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도연초徒然草'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일본의 오래된 수필집인데... 아마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을 거 같아서 적어봅니다.

  먼저 느낌을 적자면...

  옛 사람의 글을 읽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 삶의 보편성의 향기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구조, 미디어와 담론의 환경이 판이한 시대의 글인데도, 오늘날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그 글들이 어떤 지침의 지혜를 주는 것도 바로 그 보편성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은 옛 글이 언제나 우리에게 주는,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일 것입니다.

  이 책 '도연초'는 짧은 글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고문진보'나 '한정록'과 같은 동양고전과 닮아 있지만, 한 사람의 필자에 의해 집필된 저작이라는 점에서는 두 책과 다릅니다. 집필자는 일본 중세기의 와카(和歌) 작가이자 자유분방한 승려였던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약 1283∼1352년경)입니다.

  '徒然草'라-. 언뜻 속뜻이 들어오지 않는 책의 이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무료하고 쓸쓸하다는 뜻의 'つれづれ'의 한자어인 '徒然'과 수상隨想이라는 말인 'くさ(草)'를 합친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료하고 쓸쓸한 나머지 적기 시작한 수상隨想이라는 뜻인 셈입니다. 요시다 겐코 법사는 어느 한가한 날, 쓸쓸하고 한가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고, 와카和歌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하고픈 마음 속 이야기들을 붓 가는 대로 담담히 적기 시작, 나날의 집필은 이 책의 완성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도연초'는 일본에서 중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히는 대표적인 수필집이라고 합니다. 서단까지 합해 총 244단을 수록하고 있는데, 작가가 마음내키는 대로 두서 없이 적어놓은 글들이라 일정한 주제의 모음은 따로 없습니다.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말해주는 잠언적 글이 있는가 하면, 황궁 생활을 비롯한 지극히 사적인 체험을 담은 글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별로 세세히 나누지 않는 이 자유분방함은 내용에서도 그대로 관철되는 양식입니다. 즉, 한쪽으로는 헤이안平安 시대를 이상으로 삼는 상고주의적 입장과 현실 참여와 '세속적 성(聖)'의 미학을 강조하는 유교적 입장을 껴안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비판하고, 인간 내면의 숨겨진 자유로운 자아를 찾고자 하는 노장과 불교의 전통을 껴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30세 무렵 출가해 승려로 살았지만, 은둔자적 삶과 속세로의 여행을 병행했던 요시다 겐코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애욕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한 다음과 같은 두 쪽의 글은, 성속을 함께 아우르는 저자의 경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 '손발이나 피부가 곱고 보기 좋을 정도로 육체가 풍만한 여성에게는 다른 어떤 아름다움에서도 느끼지 못하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남성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육진(六塵)에서 생기는 인간의 욕망은 수없이 많으나 그러한 욕구들은 모두 마음을 자제함으로서 억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애욕의 굴레만큼은 노인도 젊은이도 지식 있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헤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엮어 만든 밧줄로는 코끼리도 붙잡아맬 수 있으며, 여성이 신던 나막신으로 만든 피리 소리에는 가을의 수사슴도 찾아든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스스로 경계하여 신중하게 처신해야만 하는 것이 이 애욕의 굴레인 것이다.'

  너무 밋밋한 글이 눈에 자주 띄는 단점도 있지만, 세상사 이것저것, 이 노력 저 노력 다 해본 자가 초탈한 심경으로 적어놓은 글들이라, 읽는 사람들은 그 진정성의 향기에 가슴 놓고 젖어들 수 있습니다. 교언(巧言)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오래된 진실의 담담함... 이 맛을 아는 이라면 좋아할 책冊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글들...

  - 인품이나 용모는 타고난 것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갈고 닦으면 빛을 발하는 법이다.
  - 언제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가는 세월만 안타깝게 여긴다면 비록 천년을 산다하더라도 하룻밤 꿈처럼 짧게 느껴질 것이다.
  - '와곤'이란 일본의 고유 6현짜리 거문고이다.
  -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던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생각지도 않게 허물없이 말을 걸어 올 때 호감을 갖게 된다.

