 그의 곁에 있는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항상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자에게 잘 해 주었고 그림자는 말없이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어느 날, 질투 많은 바람이 그의 곁을 지나며 말했습니다.
     "왜 그림자에게 잘해 주세요?"
     그러자 그는
     "그림자는 항상 내 곁에 있어주기 때문이지."라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그림자는 당신이 기쁘고 밝은 날만 잘 보이지요.
     어둡고 추울 때는 당신 곁에 있지 않았다고요."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이 그가 힘들고 슬프고 어두울 때
     항상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림자에게 가서
     "더 이상 내게 있지 말고 가 버려"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 한 마디에 그림자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그는 바람과 함께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것도 잠시- 잠시 스친 바람은 그저 그렇게 조용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름처럼 스쳐지나간 바람이었습니다.
     너무나 초라해진 그는 다시 그림자를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자야, 어디 있니? 다시 와 줄 수 없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디선가 그림자는 다시 나와서 조용히 그의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항상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다만 어두울 때는 당신이 저를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왜냐고요? 당신이 힘들고 슬프고 어두울 때는
     나는 당신에게 더 가까이---가까이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당신이 나를 볼 수 없었을 뿐이랍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태양을 양쪽에서 쪼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서로의 따스한 볕을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정성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태양이 되어주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영원히 마주보며 비추어줄 수 있게 말입니다.

  교회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있는 동물병원에서 양쪽 발을 붕대로 감고있는 강아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읽은 오타니 준코大谷淳子가 글을 쓰고, 오타니 에이지大谷英之가 사진을 찍은 <다이고로야, 고마워 -ありがとう大五郞>라는 에세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글을 쓴 大谷淳子와 사진을 찍은 大谷英之는 서로 부부입니다.

  먼저 책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160페이지의 얇은 책장에 반은 글이, 반은 아름다운 흑백사진들이 들어있는 이 책은 오타니 가족이 팔다리가 없는 기형 아기 원숭이를 키운 2년 4개월 간의 행복을 적은 에세이집입니다.

  사진작가 오타니 에이지大谷英之가 세 딸과 아내가 있는 집으로 어느 날, 팔다리가 없는 기형 아기 원숭이를 데리고 오면서부터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기 아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키우기 힘든 것이 당연지사인데, 귀여워서 기르는 애완동물이 장애를 갖고 있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은 책을 읽고 나면 곧 알게 됩니다. 다이고로는 오타니 가족에게 있어서 애완동물이 아닌 오타니 부부에게는 막내아들이었고, 세 자매에게는 개구쟁이 막내동생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17센티미터 키에 300그램 몸무게의 빈사상태로 처음 오타니 가족에게로 온 다이고로.
  녀석이 튼튼해지고, 뭉툭한 팔로 책장을 넘기며 장난을 치고, 오뚝이처럼 혼자 일어서기까지가 아빠인 오타니 에이지大谷英之의 렌즈를 통해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겨있는 이 에세이는 때로는 지나친 응석으로 가족을 피곤하게 하고, 때로는 엄마의 관심을 몽땅 차지하는 바람에 막내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나날을 돌이켜보면서, 오타니 가족은 결국 "다이고로야, 고마워"라고 말합니다. 나날이 강해졌던 다이고로에게서 용기를 배웠다고 가족은 말합니다. 딸들은 '다이고로가 아니었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겨 나가는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새롭게 삶을 시작한 유후인의 여관에는 팔다리가 뭉툭한 다이고로의 석상이 지금도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책에 나오는 본문의 일부를 적자면...

  다이고로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똑바로 누워서 자다가 천장만 바라보는 생활에 질려, 자유롭지 못한 팔과 몸 전체를 옴지락거리면서 몸을 뒤척였다. 이러한 노력은 매일매일 포기하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이고로는 등을 위로 향하며 자랑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 page.40

  식구들 모두 온몸이 근질거리고 빨간 습진이 났는데, 설마 다이고로에게 원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의사에게 동물을 키우느냐는 말을 듣고서야 알아챘습니다.
  이런 이유로 약용 비누를 쓰게 되었는데, 다이고로를 씻기는 일은 꽤 힘들었습니다.
  사실 이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마호였습니다. 다이고로를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고, 실제 내가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다이고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호도 한창 응석을 부리고 싶어했습니다. 마호와 다이고로는 서로 나를 독점하려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눈물 자국을 보이며 자는 마호를 보니 가슴이 메었습니다.
  내가 히로시마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어머니께서 "다이고로와 헤어지는 날이 오면, 너 도대체 어쩔 셈이니" 하며 걱정하셨습니다. 실제로 키워보니 다이고로도 내 자식과 똑같았습니다. 다이고로가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마호와 가즈요, 세이코가 다이고로와 지내면서 분명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page.42

