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조회 수 3667 2002.08.19 23:57:37
토미
     우리 살아있는 날이면 날마다
     사랑할 수 있다면
     하늘에 조각구름 흘러
     대숲바람 따라 울어도 보고
     어둠이 내리는 세상
     어둠을 쪼면서
     아프게 견뎌내는 힘
     쌓겠습니다.

     그대 기쁨을 뿌리는 날
     기쁨의 밭으로 일렁이며
     아픔의 밭으로 쓰러지며
     그냥 그렇게
     그렇게 기두리겠습니다.

     우리 틔운 꽃싹들
     매양 향그러울 수야,
     조용히
     서로의 지친 어깨 위에
     손을 얹겠습니다.
     그대 밤하늘에
     별 하나 띄우겠습니다.

     우리 살아있는 날이면 날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산 높고 물 흘러
     순하고 작은 짐승으로 살아
     서로를 지피는
     빛이 되겠습니다.

  김용옥의 <우리 살아있는 날이면>이라는 제목의 詩를 서두書頭에 적어보았습니다.

  날이 궂어서 그런지 요즘은 사무실 창문 저 너머로 보이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들을 보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고궁古宮의 모습도 자주 보게 되고 말입니다.

  전에 읽은 책中에 우리나라 다섯 개의 궁궐들 사이사이에서 숨쉬고 있는 98종의 우리 수목樹木들을 관찰하고 또 그 관찰한 것들을 상큼한 컬러 사진에 나무에 대한 생물학적인 기본 지식, 거기에다가 고서를 뒤지며 찾아낸 句句節節구구절절한 사연까지 풀어내어서 적어놓은 책이 있습니다.

  먼저 책을 소개하자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비밀의 화원이 숨겨져 있습니다. 도심의 고궁엔 오래된 건축물만큼이나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책-'궁궐의 우리 나무'-를 읽고 있으면 고궁의 나무들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앵두나무는 "효자로 소문난 문종이 앵두를 좋아하는 아버지 세종을 위해 자기를 이곳에 심었다"고 책을 읽는 이들의 귓가에 비밀을 이야기하듯 조용히 털어놓습니다. 덕수궁 연못 근처에 서있는 오동나무는 "이보다 더 큰 잎사귀는 없다"며 화려한 사진으로 푸름을 뽐냅니다. 나이테에 숨겨진 말못할 사연부터 궁궐에 살던 옛 임금들의 취미까지... 고궁에 살고 있는 나무들의 구구한 사연만으로도 이 책은 읽는 이들에게 읽는 재미를 줍니다.

  '궁궐의 우리 나무'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덕수궁 등 5대 궁궐을 말없이 지켜온 우리 나무 98종의 역사와 생태를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박상진 경북대학교 임산공학과 교수는 "삶의 소용돌이에 지친 현대인들은 다정한 이웃으로 변함 없이 남아 있는 낯익은 나무에게조차 별다른 관심을 가져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멀리 갈 것 없이 도심의 궁궐에서 나무와 자연을 만나보자"고 책의 내용을 통하여 제안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꽃피우고 열매맺는 사연을 들어보고, 나무의 몸체를 쓰다듬어 보고, 뿌리등걸에 걸터앉아 따스한 체온도 느껴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마치 나무들의 대변자처럼 궁궐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이 긴 세월동안 보고 들었던 수많은 사연들을 속속들이 들려주고 있습니다.

  신라 최고의 미인 수로부인이 꺾어 달라던 철쭉 얘기...
  흐드러지게 핀 새하얀 배꽃 위로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걸린 밤에 시를 읊으며 여기에 술 한잔을 곁들이면 '주상첨화酒上添花'라는 얘기...
  옛날 중국의 '두양'이라는 사람의 부인이 남편이 심드렁할 때 자귀나무 꽃으로 담근 술을 먹였더니, 남편은 금세 풀어져 아내를 안았다는 부부의 금슬을 상징한다는 자귀나무 얘기...
  토사구팽의 '팽'을 닮았다는 팽나무 얘기...
  학자의 기개를 닮았다 해서 학자수學者樹로 일컬어진다는 회화나무 얘기...
  남북 분단이후 '우우'하고 울어댄다는 '영물靈物' 은행나무 얘기...
  이 꽃이 피면 동네 아가씨들이 바람을 피운다며 절대 집안에서는 심지 못한다는 명자나무 얘기...
  1992년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이 "이렇게 향기 좋은 나무를 하필이면 개오동이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자 북한에서는 '향오동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개오동나무 얘기...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각종 역사서는 물론 시인들이 남긴 나무를 소재로 한 시까지 인용하여 적고 있는 이 책은 정확한 식물학 정보들을 꼼꼼히 담아낸 자연과학도서인 동시에 역사와 문학까지 담긴 수준 높은 인문교양서 역할도 해 줍니다.
  게다가 저자는 이 책冊안에 궁궐 관람 동선을 따라 걸으며 나무를 관찰할 수 있도록 궁궐 전체 지도에 나무의 위치를 상세하게 표시해 놓고 있습니다. 잎·꽃·열매·줄기 등을 별도로 촬영한 사진과 목재로 만들어진 제품·문화재 자료도 실어 나무도감, 나무백과로서도 손색이 없도록 꾸며 놓기도 했습니다.

  내일은 날이 좋으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앞에 있는 고궁古宮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물론 책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럼... 편안한 쉼 되세요.

