戀歌 18부...

조회 수 3079 2002.03.13 04:27:34
토미
    사랑은 아무에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가
    몸 속에 아무런 항체도 남기지 않은 채
    문득 떠나 버리는 감기 바이러스와도 같은 게 아닐까요
    감염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고
    대비를 해보았자 다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어느새 우리의 영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심술궂은 요술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속수무책 열병에 빠져드는 거지요.
    일부러 영접할 수도
    거절할 수도 없는 그 것,
    바이러스 같은 것이긴 하지만
    어쩌면 시보다도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실체지요

  구효서님의 '내 목련 한 그루'中의 한 구절을 적어보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하얀사랑'님에게 보낸 쪽지에 실린 글입니다.

  '사랑'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려 힘들어하는 戀歌 18부中의 유진과 민형과 상혁을 보면서 다운을 받다가... 글을 적습니다.

  먼저 戀歌 18부의 유진과 민형의 아픔을 보면서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장자가 한 말인데... 하루는 장자가 꿈을 꾸었는데 나비가 되어서 꽃밭을 날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자기가 원래 나비였는데 인간이 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보면 사람이 산다는 게 다 덧없는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진과 민형을 보면서요...

  상혁이 유진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오고... 곧바로 뒤쫓아 온 상혁과 민형이 얘기하는 장면이 있죠.
전 이 장면의 둘 사이에 오고 간 대사보다는 '피아노'에서 우민경이라는 간호사가 재수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민경이 한재수에게 이렇게 말하죠.
    "용기를 내요. 남들이 뭐라건, 남들이 어떻게 보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잖아요 당신들.
     서로한테 그렇게 목이 마르면서...
     남들 시선이.. 법이.. 가족제도가.. 관습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당신들 목말라 죽을 거 같잖아요, 생명이 위태롭잖아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있어요?"

  상혁이 민형에게 '우민경'처럼 말할 수는 없었겠죠.
  아니 그렇게 말할 수도 없는 자신이 원망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형이 상혁에게 "우리 도망가면 보내줄래?"하면서 묻는 장면을 보면서... 그리고 "그래..."라고 말할 수 없는 상혁을 보면서... 작가와 연출가에 대한 원망은 둘째치고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꼬여도 저렇게 꼬일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민형의 어머니가 민형에게 헤어지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죠.
  민형은 어머니의 강요에 더 이상 유진을 다치게 하기 싫어서... 정말 다치게 하기 싫어서 "헤어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구 말입니다.

  민형의 '헤어지겠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숨쉬기가 곤란해지게 만드는 사람인데...
  목구멍 속에 복숭아씨가 걸린 거 같이 팔도 저리고, 다리도 저리게 만드는 사람인데...
  겨울에 비를 맞아도 시원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인데...
  여름에 얼음굴속에 있어도 유황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처럼 속을 새까맣게 만드는 사람인데...
  과연 헤어질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유진을 아파트 앞에서 만나는 장면이 나오죠.
  전 이 장면 전前에 민형이 유진에게 '나 집 앞에 있으니 잠깐 나올래...' 전화를 하고, 하염없이 유진의 아파트를 쳐다보며 말했을 독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피아노'에 보면 재수가 수아의 집 창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장면이 있죠.

  '재수'가 '수아'집 창을 올려다보며 말합니다.
    "이수아... 우리 도망갈까?... 도망칠까 우리?
     알래스카 얼음산이나 아프리카 정글 같은 데 어디,
     우리 같이 가여운 애들 숨을 만한 데 어디, 찾아서...갈까?"

  아마 민형은 이렇게 말했을 거 같습니다.

    "정유진... 우리 멀리 떠날까?... 떠나버릴까 우리?
     고래가 보인다는 '카이코우라'나 눈雪이 아름다운 '카나다'같은 데 어디,
     우리 같은 동양인들 쉽게 찾을 수 없는 어디, 찾아서...갈까?"

  바닷가에서 여름에 관광객들이 던지고 간 여름의 흔적을 줍고 있는 유진을 민형의 시선視線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군요.

     다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
     여전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당연히 너를
     다시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또 너를
     다시 누군가와 이별해야 한다면
     누군가를 떠나 보내야 한다면
     두 번 죽어도 너와는

  민형이 뱃전에 앉아 유진을 보면서 말하죠.
    "여긴 아직까지 겨울인데... 이 동전들만 여름이네..."

  이 말을 할 때 민형의 어조를 들으면서 전 戀歌 11부에서 유진과 민형이 나누었던 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마치 그들이 그림자나라에 온 거 같은 착각錯覺을 느끼게 만든 대사요.

  민형이 유진을 보며 말합니다.
     "근데 스키장에만 있다가 서울에 오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유진씬....어때요?"
  유진이 애써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여긴 겨울이 다 지난 거 같아요. 눈도 안보이고...
      사람들도 다 달라진 것 같고... 모든 게 낯설어요."
  민형이 시간을 다시 돌려보고 싶은 어조로 말합니다.
     "나두 그러네요. 나만 겨울 속에 사는 사람 같아요.
      여기선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해서는 안되는 일들이 잘 보이는 거 같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민형의 심정이 그 때와는 다르겠지만... 그 때는 그래도 편하게는 못해도 볼 수는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바닷가 장면'에서 나오는 그들을 보면서 원성 스님의 시가 생각이 납니다.

