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조회 수 3652 2002.10.25 00:42:11
토미
  지난번에 올리다가 만 신영복 교수님의 저작著作 '나무야 나무야'中에 나오는 구절을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1995년 11월21일 <반구정과 압구정>

  파주에서 서쪽으로 시오리 임진강가에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세종조의 명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尨村) 황희(黃喜)정승의 정자입니다. 18년간의 영상직을 치사(致仕)하고 90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며 그의 노년을 보낸 곳입니다. 단풍철도 지난 초겨울이라 찾는 사람도 없어 한적하기가 500년전 그대로다 싶었습니다. 당신은 아마 똑같은 이름의 정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狎鷗亭)이 그것입니다. 압구정은 세조의 모신(謀臣)이던 한명회(韓明澮)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입니다. 반구정의 '伴'과 압구정의 '狎'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둘 다 '벗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정자는 다같이 노재상이 퇴은하여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입니다만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판이합니다. 반구정이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음에 반하여 압구정은 이미 그 자취마저 없어지고 현대아파트 72동 옆의 작은 표석으로 그 유허임을 가리키고 있을 따름입니다. 정자의 주인인 황희정승과 한명회의 일생만큼이나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상의 자리에 올랐던 재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사람은 언제나 명상(名相) 현상(賢相)의 이름으로 칭송되는가 하면 또 한 사람은 권신(權臣) 모신(謀臣)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종조의 찬란한 업적 뒤에는 언제나 황희정승의 보필이 있었으되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몽매하다고 할 만큼 눈에 뜨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는 물러나 임진강가에서 야인어부들과 구로(鷗鷺)를 길들일 때에도 그가 당대의 재상이었음을 아무도 몰랐을 정도였습니다.
  한명회는 그의 두 딸을 왕비로 들이고 정난공신 1등, 익대공신 1등 등 네 차례나 1등공신이 되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쿠데타와 모살과 옥사(獄事)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후에 신원되기는 하였지만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화를 입은 권력자였습니다.
  황희정승은 두문동에 은거하기도 하고 유배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원칙에 따라 진퇴했던 반면, 한명회는 스스로 실력자에게 나아가 그를 앞질러 헤아리고 처리해나간 모신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얼킨 일화도 판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황희정승의 집안 노비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그를 찾아와 서로 상대방의 잘못을 일러바치자 사내종에게도 '네 말이 옳다' 계집종에게도 '네 말이 옳다'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그 무정견을 나무라자 '부인의 말도 옳다'고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언언시시(言言是是)정승이라 불릴 정도로 그는 시(是)를 말하되 비(非)를 말하기를 삼가였고, 소절(小節)에 구애되기보다 대절(大節)을 지키는 재상이었다고 합니다.
  황희정승이 겸허하고 관후한 일화의 주인공으로 회자됨에 비하여 한명회에 관한 일화는 그와 정반대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이 강정(江亭)에 걸려있는 한명회의 靑春扶社稷 白首臥江湖라는 싯귀의 扶를 亡으로, 臥를 汚로 고쳐 써서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는 뜻으로 바꾸어버린 일화는 유명합니다. 사람들은 한명회가 대노하여 이를 찢어버렸다는 후일담까지 곁들여놓았습니다.
  2시간도 채 못되는 거리에 남아 있는 반구정과 압구정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물론 그 인품의 차이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황희가 문화통치기의 재상이었고, 한명회는 의정부중심의 합의제를 타파하고 강력한 왕권체제로 회귀하던 시기의 재상이라는 정치체제상의 차이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의 차이로 환원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권력의 창출 그 자체는 잠재적 역량의 계발과 무관하거나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라는 당신의 글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땅을 회복하고 노역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형태의 피라미드를 허물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우리가 맡기지 않더라도 어김없이 모든 것을 심판하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몫은 우리가 내려야할 오늘의 심판일 따름입니다.
  반구정과 압구정의 남아 있는 모습이 그대로 역사의 평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의 차이가 함의하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해체해야 할 피라미드는 과연 무엇인지 우리가 회복해야할 땅과 노동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압구정이 콘크리트 더미속 한 개의 작은 돌멩이로 왜소화되어 있음에 반하여, 반구정은 유유한 임진강가에서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고 있습니다.
  나는 바람 부는 반구정에 앉아서 임진강의 무심한 물길을 굽어보았습니다. 분단의 제거야말로 민족의 역량을 최대화하는 최선의 정치임을 이야기하는 듯 반구정은 오늘도 남북의 산천과 남북의 새들을 벗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나십니까...

  한국경제신문 문화부에서 종교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는 서화동이 쓴 <산중에서 길을 물었더니 : 우리 시대 큰스님 33인과의 만남>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중심이 딱 선 사람은 어떤 소리를 해도 홀리지 않지만,
     중심이 서지 않은 사람은 늘 망상 속에 있으니 걸리게 돼요.
     같은 꽃을 보고도 한숨지으며
     눈물 뿌리는 사람이 있고, 웃고 노래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노래하는 꽃, 눈물뿌리는 꽃이 따로 있나요?
     자기 마음을 중심으로 세계가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중심이 선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흔들림 없이 제 길을 갑니다. 우리가 다가오는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는 것은 중심이 서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 오시는 님들은 '중심이 선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잠깐 책을 소개하자면...