  어느 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데 다이고로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평소와 거동이 달랐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뒤돌아보니, 다이고로가 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개처럼 짧은 팔을 질질 끌면서 힘겹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다이고로는 스스로 기는 법을 익히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오려 했던 것입니다. '다이고로 ......'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장애를 갖고 태어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는 몸짓.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 다이고로를 향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 page.53∼54

  다이고로도 우리 가족과 살면서, 자신이 원숭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마호가 거울을 보며 엄마놀이를 하는 것을 따라 하며, 자신도 실쭉 거울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 다이고로는 꺄악 하며 새된 소리를 질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와 함께 자란 다이고로는 자신도 인간인 줄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따라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 page.61∼62

  다이고로는 단순히 우리를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늘 무엇에 도전했다. 우리가 다이고로와 함께 살지 못했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다이고로는 자신의 장애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다이고로를 생각한다. 그리고 강해져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새삼 다짐한다.

  --- page.72

  낮잠 잘 시간이 돼서 부르면 대개는 신이 나서 달려왔을 텐데, 누워서 기다리는 내 곁으로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베개 앞에 선 채 내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왜 그래 다이고로, 낮잠 잘 시간이에요.'라고 말해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어느새 나는 잠이 들어버렸고, 한 시간 가량 자다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다이고로는 아직도 내 얼굴을 보고 있었습니다.

  --- page.118

  하지만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슬픈 드라마가 많이 있었다. 어떤 원숭이는 생후 7일 만에 죽었다. 그런데 죽은 원숭이의 어미는 그 다음날도 탱탱하게 불은 젖꼭지를 죽은 어린 원숭이의 입에 물리고 있었다. 더운 계절이어서, 며칠만에 어린 원숭이의 몸은 부패하고 미라가 되어갔다. 그러나 어미 원숭이는 자신의 자식을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이 보듬고, 매일 아침먹이 주는 곳으로 데려왔다. 그러는 사이 2주일이 지나 팔과 다리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탁구공 만한 두개골만 남았는데도, 어미원숭이는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촬영하는 도중에 몇 번이나 파인더가 눈물로 흐려졌는지 모른다.

  --- page.144∼145

  이 책을 읽고서 생각났던 사람... 전에 프로야구 개막식에서 시구하던 '애덤 킹'입니다.
  그때는 '애덤'을 보면서, 그 또래의 제 조카들이 사지四肢가 멀쩡한 것에 감사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 있는 편견에 반성을 하게 했습니다.
  새삼 '애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수산의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에게 쓰고 있는 열쇠가 되어 항상 빛나고,
     나 또한 여러분에게 항상 빛나는 쓰고 있는 열쇠가 되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그래서 이 만남이 빛나는 시간으로 이어지도록 합시다.

  '쓰고 있는 열쇠는 항상 빛난다'고 합니다.
  저도 <스타지우>에서 애정과 사랑으로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순간 순간을 느꼈으면 합니다.

  서남아시아의 대국大國 인도에는 희한한 경주가 있습니다. 50미터쯤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이 경기는 빨리 달리기가 아닌 늦게 달리기 경주입니다. 경기규칙은 한 순간도 땅에 발을 내려놓거나 멈춰서는 안 되며 최대한 천천히 달려 골인 지점에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 일등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좀 천천히 살았으면 합니다.
  모두들 너무 바삐 사는 거 같습니다.
  가끔은 하늘도 보고... 산 중턱에 피어있는 꽃도 바라보고... 놀이터에서 넘어져 울고있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밖의 날씨가 참 좋습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댓글 '5'

김문형

2002.06.16 16:20:13

토미님. 저도 이책을 읽고 한참 울었던 생각이 나네요. 살면서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노력은 하고 있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참 허리는 요즘 편하신가요?

찔레꽃

2002.06.16 16:39:28

눈팅하다가 토미님의 팬이 되어 버렸네요.늘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먼저 주변사람들에게 미소로 다가가도록 노력할렵니다.

sunny지우

2002.06.16 18:11:17

감사해요,토미님. 저는 요즈음 몸의 장애를 실감하고 살아요.오른손목 인대부상 때문에 거의 왼손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거의 히스테릭해 있어요. 정신적인 장애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넉넉하지 못한 마음 에서 인가요? 그래서 신체적장애는 어쩌면 정신적인 장애를 함께 갖게하지는 않나하고 많은 깨달음을 한답니다.

세실

2002.06.16 19:34:22

토미님 항상 그림자처럼 우리들 곁을 떠나지않고 이렇게 좋은 글 읽어주실거죠? 토미님도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단순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조카 이야기와 함께 토미님 아기 이야기도 같이 들려주실 날을 기다려요.^^

새벽사랑

2002.06.17 21:40:19

제가 평소 좋아하는 멘트네여...단순하게......조금은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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