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을 읽고...

조회 수 3086 2002.03.04 02:29:48
토미
  누군가 1마일을 함께 가자고 부탁하면 2마일을 같이 가 주라고 하였다. 1마일을 같이 가자고 부탁하면서도 혹시나 하며 가슴 졸이던 사람에게 선뜻 2마일을 가 주겠다고 말해 보라. 상대방이 느끼는 고마움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은 참으로 정직하다. 무엇인가를 던져 주면 어김없이 돌려줄 뿐만 아니라 덤으로 이자까지 준다.

  조기홍님의 '우렁각시'중에 한 구절을 적어보았습니다... 요즈음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 거 같아서요.

  낮에 서점에 갔다가 '하얀사랑'님이 읽으신다는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과 유홍준님이 쓰신 '화인열전 1, 2' 그리고 몇 권의 인문과학人文科學 책冊을 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페라의 유령'을 읽고 여기에 느낌을 적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와 자판을 두들기고 있습니다.

  그대, 이 책을 덮는 순간 가슴으로 휑하는 바람이 일고 바람의 무늬 때문에 가슴을 적시는 물결이 일고 그리하여 두 볼을 타고 그대의 아픔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게 된다면 아직도,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입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로 유명세를 먼저 얻은 이 작품을 완역完譯본으로 만나게 되어 우선 무척 기뻤습니다. 아름다운 디바와 추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뮤지컬에서는 다 표현해내지 못했을 문학적 장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더 없이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 장치들이, 흩어져 있는 조각퍼즐들을 맞추듯 끼워질 때...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내레이터narrator는 사건 수첩을 뒤에서 앞으로 뒤적이며, 조각이불을 꿰매어 나가듯, 차근차근 사건의 형체를 독자에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구나 하나씩의 가면假面을 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숨긴 채 사회가 또는 서로가 원하는 인물이 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가면의 저편에 가둬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서로의 가면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 채 서로의 그럴듯한 가면만을 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신神은 '에릭'에게 만큼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을 그런 가면假面을 선물했습니다. 그의 가면은 그를 사회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를 멀리하고 배척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그럴듯한 가면을 보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 다른 사람의 진짜 본모습을 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실은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난 뛰어난 음악가이며 또한 천재적인 자질을 지닌 건축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멸시와 배신 속에서 '에릭'은 자신을 세상과 차단시켜줄 또 다른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그렇게 가면을 쓴 채 오페라 극장의 지하에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여 세상과 격리된 채 아니 그 나름대로 세상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존재로..

  그러던 중 그는 무명가수인 '크리스틴'을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자신의 실력의 반도 발휘를 못한 채 그저 그런 무명의 가수로 지내고 있던 아름다운 '크리스틴'에게 '에릭'은 모습을 숨긴 채 접근해 그녀를 최고의 가수로 성공을 시키고 또 그녀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하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순간의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의 가면을 벗기고 그가 그렇게 숨기고 싶어하던 그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의 마력적인 목소리만으로 그에게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었던 '크리스틴'은 그의 진짜 얼굴을 본 순간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녀는 '에릭'의 얼굴에서 공포와 두려움만을 느낄 뿐 그의 내면의 그녀에 대한 사랑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에릭'과의 약속을 어긴 채 그녀를 짝사랑하던 '라울'에게 자신을 데리고 떠나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때 '라울'과 '크리스틴'의 대화가 마음에 남습니다.

  '만약 '에릭'이 잘생긴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과연 날 사랑할까요?'
  '마치 죄를 감추듯이 내 의식 저 밑에 감추어둔 것을 굳이 들추어내려는 의도가 대체 뭐에요?'

  여기서 저는 '크리스틴'의 아름다운 가면 속에 감추어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보았습니다. 글 중에서 '에릭'은 괴물이라 불리우지만... 정말 추악하고 더러운 것은 우리가 그렇게나 감추려고 애쓰는 우리들 마음속이 아닐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유령'으로 밖에 살수 없었던 '에릭'의 삶이 저를 너무나 슬프게 합니다.

  책을 읽은 후... 차마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감성적인 쪽에 치우쳐서 책을 읽은 탓인지는 몰라도 끝내 사랑하는 이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그저 그녀가 보인 작은 동정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에릭'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어떤 이는 그의 지나온 삶의 방식이 너무 잔인하다고, '크리스틴'에 대한 그의 사랑이 정도를 벗어났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전 오히려 그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戀歌 속의 상혁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크리스틴'과 '라울'을 보내주면서... 조건은 내가 이 반지를 줄 테니 끼고 있다가 내가 죽으면 나와 그 반지를 작은 호수 옆에 묻어달라고....

