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적어보았습니다...

조회 수 3040 2002.02.13 09:22:02
토미
  겨울연가 9부와 10부를 보고 있으면 자동으로 심장박동이 움직이니 이러다가 제명에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들은 구성이 어떻다느니, 아니면 연기를 잘 한다느니, 못 한다느니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겨울연가'속에 유진과 상혁과 민형만 보이니, 지우님이 어떻다느니, 용준님이 어떻다느니, 용하님이 어떻다느니 하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단, 제가 알 수 있는 건 이 드라마가 끝나면 여름에 휴가를 갔다오고 몇 달동안 그 후유증後遺症으로 고생했던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겨울연가 9부와 10부를 보면서 유진에 대한 상혁의 마음은 '해바라기'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해바라기는 그게 운명이었어요
      그저 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해바라기의 사랑은 운명이었어요.
      그건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었기에..
      그들은 거기에 복종했죠.

      해바라기의 소원은.
      해를 한번만 만져보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해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높이 있었기에..
      해바라기는 그저 안타까웠구요.

      계속해서 해바라기는 자기의 키를 키워나갔어요
      바람이 불면 꺾일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해바라기에는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 보다는
      해에게 좀 더 가까이 있고자 하는 바램이 더 간절했으니까요.

      그렇게 자꾸만 손 내미는 해바라기를
      해는 그저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죠.

      해바라기는 그런 해가 원망스러웠지만..
      너무나 사랑하기에 계속해서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구요.

      그렇게 살아오던 해바라기도
      기다림에 지쳐서 너무 긴 기다림에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그러고는 그 길었던 기다림을 마감하면서
      해바라기는 해바라기의 생애를 마감하구요.

      그렇지만 해바라기는
      죽으면서까지 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해를 사랑해서 그 기다림으로 인해
      까맣게 타버린 동그란 마음들을 남기고 죽었죠.

      그 마음들의 조각들은
      그들의 운명에 따라서 또 다시 해를 향한 기다림의
      사랑을 할 거구요.

      그게 해바라기의 운명입니다.

      끊임없는 기다림

  10부 마지막쯤에 유진이를 병실에서 내보내고, 링겔주사를 뽑는 장면에서, 상혁이는 그렇게 해서라도 준상이처럼 유진의 마음에 영원히 남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록 좋은 기억보다는 아픈 기억이지만...
  그런데,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자기가 10년이 넘게 아니 여덟 살 때 동네 미장원에서 같은 바가지 머리로 자를 때부터 사랑한 사람인데... 그 긴 세월동안 사랑하고 사랑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그런 아픈 기억을 주려고 했을까...
  그리고 "LE MARI DELA COIFFEUSE(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이라는 프랑스 영화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떠납니다.
      당신의 사랑이 식기 전에
      사랑을 남기고 가려구요.
      아니, 그보다도
      불행이 오기 전에 갑니다.
      우리의 순결과 당신의 체취를
      품에 안고 갑니다.
      당신의 모습이며
      입맞춤까지…
      당신이 선물하신
      내 생애 절정에서 떠납니다.
      달콤한 입맞춤속에
      죽으려 합니다.
      언제나 사랑했어요.
      날 잊지 못하도록
      지금 떠납니다.


  10부 초반부에 보면 민형이 잡은 고기를 사 와서 조리하는 장면이 나오죠.
  유진이 능숙하게 탁탁 소리를 내면서 칼질하는 모습을 보고 민형이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말하는 장면이요.
  전 이 장면 보면서 예전에 준상이와 유진이 낙엽을 태우는 소각장청소를 할 때 말한 대사가 생각이 나더군요.

  1부에서 유진이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맡으면서 '음...이 냄새구나....'하면서 말하는 장면이 있었죠.
  유진이 이렇게 말하면서 타는 낙엽냄새를 맡죠.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그거 배울 때... 낙엽 태우는 냄새가 뭔지 늘 궁금했었다.
      낙엽을 태우면 잘 익은 개암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개암냄새가 뭔지 모르니까....
      근데 무슨 냄새랑 비슷한 지 이제 알았어....
      우리 아빠 냄새야....
      어렸을 때.... 아빠가 엄마 몰래 담배 피우다가 나한테 들키면....
      꼭 안아주면서 비밀 지켜달라고 했었거든.... 그때 아빠한테서 나던 냄새랑 비슷해."

  10부에서는 민형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김선배가 그러는 데 대부분의 남자들한테는 이런 환타지가 있데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사랑하는 사람과 보글보글 맛있게 끓고 있는 된장찌개가 기다리고 있는 느낌...
      그게 뭔지 알 거 같아요."

  여기서 전 왜 예전의 준상이와 유진의 소각장 장면이 생각났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어감 때문인 거 같아요. 어감語感이요...


  그 다음 장면에 나오는 아침식사를 선물해 줘서 고맙다고 민형이 말하는 장면에서도 스키장에 오기 전 집에서 진숙과의 저녁식사에서 유진이 말하는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유진이 진숙에게 준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예전에 그랬어... 혼자 밥 먹기 싫어서 자꾸 밖에서 밥 사먹게 된다구.
      그래서 찌개 끓일 때마다 밥상 차릴 때마다 먹을 때마다 한동안 걔 생각났었는데.... 몰랐지?"


