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비밀...

조회 수 3081 2002.08.13 00:02:25
토미
     나는 웃는 방법에 따라 그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보는 상대방의 웃는 얼굴이 기분을 좋게 해 주면,
     그 사람은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죄와 벌까지>中의 한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행동으로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슬프십니까? 그러면 억지로라도 웃어 보십시오.
  환한 미소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고, 웃으면 복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사서 밤을 새우며 읽은 일본 문학 100년 사상 최고의 국민작가로 칭송되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吾輩は猫である 上, 下>라는 책이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을 소개하자면...

  고양이란 동물은 보면 볼수록 신기합니다. 개란 동물이 어떻게든 주인에게 잘 보이려고 귀여움을 떠는 족속인 반면, 고양이란 족속은 우아하고 느린 걸음걸이,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 만사에 무관심해 보이는 신선과 같은 태도로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존재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오만한 제목이 붙은 이 책의 주인공 고양이 역시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름도 없이 길에 버려졌다가 오로지 살아보겠다고 병약한 선생의 집에 얹혀 사는 고양이 주제에 각종 책의 구절을 인용해가며 인간 세상만사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불만을 쏟아냅니다. 아니, 그건 불평불만이라기보다 인간이란 한심한 족속을 향해 내뱉는 고상한 존재의 한숨 섞인 한탄에 가깝습니다.

  그럼 이 고상한 고양이가 쓸 데 없는 사치를 부리는 인간에 대해 쏟아내는 한탄을 들어보시겠습니까... 음식이란 "날로 먹어도 되는 것을 일부러 삶아보기도 하고, 구워보기도 하고, 식초에 담궈보기도 하고, 된장을 찍어보기도 하고, 툭하면 쓸데없는 수고를 해가며 좋아한다."며 "머리카락이라는 것은 저절로 돋아나는 것이므로, 내버려두는 게 가장 간편하고 본인을 위한 것이 될 법도 한데, 그들은 쓸데없는 궁리를 하여 갖가지 잡다한 모양새를 만들어놓고선 폼을 낸다."는 것입니다. 또 발에 대해서는 "발이 네 개가 있는데도 두 개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사치다. 네 발로 걸으면 그만큼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언제나 두 발로만 걷고, 나머지 두 발은 선물 받은 말린 대구포처럼 하릴없이 드리우고 있는 건 우습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이란 족속에 대해 거침없이 이어가는 이 고상한 고양이의 요설饒舌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 속을 종횡무진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많은 부분을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줄을 치고 싶은 구절이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영특한 구절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또 나옵니다. 이 책의 화자인 '고양이'군의 요설饒舌은 거의 언어 유희의 경지라고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거 같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고양이의 주인과 그를 둘러싼 친구들의 모습이 걸작입니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그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고양이의 주인인 병약한 '구샤미'선생과 그 주위의 인간들은 소위 말하는 유약하고 우울하며 위선에 찬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 먹물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식한 속세인을 비웃으며 고대 희랍 철학부터 현대 유럽 철학에 이르는 각종 이론과 라틴어를 들먹거리며 설전을 벌입니다. 하지만 조금 들쳐보면 그들은 기껏 '개구리 눈알의 전동 작용에 대한 자외선의 영향'이라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개구리 눈알과 같은 유리알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루 종일 실험실에서 유리알이나 가는 족속에 불과합니다.

  참 그리고 이 책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책의 저자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더 유명합니다... 그는 일본이 가장 아끼는 '국민작가'중 한 사람입니다. 오죽 했으면 1000엔짜리 지폐에 떡 하니 얼굴이 새겨져있는 작가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나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와 같이 감각적인 글 쓰기를 하는 젊은 일본 작가들의 책이 한국에 잘 알려져 있고 꽤 팔려나가는 것에 비해 이렇듯 대단한 국민작가이며 근대 소설의 아버지라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작품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 소설은 작가의 묵직한 명성이나 이 작품이 일본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만 보더라도 예의상 한 번쯤 읽어줄 만한 소설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 100년 전인 1905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고양이군의 청산유수靑山流水 요설饒舌과 지식인 사회에 대한 풍자諷刺어린 묘사에 새롭고 신선한 에너지가 가득 차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에너지의 근원은 이 작품이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처녀작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인간이란 족속에 대해 끊임없는 요설을 뱉어내는 고양이지만 풍류 또한 잊지 않는 이 '쿨COOL'한 고양이가 맥주에 취해 비틀거리다 물 항아리에 빠져 죽을 때 남긴 말을 끝으로 전하며 글을 줄일까 합니다.