  이 부분을 생각하면 '에릭'이 '상혁'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연가를 끝까지 보지 못해서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도종환님의 '다시 피는 꽃'중 나오는 시詩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핀다
    제 몸 가장 빛나는 꽃을
    저를 키워준 들판에 거름으로 돌려 보낼 줄 알아
    꽃은 봄이면 다시 살아난다

    가장 소중한 걸 미련없이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낸다
    하늘 아래 가장 자랑스럽던 열매도
    저를 있게 한 숲이 원하면 되돌려줄 줄 알아
    나무는 봄이면 다시 생명을 얻는다

    변치 않고 아름답게 있는 것은 없다
    영원히 가진 것을 누릴 수는 없다
    나무도 풀 한 포기도 사람도
    그걸 바라는 건 욕심이다

    바다까지 갔다가 제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제 목숨 다 던져 수천의 알을 낳고
    조용히 물 밑으로 돌아가는 연어를 보라
    물고기 한 마리도 영원히 살고자 할 때는
    저를 버리고 가는 걸 보라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꽃은 다시 핍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順理'라고 합니다. 그 순리를 따르면 사람도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순리를 따르는 요체는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다가오는 봄에는 욕심을 버리고 꽃을 피우시기를...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3'

순수지우

2002.03.04 09:17:03

올 새해첫날 새로운 맘가짐으로 읽은책이 '오페라의 유령'이었어여..저도 이책을 읽고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답니다.. 토미님 글 항상 감사드리구여~ 좋은하루되세여^^

운영2 현주

2002.03.04 11:36:58

오페라의 유령이 그런 스토리였군요...^^ 전 아직 아봤는데....안볼래요..너무 슬플거 같아요..봄이 찾아오는 이때에..슬픈건 겨울연가로도 만족해요..흑흑...왜 해피엔딩이 아니냐고요..겨울연가는......운명이라면서...왜 왜 왜..그들의 사랑을 꺾으려드는지..흑흑... 두분 좋은 한주 되세요~

하얀사랑

2002.03.04 19:52:38

토미님... 너무나 잘 읽었어요... 제가 일고도 미쳐 느끼지 못한 부분까지도 님의 글을 일고 다시한번 느끼게 되네요^^ 아름다움과 추함이 옛날에 서로 길을가다가 서로의 옷을 바꿔입었대요... 아무리 추함의 옷을 입고 있어도 아름다움의 내면을 알아보는 사람이 간혹 가다 있긴 하지만, 아름다움의 본 모습을 알아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라는 글을 언젠가 얼핏 본거 같은데 맞는가는 모르겟어요..^^ 토미님 글을 일고 생각해본건데요... 하얀사랑은 겉모습이 추함의 옷을 걸치고 있는 아름다움의 진정한 내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일까하고요^^휴.. 쓸데없는 생각이죠?.. 님의 글을 일고나면 이런 저의 쓸떼없는 생각까지도 감사하답니다..^^ 정말잉에요... 순수지우님, 현주님 따뜻한 저녁되시구요,, 연가보고 또봐용^^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467 광고속의 상큼한 지우 [5] 지우바라기 2003-04-27 3058
466 `Vienna Boys` Choir Goes Pop( 비엔나 소년합창단의 팝모음곡) [3] sunny지우 2003-05-03 3058
465 인연이라는것에 대해 [3] 앤셔얼리 2003-05-06 3058
464 그림위에 마우스를 가져다 보세요 [3] 지우님팬 2003-05-06 3058
463 오늘 기분이 다운 돼시는 분들만 보세용~^&^ [4] 비비안리 2003-05-13 3058
462 피치대dvd출시이~(기사) [2] ★벼리★ 2003-05-16 3058
461 아름다운 그들을 기억하며... - 아날 21 - 2회 - [8] 운영자 현주 2003-05-19 3058
460 어제 BS2 일본방송에서 겨울연가 바써여...ㅋㅋ [3] 영원한팬 2003-05-23 3058
459 5월 마지막 주에...... 세번째 끄적임..~~ [2] 마르시안 2003-05-26 3058
458 Let's Fight for SARS together!!! [2] Jessie 2003-05-27 3058
457 ETN 방송에 나온 지우님소식 -최지우 생일 봉사활동 [6] 운영자 현주 2003-05-29 3058
456 My All....Mariah Carey[뮤비] 자유의여신 2003-06-05 3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