  유진이 집으로 와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개 숙이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었죠.
     "엄마... 나... 상혁이 사랑하지 않아."

  저 이 장면 보면서 좋게 표현하자면, 이해인님의 시詩중에 한 구절이 생각이 났구요, 나쁘게 말하면 해머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상혁이 유진에게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구' 묻는 장면이 나오죠.
  그 질문에 유진은 민형의 '정말 좋아하는 건 이유를 댈 수 없는 거예요'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하죠.
     "...이유를 댈 수가 없어."

  전 유진의 이 대답에 원태연님의 '그냥 좋은 것'이라는 시詩가 생각이 나 적어봅니다.
  그리고 이 대답에 상혁이가 유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을 이정하님의 '사랑의 우화'라는 시도 같이 적어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내 사랑은 소나기였으나
            당신의 사랑은 가랑비였습니다.
            내 사랑은 폭풍이었으나
            당신의 사랑은 산들바람이었습니다

            그땐 몰랐었지요.
            한때의 소나긴 피하면 되나
            가랑비는 피할 수 없음을.
            한때의 폭풍이야 비켜가면 그 뿐
            산들바람은 비켜갈 수 없음을.


  유진이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스키장으로 와서, 민형과 하얀 눈밖에 보이지 않는 언덕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 나오던 ost의 4번 트랙 '그대만이'도 참 인상적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용혜원님의 이 시가 생각이 납니다.
  민형을 향한 유진이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확인을
      하고 싶어집니다

      사랑은
      기다림과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너무도 성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춧불처럼 타 내려오는
      사랑보다는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폭풍처럼 몰아쳐서
      질풍처럼 달려들어
      이루어지는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혼자만의 감정으로
      사랑하기를 원치 않기에
      그대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사랑을 내가 먼저
      고백하면 안되겠습니까
      가슴속에 타오르는
      열정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용국의 전화를 받고 울고 있는 유진에게 민형이 '상혁이 때문에 그러냐'고 물을 때 유진이 하는 대사중에 이런 말이 있었죠.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많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저 여기에서 유진에게 화가 좀 나더군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기야 하겠죠... 그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 것이 문제겠지만...


  민형이 유진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내려고 결심할 때 유진에게 하는 말이 있죠.

     "내가.... 상혁씨에게 부러운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요?
      시간이요. 유진씨와 함께 한 그 긴 시간.... 한 걸음에 두 걸음을 걸을 순 없잖아요."

  그 때 민형은 이 시를 알고 이렇게 말했을까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헤어지던 그때로 가고 싶어..
      편하게 그대
      보내고 싶다..

      시간을 더 되돌릴 수 있다면
      행복했던 날들로 가고 싶어..
      더 행복하게 해서
      그대 떠나지 않게 하고 싶다..

      시간을 조금 더 되돌릴 수 있다면
      처음 만났을 때로 가고 싶어..
      멋진 첫인상으로
      그댈 푹 빠지게 하고 싶다..

      그래도 더
      조금 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만나기 전으로 가고 싶다..
      어차피 헤어질 거였다면
      그대 만나지 않고
      마음에만 고이 아껴두고 싶다..


  민형이 병원에서 유진이를 상혁의 병실로 보내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바보...'라는 시詩의 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분명히 후회할텐데...

      그 사람이 있어 내가 사는 현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기대면 그 사람 힘들까봐
      언제나 강한 척 자존심만 내세우고,

      이러다 정말 떠나보내면 평생을 후회하며 산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믿기에
      그러기에 더더욱 다가서면 안된다는 걸

      그리 어리석음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나는 바보


  이 다음부터는 글쓰기가 힘이 듭니다.
  상혁이 때문에 정리가 안 되네요...
  그리고 글이 너무 길기도 하구요.
  나머지는 다음에 쓰겠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굳세게 보호할 수 있는 자만이 사랑하는 그 여자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괴테가 그랬다죠...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도 자신의 사랑을 굳세게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추신追伸 : 읽다가 정리가 안 되어도 이해하세요.
  저도 글을 쓸 때는 이런 느낌으로 썼는데, 막상 쓰고 읽어보면 그 느낌이 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현명하고 총명하신 분들이시니 다 이해하시고 읽으시겠죠.
  그럼...


댓글 '4'

아린

2002.02.13 11:42:56

어찌 그리 적절한 시구절을 아시는지요??? 정말 토님님에 대해 궁굼해지는 아린입니다.....저도 지금까지도 심장의 울림이 멈추질 않네요???

미혜

2002.02.13 11:57:12

아~토미님은 어쩜 그리 유진의 마음과 민형의 마음을 시구절에 맞게 잘 표현해 주시는지..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감탄합니다...드라마를 보면서 미쳐 느끼지 못한 감정까지도 끌어 주시니 배의 감동이 옵니다..

앨피네

2002.02.13 12:41:29

토미님. 감사합니다.. 항상 토미님의 글을 읽고나면.. 조용히 그들의 대사대사 그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그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을 줘서 고맙습니다.

세실

2002.02.13 20:04:18

토미님 정말 부럽네요, 너무 좋은 감상문 잘 읽었어요. 앞으로 토미님 이름 스타지우에서 자주자주 만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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