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김효신·김영수 부부夫婦가 쓴 <사랑하는 것도 슬픔입니다>를 사무실에 나가는 길에 읽었는데, 참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 바람에 눕는 한이 있어도 풀같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내인 저는 일상적으로 당신께 헌신할 수는 없어도, 죽는 날까지 당신의 동지가 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나의 이름이 믿을 신信입니다. 내가 당신께 바치는 정절은 나로 하여금, 당신이 나를 먼저 버리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당신을 떠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부부는 서로의 예술활동 무대가 다른 탓에 부인은 미국에서, 남편에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미국에서 글을 써서 보내면, 남편은 그 부인에게 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보내는 식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글 속에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얼마나 큰 기쁨과 헤어져 사는 슬픔을 주는지, 사랑을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거리距離가 필요 없는 모양입니다.

  낮에 공원을 거닐다가 어머니와 같이 산책을 나온 조그마한 어린 아이를 보았습니다.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뒤에서 따라가면서 아이를 살피고, 아이는 엄마가 뒤에서 오고 있는지 아는 듯 모르는 마냥 뛰어다니고...

  공원에서 본 아이를 보니 생각이 나는 책이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 읽은 책인데...
  알랭 아야슈Alain Ayache라는 이름을 가진 알제리계 프랑스 언론인이 지은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라는 책입니다. 원제는 'Lettres a Prunelle'입니다.

  먼저 책을 소개하자면...

  '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고 생각할 때마다 늘 '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편지가 점점 길어져서 최초의 책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이 주는 느낌은 다정다감하고 따스하고 곰살맞습니다. 그런 느낌을 더욱 굳혀주는 책이 있으니, 이 참에 소개해 볼까 합니다.

  먼저 이 책은 세상 사람을 몇 개의 대그룹으로 나누기 좋아하는 책들처럼 제목은 좀 투박하고 식상한 편입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 태어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딸에게 인생의 지혜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아이가 너무 어려 미래의 딸아이에게 대신 편지를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의 수신인은 미처 성장하지 못한 생후 5개월 된 딸, 프뤼넬인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딸의 성장을 앞지른 격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의 유별난 딸 사랑에 '누가 외국사람 아니랄까봐.'하며 양미간을 한 번 찡긋해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는 게 닭살스럽지 않고 더 귀엽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딸의 볼을 보며... 따끈따끈한 찐빵을 쿡쿡 눌렀다가 다시 부풀어오르는 모양을 지켜볼 때처럼 장난스럽고도 행복한 느낌이 들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솔직히 이 아빠가 하는 짓이 좀 잔망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딸아이를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을 흉볼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글쎄, 이 말은 너무 어렵지 않나?', '이건 아마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겠지?', '나라면 이렇게 말할 텐데...'하면서 줄래줄래 사족을 달게 되는 건, "저에게도 성장한 딸아이가 있다면..."하고 즐거운 상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부름을 가면서 길을 곧장 질러가지 못하고 좌판이며 문방구를 기웃거리는 어린애처럼 책 소개가 자꾸 딴 길로 새어버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갖가지 상상을 해보는 게 조금도 싫지 않습니다. '따아...ㄹ 흠!흠! 따알. 딸아이. 그래, 딸아이.'하고 조그맣게 소리내보기도 하고, 반대로 아야슈의 딸이 아닌 아들이 되어 보기도 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꿀꺽꿀꺽 받아 마시는 상상을 하니 말입니다.

  솔직히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마치 딸이 있는 냥 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의 글은 생우유처럼 진합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야슈는 경험한 것을 무리 없이 풀어내 진실되고 알찬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런 아빠라면 믿을 만 해!'라는 자부심이 불끈불끈 샘솟게 합니다.

  둘째, 딱딱한 교훈은 한 걸음 물러서 있고 따뜻한 아빠의 사랑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대개의 인생지침서들이 짐짓 위엄있는 목소리로 '이 아비처럼 살아보렴! 얼마나 보람있는 삶인지 너도 곧 알게 될 것이야.'하고 충고하는 데 반해 그의 목소리는 아주 따스하고 다정합니다. 엄마에게 혼이 난 딸을 달래줄 때처럼 부드럽고 정이 가득한 음성처럼 말입니다.

  아버지와 딸. 부정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종종 있어도 이렇게 콕 짚어서 표현한 책은 없는 거 같습니다. 특히 우리 정서에 '우리 딸, 사랑해∼!'라고 외쳐준 책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있다 해도 너무 쑥스러운 고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어쨌든, 아빠의 큰 함성 같은 사랑 덕분에 프뤼넬은 아주 예쁘고 당당하게 잘 자랄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믿어주는 아빠가 있는데 누가 프뤼넬의 기를 죽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이 땅의 우리네 아빠들도 '우리 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오를 만큼 널 사랑해∼!'라고 큰 소리로 딸들에게 응원을 보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딸들이 살아가기에는 이 땅이 그리고 이 세상이 너무 힘든 세상이기에 아빠들이 더 많이 힘주고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프뤼넬, 너는 아름답기 때문에 온갖 천사가 너에게 쏟아질 거야.
     찬사에 묻혀 쓰러질지도 몰라. 그러나 그것을 듣고 흘릴 뿐, 절대 귀에 담아 두진 말아라.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 아첨꾼들을 이렇게 시험해 보렴.
     그들이 너의 미소를 기대할 때 표정을 찌푸리거나, 그들이 방심할 때 약간 변덕을 부려 보는 거야.
     그러면 감언이설 하는 자들을 쉽게 가려 낼 수 있을 거야.

  전에 본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안아주기, 뽀뽀해주기,
     좋아한다고 말하기, 사랑한다고 말하기 등
     가능한 자주 사랑을 표현하자.
     사랑을 받고 큰 아이가 사랑을 베풀 줄 안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사랑은 넘칠수록 좋다고 합니다. 비단 부모와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부부 사이,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넘치도록 베풀어야 합니다.

  에릭 프롬의 <사랑의 기술>中에 보면 '사랑의 대상'에 대한 구절이 나옵니다.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얻는 소득은 엄청납니다. 에릭 프롬은 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형제애, 모성애, 인류애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거 같습니다.

  화요일 새벽입니다.
  아침을 위해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럼...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님들이 되시길 바라며


  p.s 지난번에 쓴 두 편의 글은 좀 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편 다 A4용지로 8장 분량이니...
  읽었던 분들은 꽤 고생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글을 올리고 싶습니다.
  글이라는 게 저자著者의 생각이 들어있는 거라 제3자가 함부로 줄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댓글 '1'

앨리럽지우

2002.04.16 00:36:41

토미님.. 저두 솔직히 고백하건데..정말 글이 읽기 길어서 읽지 않고서 휘릭.. 지나친적도 있지여^^ 그런데 이렇게 비오는 밤(아니 새벽이구나) 토미님 글 읽으니깐 맘도 차분해지고 좋네여.. 좋은 밤 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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