     우연이었다기보다는 인연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이야기를 해명할 수는 없습니다.

     전생 쌓고 쌓은 숱한 날들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그 첫 만남을 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분명 나의 큰 잘못 때문일 겁니다.
     그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스스로 떠나야 하는 아픔으로 헤어질 것입니다.
     애별리고(愛別離苦) 애별리고(愛別離苦)*
     처절한 괴로움으로 더 이상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애별리고(愛別離苦) : 부처님이 설한 8가지 인간이 가지는 고통 중의 하나.
  생노병사生老病死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고통, 구한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심신의 5가지 구성 요소로 인한 고통과 함께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을 의미한다.

  밤늦은 바닷가에서 바다를 향해 유진과의 추억을 던져버리는 민형을 보면서... 민형이 바다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거 같습니다.

     잊기에 충분한 시간은
     보이지 않게 많을 지도 모른다.
     헤어질 수 없기에 더욱 사랑하고파도
     아파할 마음조차 너로 인해 멍들어
     이젠 아무런 미련도 없다.

     길게 느껴지는 너의 그리움.
     감당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난 할 수 있다.
     널 잊을 수 있도록 내 마음 정리하는 것을.

     너만은 아닐 거라 믿었지만
     이별은 분명 내가 서 있는 곳 여기에 있다.
     이젠 안녕!
     가거라, 나의 사람아
     아주 먼 곳으로

  유진이 아침에 깨어서 상혁에게서 민형이 떠났다는 말을 듣기 전의 장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이랬을 거 같습니다.

  민형이 유진의 잠이 든 모습을 보면서... 유진의 볼을 만지면서... 유진의 머릿결을 쓸어넘기면서... 유진의 이불을 잘 덮어주면서... 이렇게 생각했을 거 같습니다.
  도종환님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입니다.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그리고 유진을 보면서 눈물지었을 민형을 생각하니... 이 글이 생각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속으로는 조용히 울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게 하는 일 …

  戀歌 18부를 보면서 만약에 유진이 민형과 남매라는 사실을 처음 부분에 알았다면... '피아노'에서 재수와 수아가 나누었던 대사처럼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수'가 이렇게 말하죠.
      "엄마 뱃속으루... 도로 들어가구 싶어.. "
  그러면 '수아'는 고개를 끄덕이죠.
  또 '재수'는 말합니다.
      "우리 각자..낳아준 엄마들 뱃속으루 도로 들어가자..."
  '수아'는 말합니다.
      "그러자..."
  '재수' 이어 말합니다.
      "들어가서...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우리..."
  '수아' 대답합니다.
      "그러자..."
  '재수' 말합니다.
      "벌레로도 먼지로도 태어나지 말자..."
  '수아'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리고 만약에 戀歌 18부에 억관이 나왔다면... 억관은 재수와 수아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억관이 말합니다.
      "너무 더운 데는 더우니까 말고,
       너무 추운 데는 추우니까 말고,
       너무 가까운 데는 찾기 쉬우니까 말고,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보고 싶을지도 모르니깐 너무 먼 데도 말고...
       많이 배운 너희들이 적당한 데 어디 찾아서.. 가라.."

      "가라... 보내줄께..."
      "아는 사람은 하늘하고 땅하고 나하고 너희 둘하고... 밖에 없다..
       하늘하고 땅만 알게 하고 아무도 모르게 하면.. 된다..."

  18부 마지막 부분을 보니... 상혁과 민형이 형제로 밝혀지는 것 같은데...
  그럼... 상혁과 민형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연가 18부를 적으면서 일부러 유진의 느낌은 적지 않았습니다.
  유진의 느낌은 다른 분들이 잘 표현하시는 거 같아서요.
  그리고 나중에... 서서히 지우님에게 물들다가 푹 빠지게 되는 그 때에 적으려면 지금은 감춰둬야 할 거 같아서요.

  상혁이 유진에게 '민형의 어머니가 반대하셔서... 그래서 떠났다고...' 말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 떠오릅니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幼年의 윗목

  차갑고 어두워진 방에 남아 토닥토닥, 배춧잎처럼 가벼운 어머니 발소리를 기다리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유년의 어린 아들만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한결같이 아들과 딸 걱정이지만, 아들과 딸도 늘 어머니 걱정을 하며 삽니다.
  참... 얼마 있으면 어머니 생신이네요... 뭐를 선물하나...

  스타지우에 오시는 분들이 모두 '효孝'를 아시는 분이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1'

현경이

2002.03.13 10:09:09

토미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감정을 추스리게 되네요.. 피아노에서 수아와 재수의 모습이 지금 유진이와 준상이의 모습이네요.. 너무 안타까운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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