  - 높은 지위 관직을 바라는 것도 재물을 탐내는 마음 다음가는 어리석음이라 할 것이며, 자신의 지혜와 덕성 이상으로 명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고위 고관을 바라는 마음 다음으로 어리석음이다.
  - 극락왕생이 가능한지 어떤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염불을 열심히 올리면 극락왕생할 수가 있다.
  - 어떤 사소한 일에도 안내자는 필요하다.
  - 너무 도가 지나치게 무엇인가를 잘하려고 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 품위를 갖춘 사람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하더라도 그 중의 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조용히 말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주위 사람들은 자연히 귀를 기울이게 된다.

  - 목숨이란 그 사람의 좋은 시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죽음이 찾아오는 것은 물이나 불이 덮쳐오는 것보다 빠르며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품위를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아예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
  -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여, 남이 묻지않는한 나서서 발언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 '황룡유회(皇龍有悔)'란 우리말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으로 '만사에 있어 극한 상태에 달하게 되면 파탄이 가까이 있음을 알라는 것'.
  - 비록 가시적이라 하더라도 현인을 모범으로 하여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현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길흉이란 실행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며 그것을 행하는 날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 처음 활쏘기를 배우는 사람은 두 개의 화살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음 화살이 있음을 의식하여 첫 화살에 태만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 현재의 한 순간을 의식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 한 순간이라도 시간을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죽은 자와 다르지 않다.
  - 얻기 어려운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실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학문을 하게 되면 타인과의 경쟁 심리를 초월하게 된다. 중요한 직책에서도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고 이익을 버릴 수 있는 것은 모두가 학문의 힘에 의한 것이다.

  - 빈곤한 상황에서 분수를 모르게 되면 도둑질을 하게 되고 체력이 없어져 무리를 하게 되면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 민중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그 결과로 법률을 어기게 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민중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 현상과 진리는 원래 둘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이다. 외부에 나타나 있는 행위가 도리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면의 깨달음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 사람으로서 자신의 장점을 자만하지 않고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 나이를 먹어 삶의 지혜가 젊은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젊은 사람의 체력이 노인보다 뛰어난 것과 같다 할 것이다.
  - 도리를 깨우치지 못한 사람이 타인에 관하여 이리저리 추측하여 그 사람의 지혜의 정도를 자신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 한정된 재화를 가지고 한이 없는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을 읽어본 분이 있다면... 느끼시겠지만, 일본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고대 일본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이것이 그나마 이 수필집의 매력입니다.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다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난리통에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구해낸 것은 주지 스님이 아닌 노비였다.
  주지는 이것을 자신이 끝까지 갖고 있을 욕심이었지만 국가로부터, 절로부터, 부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노비는 애국적·신도적 차원에서 이를 구해냈다.
  몽고란 때 노비의 활약상에 대하여는 익히 알려져 왔다.
  귀족들이 노비에게 신분을 해방시켜 줄 터이니 싸우라고 독려해 놓고 자기는 도망가 버리고 난리가 끝나자 돌아와서는 집안 기물이 없어진 것을 노비들에게 덤터기 씌운 비인간적 처사도 여러 사례 알려져 있다.
  진돗개 같은 맹목적 충성으로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구해낸 절의 노비 '걸승'.
  나라에서는 그것을 가져온 심부름꾼 야별초 병사 10명에게는 후한 포상을 하였음에도 '걸승'에게 어떤 대접을 했다는 얘기는 없다. 낙산사를 해설한 어떤 안내책자에도 이 노비 '걸승'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야멸찬 행태들이다.

  임진왜란 때 낙산사에는 국가의 신보(神寶)라고 불리는 두 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정염주와 여의주가 그것입니다. 이것을 '걸승'이라는 노비가 땅에 묻어 보존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내부(內府)로 옮겨오도록 심부름 보낸 야별초 10명에게는 은 1근과 쌀 5석씩을 주었으나 정작 이것을 보존한 '걸승'에게는 아무런 포상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도 이런 우를 범하지 않는지 경계할 일입니다.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먹고 싶어지게 밤공기가 차갑습니다.
  때늦은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토요일 밤이 되셨으면 합니다.
  그럼...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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