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ce molto' 때론 'Andante'...

조회 수 3053 2002.04.17 22:23:22
토미
     세상은 얼마나 복잡한가?
     이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고 따뜻한 대답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고.

  과학서적의 매력은 이치를 탐구하고픈 인간의 지적 욕망을 자극하고, 모르고 살아왔던 법칙과 원리들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잘한 일상사에만 파묻혀 살아가는 저와 같은 범인凡人들도 그런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우주와 만물의 이치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을 매혹시키는 과학서적은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과학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특별한 사명감속에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실험실 안에서만 존재하던 과학을 끌어내어 대중의 눈높이에서 맞추고 그것에 이런저런 이야기의 외피를 두르는 것, 모르긴 해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작업일 것입니다.

  제가 지난 글에 이어 소개할 책은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로 있는 정재승의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연상되듯 때론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Vivace molto', 때론 '느리게 Andante' 펼쳐지는 과학의 교향곡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일부를 적어보겠습니다.

     머피의 법칙(Murphy's law) : 일상 생활 속의 법칙, 과학으로 증명하다

  살다 보면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다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슈퍼마켓에서 줄을 서면 곡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고, 중요한 미팅날엔 옷에 커피를 쏟거나, 버스를 놓쳐 지각하기 일쑤다.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봄비가 내리고, 수능시험을 보는 날엔 해마다 한파가 몰아친다. "하필이면 그때…" 혹은 "일이 안 되려니까…" 같은 말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가!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법칙이 있으니 이름하여 '머피의 법칙(Murphy's law)'. 수많은 구체적인 항목들로 이루어진 머피의 법칙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잘될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If anything can go wrong, it will)'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정리해 놓은 이 법칙은 불행하게도 중요한 순간엔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 하고 낙담마시라. 다른 사람들도 당신만큼 재수가 없으니까.

  머피의 법칙에 대해 과학자들은 그동안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머피의 법칙은 단지 우스갯소리일 뿐, 종종 들어맞는다는 사실조차 우연이나 착각으로 여겨왔다. 머피의 법칙을 반박할 때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는 '선택적 기억(selective memory)'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은 갖가지 사건과 경험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경험으로 일일이 기억의 형태로 머릿속에 남진 않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일이 잘 안 풀린 경우나 아주 재수가 없다고 느끼는 일들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머릿속엔 재수가 없었던 기억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이다. 소풍 때마다 비가 오고 수능시험날이면 어김없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봄비가 한창인 4월 무렵에 소풍날을 잡고, 안 추우면 이상한 12월 중순에 수능시험 날짜를 정해놓고, 비가 안 오고 날씨가 따뜻하기를 바라는 심보는 또 뭔가!

  그러나 이 정도 설명으로는 어째서인지 만족할 수 없다. '왜 하필이면'을 연발케 하는 재수 더럽게 없는 사건들이 과연 모두 '선택적 기억'이라는 우리의 착각일까?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날까지 멀쩡하던 날씨가 어떻게 소풍 당일이면 어김없이 비가 올 수 있을까? 오죽하면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귀신 소문까지 돌았을까. 아무래도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우리의 찜찜한 기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과학자가 있다. 신문 칼럼니스트이자 영국 애쉬튼 대학 정보공학과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로버트 매튜스Robert A.J. Matthews는 선택적 기억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머피의 법칙이 그토록 잘 들어맞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하나씩 증명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증명했던 머피의 법칙은 '버터 바른 토스트'에 관한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 준비로 부산을 떨며 토스트에 버터를 발라 허둥대며 먹다보면 빵을 떨어뜨리기 쉽다. 그런데 공교로운 것은 하필이면 버터나 잼을 바른 쪽이 꼭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 빵을 다시 주워 먹기도 곤란할 뿐더러 바쁜 와중에 바닥도 닦아야 하는 골칫거리가 생긴다. 젠장할!

