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의 자동차...

조회 수 3157 2002.04.11 23:04:42
토미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한 대의 자동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산길을 두 대의 자동차가 바짝 붙은 채 앞뒤로 달리고 있었다. 도로포장이 안 된 울퉁불퉁한 길이라 흙먼지가 뿌옇게 끝없이 일어났다.
  고르지 못한 길에서의 운전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심하게 움직이는 차안에서 창문도 열지 못한 채 먼지 속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앞차를 따라가는 뒷차는 앞차에서 나는 먼지 때문에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잔뜩 긴장해야 했다. 뒷차의 운전사는 슬며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포장된 도로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가야 했다.

  그런데 조금 넓은 길이 나타나자 앞차가 한쪽에 차를 대는 것이었다. 주위는 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뒷차의 운전사가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 큰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앞차의 운전사가 창문을 열고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어서 먼저 가십시오. 내가 내는 먼지를 당신이 계속 참아주셨으니까 이제부터는 제가 참도록 하겠습니다."

  앞차의 운전사는 빨리 지나가라는 뜻으로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생각지도 않던 친절에 놀란 뒷차의 운전사는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자동차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이라도 먼지가 덜 나게 하기 위해 차를 천천히 몰았다.
  두 대의 자동차가 좁은 산길을 사이좋게 달리고 있었다.

  이 글을 적으면서... 전 모 CF가 생각이 났습니다.
  차茶밭 사이로 난 사잇길을 가는 여승女僧과 수녀修女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 CF 말입니다.

  앞에 여승이 걸어가고 뒤에서는 수녀가 자전거를 타고 옵니다.
  그리고 이내 자전거를 탄 수녀가 여승을 지나 저만치 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수녀가 다시 되돌아와 여승을 자전거 뒷좌석에 태우고 다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을 무엇일까요... 물론 자막으로 설명이 나왔지만 말입니다.

  바다 해海 너그러울 만曼, 해만海曼 스님이 지은 <꽃담>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스님이 지은 소제목이 재미있어 적어봅니다.

  '총각김치 좋아하는 비구니 스님'

  김치는 눈으로 먹어도 맛있어 보였다. 김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공양 때가 아닌데도 흰밥에 김치 한 포기를 얹어 먹고 말았다. 5월이 되도록 신 김치만 먹다가 방금 담근 배추의 달착하고 상큼한 맛을 보니 혀끝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세간에서 쓰는 양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맛있는 김치를 담갔냐고 물었더니 친정 어머니께 부탁해 담근 김치라고 했다. 친정 어머니는 배추를 한 포기 한 포기 버무릴 때마다 속삭였다고 한다. "김치야, 김치야. 맛있게 되어서 스님이 잘 드시도록 해 다오." 맛의 비결은 정성이었다.

  김영희의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中에 나오는 '바람의 색깔'에 대한 지은이의 표현도 참 이채異彩롭습니다.

     바람에도 색깔이 있었다.
     수선화에 묻어오는 바람이 다르고,
     아기 기저귀에 묻어오는 바람이 다르고,
     더군다나 머리카락 긴 청년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달랐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날은
     혼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몇 정거장을 가다가
     한적한 간이역에 내리면
     한적한 바람이 거기에 몰려 있었다.
     설거지 행주 군내에 절은 여인이
     그 껍질을 깨고 싶은 때도 있었다.
     바람을 맞으러 홀로 들판에 나섰다.

  종이인형 작가 김영희는 아이 넷을 낳고 남편과 사별한 뒤 독일 남자와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이 책冊(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안에 쏟아 넣고 있습니다. 독일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체험한 '바람의 색깔'에 대한 표현이 참 이채異彩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조금 피곤합니다.
  요즘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낮에 조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정말 봄앓이를 하기는 하는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잠을 청해 봐야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4'

세실

2002.04.11 23:17:43

토미님 따뜻한 우유 한잔이 부디 님을 깊고 달콤한 잠으로 인도하기를 바래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다보물

2002.04.12 00:07:52

토미님 내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님의 따뜻한 글 만날수 있으리라 .... 편안한 마음으로 푹 주무시고 상쾌한 아침 맞으세요

변은희

2002.04.12 02:11:58

토미님의 글을 한 편도 빼먹지 않고 읽어 온 사람입니다.꼭 고맙고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늘 옆에서 뒤에서 우리 가족들간의 사랑과 행복을 가지고만 가는 사람입니다.늘 고맙습니다.참으로 아주 오랫만에 현주님과 토미님께 저를 표현했습니다.답례가 없더라도 기억해 주십시오.지금까지처럼 계속 저의 마음이 고마울 거라는 걸 말입니다.많이 많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토미

2002.04.12 05:54:34

세실님과 바다보물님 그리고 변은희님이 달아주신 답글을 이 아침에 보니 새로운 힘이 납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어제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따뜻한 우유를 먹고 자려고 자리에 누웠는데... 정말 요즘 새삼 느낍니다. 사람이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못할 때 느껴지는 괴로움 같은 것 말입니다... 예전에 신림동에 있을 때는 잠을 줄이려고 별별 짓을 다 해도 잠을 줄일 수 없어 항상 고민했는데... 지금은 좀 오래 자고 싶어도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잠을 못 잡니다... 간호사인 여동생 말로는 수면제로 잠을 청하면 버릇되고 몸에도 안 좋다고 해서 참긴 하지만... 이렇게 잠을 못 자게 되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저도 걱정입니다... 제 넋두리가 너무 기네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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