     장미나무가 된 가시나무

     골짜기에 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하루는 정원사가 오더니 그 가시나무 주위를 팠다.
     이 사람이 내가 쓸모 없는 가시나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원사는 정성스럽게 그 가시나무를 파내더니 장미꽃나무 사이에 심는 것이 아닌가!
     '어이쿠, 이 사람이 대단한 실수를 하고 있구나!
     나같이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나무를 이렇게 아름답고 값이 비싼 장미나무들 사이에
     심어놓다니...
     머지 않아, 내가 쓸모 없는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면 뽑아서 불에 던지겠지?'
     그런데 정원사가 이번에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어이쿠, 이제야 이 양반이 내가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았구나! 그러면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그 정원사는 그 가시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어?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다시 장미의 싹을 접붙이는 것이었다.
     '아, 나 같은 쓸모 없는 나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아, 저 정원사는 정말 고마운 분이야.'
     여름이 되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그 나무에도 피었다. 그것을 보면서 정원사가 말했다.

     "본래 너는 가시나무였으나 고귀한 장미를 접붙여 이제 장미나무가 되었으니
     아무도 너를 가시나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댓글 '8'

토토로

2002.08.20 00:57:31

토미님의 글을 읽고는 왜 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책이 생각이 나는지....하잘것 없는 것에도 자기의 마음을 주어 고귀하게 여긴다면 분면 그것은 고귀해 질것입니다.그분의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데,예전에 옥중에서 쓰신 글을 읽는적이 있습니다.왠지 오늘 토미님의 글은 그 시인을 떠오르게 하는군요.제가 그글을 참 감동을 느끼며 읽었거든요.

바다보물

2002.08.20 01:27:43

책 읽어주는 남자 토미님 혹 그동안 여자친구는 사귀셨는지요...만약에 토미님이 맘에 들어하는 여자분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토미님의 엄청난 독서량을 따라갈 여자분이 계실지...저희야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 소개도 많이 해주시고....그냥 궁금한 보물이였어요 실례가 됐다면 죄송해요

운영2 현주

2002.08.20 01:42:42

저는 토미님께서 지금까지 읽으신 책중에 가장 가슴에 남는 한권을 꼽으라 한다면 어떤 책을 꼽으실지가 궁금해요...^^ 나무얘기하니까 예전에 울남편이랑 데이트갔었던 광릉수목원이 생각나네요~ 요즘 휴식년제로 미리 신청해야만 들어갈수 있다던데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지금 막 나무 냄새가 풍기는듯해요..^^

토미

2002.08.20 03:51:54

토토로님... 그분의 이름이 기억은 나지 않는데, 예전에 옥중에서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 하신 그분... 혹, 신영복 교수님이 아니신 지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 쓰신 글 중에 '나무야 나무야'라는 글이 있거든요... 저도 님이 달아주신 답글을 읽고 있으려니 교수님의 글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그 분의 책中에 나오는 구절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럼. 쉬세요.

토미

2002.08.20 03:53:42

바다보물님... 여자친구라... 아직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아니 아직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이유가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망각의 생명체'라 시간이 가면 잊혀지겠지만 아직은 아닌 거 같습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그 사람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 사람과 헤어진 후에 주위에 있는 지인知人들과 부모님과 친척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만남을 가져보았지만... 공부한다는 핑계로, 또는 아직 한 사람을 책임질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물리쳐 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핑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져보는 핑계 말입니다...

토미

2002.08.20 03:54:03

그리고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셨는데 저는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는 지혜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솔직히 책은 조그마한 수고만 있다면 누구나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생각과 몸가짐은 독서讀書만 가지고는 가질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님께서 질문하신 것처럼 제가 맘에 들어하는 사람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대신 제가 많이 읽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있는 다른 좋은 면을 배우죠... 그럼. 쉬세요.

토미

2002.08.20 04:01:34

현주님... 솔직히 가장 가슴에 남는 한 권을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책은 제가 아직까지도 책의 내용 때문에 읽고 느낌을 적기가 어려운 성경聖經과 제가 가장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그 사람의 어머니가 주신 불경佛經입니다. 물론 두 권 모두 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님께서는 나무 이야기를 하니 남편 되시는 분과 같이 가신 광릉수목원이 기억이 나신다고 하시는데... 저는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성탄예배를 같이 드리고 그 사람과 같이 간 백양사가 생각이 납니다... 눈이 내려 하얀 신작로新作路... 길 왼쪽의 개울가에서 들리는 물소리... 길 오른쪽에 있는 비탈진 곳에서 눈의 무게에 눌려 잔뜩 휘어진 이름 모를 나무... 그리고 그 사람과 제가 지난 온 길에 남아 있는 발자국...

찔레꽃

2002.08.20 08:52:24

많이 아는 지식은 교만하게 만드는데...토미님의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지혜있는 사람이 좋다는 글을 읽구선 그동안 님의 글에서 느낀 느낌만큼이나 지혜로운 분이시네요.....정말그렇죠.. 지혜로운 생각과 몸가짐은 독서가 어느정도 영향은 주지만 독서만 가지고는 얻을 수 없다는 님의 글에 공감하며.. . 혹시 오시틴의 오만과 편견 읽어 보셨는지요? 전 이책을 꼬옥 울딸이 여고생이 되면 가장 우선순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거든요... 암튼 그리워 하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안고사는 토미님...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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