  1991년 영국 BBC방송의 유명한 과학 프로그램에서는 '버터 바른 토스트'에 관한 머피의 법칙을 반증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토스트를 공중에 던지게 하는 실험을 했다. 300번을 던진 결과,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으로 떨어진 경우는 152번, 버터를 바른 쪽이 위를 향하는 경우는 148번으로 나왔다. 그들은 '확률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머피의 법칙은 결국 우리들의 착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호기심 해결!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일상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은 토스트를 위로 던지는 경우가 아니라 대부분 식탁에서 떨어뜨리거나 사람이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도 결과는 위 실험과 같게 나올까? 버터를 바른 면이 위쪽을 향해 있던 토스트가 식탁에서 떨어지는 경우, 어떤 면이 바닥을 향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떨어지는 동안 토스트를 회전시키는 스핀에 의해 결정된다. 토스트를 회전시키는 힘을 물리학자들을 토크torque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 중력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로버트 매튜스는 보통의 식탁 높이나 사람의 손 높이에서 토스트를 떨어뜨릴 경우 토스트가 충분히 한 바퀴를 회전할 만큼 지구의 중력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간단한 계산으로 증명했다. 대부분 반 바퀴 정도를 돌고 바닥에 닿기 때문에 버터를 바른 면이 반드시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계산을 해 보면, 공기의 저항이나 얇은 버터층의 무게는 토스트의 회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버터 바른 면이 늘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머피의 법칙이 들어맞는 이유는 지구의 중력과 식탁의 마찰계수가 그럴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인간이 지금보다 훨씬 컸다면 그래서 충분히 높은 식탁에서 빵을 먹었다면, 토스트는 충분히 한 바퀴를 회전했을 것이고 버터 바른 면이 늘 위를 향해 떨어졌을 것이다. 하버트 대학교 천체물리학과 윌리엄 프레스William H. Press교수는 양쪽 발로 서서 생활하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서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키가 가장 적당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의 키는 중력이 우리를 당기고 있는 힘과 우리의 골격이 이루고 있는 화학적 결합이 평형을 이루면서 정해진다. 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빅뱅에 의해 결정된 우주 상수와 그것들로 결정된 지구의 역학적 특성이 인간의 키를 2m 안팎의 높이로 만들었고, 불행히도 그 때문에 '버터 바른 토스트'에 관한 머피의 법칙에 탄생하게 된 것이다. 버터 바른 식빵을 떨어뜨리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 우주가 인간에게 가혹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 글을 적으면서 생각나는 인터뷰가 있습니다.
  비디오 예술가 백남준씨가 한 말입니다.

  "가끔 한국의 일류 인사를 만나보면 나는 그들의 상식 부족 때문에 민망해 거북스러울 때가 많다. 1990년 유명한 문화정책자 한 분은 현대미술가 '앤디 워홀'의 이름을 몰랐고, 같은 해 나에게 현대미술품 수집에 관해 지도를 받고자 찾아온 재벌 부인 일곱 명中에서 '재스퍼 존스', '로젠퀴스트'의 이름을 아는 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수학과 물리학의 프랙털(fractal) 개념에 금시초문인 것도 당연하다."

  한국의 평균적 지식인들의 지식정보 부족을 지적한 이 말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한국이) 자연과학, 인문학, 예술 사이의 구분 자체가 없어진 채 굴러가는 지식의 무한게임에서 한참 뒤져 있다는 경고입니다.
  좀 겁나는 경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中에 보면 이 무서운 경고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오전에는 전화를 받지 말며
     하루를 부정적인 생각이나 상상 속의 고민으로 시작하지 말 것,
     돈을 버는 데 하루 온종일과 일 년을 몽땅 바치지 않을 것.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번역 중이던 류시화 시인이 그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얻은 생활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하루를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든가, 또 돈을 버는 일에 온종일과 일 년을 몽땅 바치지 않을 것 같은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느 곳을 향해 질주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씩 질주를 멈추고 고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일도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의 무한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입니다.

  몸이 조금 무겁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유진'과 '준상'과 '상혁'의 마지막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편안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밤 되세요.


댓글 '3'

세실

2002.04.18 00:11:29

토미님 이제야 연가 마지막을 보시네요. 토미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

운영2 현주

2002.04.18 00:58:16

전에 백남준씨를 가까이서 자주 뵌적이 있었지요....... 그분 참 특별했어요. 여름에도 긴옷을 입고 다니시고.겨울엔 한국에 거의 안오셨죠... 추워서요.. 언제나 따스한 미소로 늘 겸손하시구.... 전 그분의 작품보다는 그분의 성품을 참 좋아했었지요.. ^^ 옆길로 샌 얘기였군요..호호~ 토미님.세실님도 편안한 밤되세요....^^

앨피네

2002.04.18 10:15:55

좋은글 고맙습니다.. 유진 준상 상혁을 잘 보내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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