     "일월(日月)을 베어 떨어뜨리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평화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서 태평을 얻는다. 죽지 않고선 태평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마운지고, 고마운지고."

  책의 내용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릇 연애는 우주적인 활력이다.
     위로는 하늘에 계신 주피터로부터
     아래로는 땅속에서 우는 지렁이,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이 사랑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것이 만물의 습속인지라,
     우리 고양이들이 어스름이 좋아라고 불온한 풍류 기분을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닌 이야기다.

  인간사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인 고상한 고양이가 봄철 벚꽃 필 무렵, 멀리서 피리 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어스름에 한가롭게 앉아 사랑에 대해 논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본 순간,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어스름에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데 여기저기서 '야옹'거리는 고양이들이 떠오르면서 사랑에 대해 이보다 더 멋진 구절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고양이에게도 연애는 우주적 활력소'라고 말하는 이 고상한 고양이의 말처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는 이 땅에 땅 속의 지렁이에게까지 사랑은 우주적인 활력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활력의 에너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밤 공기가 차갑습니다.
  가디건을 꺼내 입었는데도 한기寒氣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기몸살이 오려는지 으실 으실 춥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일찍 자리에 누워야겠습니다.
  그럼... 모두 포근한 잠자리 맞이하세요.


댓글 '7'

이지연

2002.08.13 00:09:47

토미님 밤공기가 싸늘한 새벽입니다

이지연

2002.08.13 00:13:56

그래서일까요...따끈한 차 한잔이 그리고 그차향이 넘 그리운 밤이네요...대전은 오늘 하루종일 비가왔습니다 그래서 더 춥네요.... 혹 감기몸살이시면 따끈한 쌍화차가 좋을듯한데...대추넣고 잣까지 뜨운 쌍화차 아세요?

세실

2002.08.13 10:05:36

책소개 고마워요. 우리 시인 이장희는 '봄은 고양이로다'라고 했는데 일본 소설가 나쓰메소세키는 고양이의 눈으로 우리를 풍자하네요. 몸은 좀 나으셨는지...무라카미하루키는 소설보다 수필이 좋더군요. 행복한 한 주 되시길^^

김문형

2002.08.13 11:10:07

토미님. 오랜만에 댓글 답니다. 항상 토미님의 글이 그리웠답니다. 자주 뵙구요. 건강하세요.

바다보물

2002.08.13 11:53:15

요며칠 좋은생각을 많이 읽었습니다 구독기간이 끝났는데 다시 신청 할까 고민중 이에요 그냥 우리들 이야기인것이......나이탓인지 생각하며 읽어야하는 책은 멀기만 느껴지네요 추천해주신 에린브로코비치의 책은 아직 사지 못했구요 얼마전 그녀의 기사가 신문에 나왔던데....무슨일 때문인지 기억이 안나네요 아~ 티비에 무슨 프로를 맡는다는 것 같았는데...정말 대단한 사람인것 같네요 영화에서도 그리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것 같지는 않았는데.....좋은 하루 되세여

sunny지우

2002.08.13 16:53:02

토미님 ! 늘 감기기운에 약하신 것같아 안쓰럽군요. 저희 남편이그래요.(저희 남편은 만삭의 배를 소유하고 있답니다. 운동부족인 것 같아요. 토미님은 날씬하시죠?) 그리고 고양이가 풍자히는 인간상 중에 저도 한자리 있는 것 같아요. 부끄럽습니다. 늘 좋은책을 요약해 주셔서 감사해요.

코스모스

2002.08.13 20:23:15

웃음은 근심 걱정이 없는 마음의공간을 만들어 주고,소리내어 웃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를 못느낀다고 해요...토미님이 주신 선물 잘 읽고 갑니다..감기야~~제발 토미님을 괴롭히지 말어라....건강 조심하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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