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부르면 남들도 배부를까?...

조회 수 3204 2002.03.30 23:27:24
토미
                 '내가 사랑하는 것들'

  비 온 뒤에 한 켜 더 쟁여진 방죽의 풀빛을 사랑합니다.
  토란 속잎 안으로 숨는 이슬방울을 사랑합니다.
  외딴 두메 옹달샘에 번지는 메아리결을 사랑합니다.
  어쩌다 방 윗목에 내려오는 새벽 달빛을 사랑합니다.

  화초보다는 쑥갓꽃이며, 감꽃이며, 목화꽃이며, 깨꽃을 사랑합니다.
  초가지붕 위에 내리는 새하얀 서리를 사랑합니다.
  무 구덩이에서 파낸 무들의 노오란 순을 사랑합니다.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왔다는 담양의 그 죽순을 사랑합니다.

  고향의, 해질 무렵이면 정강이에 뻘을 묻히고 돌아오던 건강한 수부들을 사랑합니다.
  지나가는 걸인을 불러들여 먹던 밥숟가락을 씻어서 건네주던 우리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상여 뒤를 따라다니며 우느라고 눈가가 늘 짓물러 있던 바우네 할머니를 사랑합니다.

  남의 허드렛일을 자기 일처럼 늦게까지 남아 하던 곰보 영감님을 사랑합니다.
  명절 때면 막걸리 기운에 코끝이 빨개져서 소고 하나만을 들고 농악대 뒤를 따라다니며 덩더쿵 덩더쿵 어깨춤이 신나던 복애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동네 머슴 제사를 1백 년이란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내고 있는 문경의 농바위골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죽으면서 동네 정자 앞에 있는 소나무한테 자기 재산의 절반인 논 15마지기를 상속시킨 예천의 이수목 노인을 사랑합니다.

  눈 쌓인 겨울날이면 산짐승들이 걱정되어서 산자락에 무며 고구마를 던져 놓는 광사 스님을 사랑합니다.
  고향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 소리를 들려주고자 여치 1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 전주의 서병윤씨를 사랑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 모든 것을 버무려서 그 누구도 아닌 한국의 아이로 복제하고 싶은 <초등사과 밤배>속의 주인공이 '난나(나는 나)'입니다.

  풀꽃 하나도 아끼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다운 화평의 피를 가진 아이, 이 땅의 난나들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과 융화해서 사는 삶, 양적인 물질의 풍요보다는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삶, 그리고 보다 높은 인간적 사랑으로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되어 살아가기를 이 밤에 기도합니다.

  정채봉님의 수필 <그대 뒷모습>의 일부분을 적어보았습니다.
  비가 오니 이 분 글이 떠올라서요.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中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옛날 이야기에도 그런 게 있어요.
      욕심 많은 부자 얘긴데 그는 자기가 배가 부르면 남들도
      다 배가 부른 줄 아는 부자였대요."
     "그래, 그런 마음은 들판을 지날 때에도 똑같은 거야.
      자동차 안이 시원하다고 농부가 김매는 들판까지 시원한 게 아니거든.
      그런데도 우리는 그 욕심 많은 부자처럼 자기가 시원하고 한가하니까
      그 풍경까지 시원하고 한가하게 바라보는 거야.
      농부가 어떤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말이지."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마련입니다. 내가 기쁘면 남들도 기뻐야 하고 내가 슬프면 남들도 슬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들은 나와 같지 않습니다. 내가 한가하게 즐길 때 남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하면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남들은 여유를 가지고 즐기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을 생각하는 너그러움을 갖추는 님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연가戀歌가 방영되고 있을 때 '유진'을 가지고 말장난하는 분들을 보면서 생각나는 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유진'에게 '완벽'을 원하지 않거든요... 다만 언제든지 다시 채울 수 있는 '여백'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주 특별한 즐거움>中에 나오는 글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전체 시를 망칠 때까지
     한 줄의 시구를 고치고 또 고친다.
     완벽주의자는 종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초상화의 턱선을 고치고 또 고친다.
     완벽주의자는 시나리오의 첫 장을 고치느라고
     다음 장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관객의 눈치를 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결과를 저울질한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몸이 추워집니다.
  비가 와서 더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따뜻한 차茶라도 한 잔 마셔야겠습니다.
  낮에 서점에 가는 길에 '정동길'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비가 올 때 거닐면 아주 좋거든요.
  여러분도 시간 나시면 한 번 거닐어 보세요.
  그럼... 편안한 토요일 밤 되세요.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눈부처 :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댓글 '1'

sunny지우

2002.03.31 00:03:23

토미님 오늘은 어떤글을 올려 주실까 늘 기대가 됩니다. `글을 먹고 사는 분'이라고 별칭을 드려도 실례가 되지 않을 런지요...."완벽주의" 제가 그렇거든요. 많이 치료 되었지만요. 자신과 남을 피곤하게 만들죠.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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