  산중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지금 자신이 너무 험준한 산을 넘고 있다고 생각되면... 그리고 자신이 이 산을 넘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면 차분한 마음으로 <산중에서 길을 물었더니>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다른 종교를 믿는 저의 마음에 화두話頭를 던집니다.

  마치 희망도, 고통도, 행복도 원인은 모두 저에게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온갖 유혹이 난무하고,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 미련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야망과 욕심을 가지고 사는 세상...

  대통령 아들의 부정축재, 700만 원의 카드 빚 때문에 6명의 여성을 연쇄살인, 3000만 원의 빚 때문에 모녀 투신 자살, 치매 증상이 있는 어머니를 제주도에 버린 자식, 300만 원에 거래되는 신생아, 신상 공개 뒤에도 줄지 않는 원조교제, 공인임을 망각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운 어느 시장……. 참 답답한 일이지만, 이것들이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게 있는 사건사고들입니다.

  아무리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들다해도 사람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정해져 있습니다. 이를 거스르면 금수보다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화엄경에 선용기심(善用其心·마음을 잘 쓰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마음을 잘 쓰면 평안해지고 세상도 평화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불교 경전에서 최고로 인정되는 화엄경의 큰 뜻이 마음 심(心) 자 하나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 세상이 극락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말이 가진 자들에게는 화두로 전해질 수 있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말 자체가 사치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있는 큰스님들의 선문답을 들어보면... 불교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부처님만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고, 설령 지금 힘들더라도 내생이 평안해진다고 합니다. 정말 마음 심(心) 자 하나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는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찾아 수행을 하다보면 이 세상이 각각의 생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니 늘 마음을 다스리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큰스님들께서 말씀하시는 욕심과 집착을 털어 낸 곳에 마음자리가 있다는 것, 이 세상 모든 것은 연결돼 있으며 자연과 나,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 분별하지 말고 상(相)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부유한 환경보다는 춥고 배고플 때 공부가 더 잘된다는 것, 공부는 젊은 시절에 해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하심(下心)해야 한다는 것 등도 우리가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할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날이 차갑습니다.
  이제 정말 군고구마와 붕어빵, 떡볶이가 맛있어지는 계절이 된 거 같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출장을 핑계를 대서라도 '러브레터(ラブレタ-)'의 촬영지인 오타루(小樽)에 있는 <운하 플라자>에 가 볼 생각입니다.
  집에 있는 동안 푹 빠져있었던 '이수영'이라는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그 곳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그럼... 쉬세요.


댓글 '6'

운영자 현주

2002.10.25 01:25:28

긴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갔습니다.. 잠들기 전에 읽으니 더욱 좋네요 아마 잠들면서 나는 나의 중심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다 잠들것같습니다.요즘 뉴스보기 겁날만큼 삭막한 마음들이 늘어가는거같아 씁쓸해집니다.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세상은 나만이 아닌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않는다면 정겨운 세상이 되지않을지.. 감기 조심해야할 계절이네요.. 토미님도 늘 건강하시기를...^^ 긴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우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sunny지우

2002.10.25 01:28:07

토미님 , 늦은시간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경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잠언에 무릇 지킬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마음 심(心)...마음의 선택에서 삶의 희노애락이 결정되겠지요? 늘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주시길 기도 한답니다.

바다보물

2002.10.25 06:01:55

토미님 중심이 선 사람은 어떤 소리를 해도 홀리지 않는다는 거.지금의 저에게 너무도 필요한 말같군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저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필수조건 인데.......항상 좋은 글 감사해요

코스

2002.10.25 07:09:38

사람은 누구나 다 조금씩 불완전하고 변덕스럽고,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고,선하기도하고 악하기도 하고,이중적인가하면 하면 다중적이기까지 한거 같애요.중심이 선 사람..시대의 흐름을 잘 섞여가며 자신만의 '의지력'을 잃지 않는다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토미님 자신으 ㄹ한번 돌아보게 하는 님의 글 잘 읽었어요.건강하세요.^^*

세실

2002.10.25 08:47:39

中心 마음을 가운데 둔다는 것 ...바람에 흔들리지않는 뿌리깊은 나무가 된다는 것 ...40이면 불혹이라 쉬울줄알았는데 ..끊임없이 나를 낮추고 때로 나를 버려야 그나마 무너지지않고 살 수 있네요. 한번씩 지칠 때 제게 토미님의 글이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 아세요? 고마운 토미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앨피네

2002.10.25 13:59:09

토미님 글을 오랫만에 정독했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감사드려요... 善用其心이 어구가 저에게 와닿는군요.. 오타루에 다녀오실까 하다구요?? 좋은 여행이 될거라 생각되네요... 좋은 오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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