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그 사람이 아프다...

조회 수 3079 2002.10.30 22:11:51
토미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은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넓게 펼쳐진 바다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아름다운 노래도, 가슴을 울리는 시도
     당신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여도 당신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를
     다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詩人 '김용택'이 엮은 시집詩集 <사랑 그대로의 사랑>中에 나오는 김은미님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詩입니다.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곁에, 제 안에 그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우연처럼, 필연처럼, 운명처럼, 섭리처럼, 그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詩를 옮겨 적고 있으니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후기 저작인 <사랑의 단상>입니다.

     '나는 가끔 그 사람이 아프다.'

  책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제가 아픈 것처럼 그 사람이 아픈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프다니? 누군가 그것은 말이 안 된다고, 아니 문법에 맞지 않는다고, 그래도 굳이 그 말을 해야겠으면, 그 사람이 저에게 어떻게 아픈지 설명해보라고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전 어쩌다 부주의로 환절기 독감에 걸려든 사람처럼 그 사람이 저에게 아픈 증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본질)이 들어 있는 가슴 왼쪽 부위가 따끔거리고, 그 사람(의 얼굴/像)이 들어 있는 머리 왼쪽 부위가 지끈지끈 짓눌리며, 그 사람(의 손)이 가끔 장난질치던 이마 가운데 부위가 뜨겁게 열이 나고.......

  "그 사람이 아프다"... 이 표현은 <사랑의 단상>의 저자인 프랑스의 문화기호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것입니다. '바르트'보다 먼저, 그렇게 표현한 사람은 프랑스의 사학자 '미슐레'입니다. '미슐레'는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미슐레' 이전에는 누군가 그런 식의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소설가이기도 한 '미슐레'가 신체 일부 중 어디가 '아프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에 시적 파격을 가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요즘 지극히 사적인 심정으로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표현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그 사람이 아픕니다. 그 사람이 너무 아파서 제가 죽을 거 같을 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아픈 한 저는 그 사람입니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그 사람을 끙끙 앓다가 결국은 도망을 치듯 먼 곳으로 자청해서 출장을 가버리기도 합니다. 먼 곳에서도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시름시름 그 사람을 앓지만, 돌아오면 계절이 바뀌어 있듯이 그 사람도 조금 나아져 있습니다. '바르트'나 '미슐레'의 표현을 통째로 현실로 체험하면서 깨달은 것은 제가 그 사람을 아파하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낫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인상깊은 구절이 꽤 많습니다.
  이것은 아마 著者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한 서양 고금의 여러 텍스트들에서 인용된 사랑의 구절들을 단상의 형식으로 정리, 조합해 놓은 지극한 글읽기의 산물인 탓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마음이다. ... 마음은 계속해서 내게 남아있는 것이며, 이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잊혀지지 않는'마음이다. 스스로에 의해 채워진 썰물의 잊혀지지 않는 마음(사랑하는 사람과 어린아이만이 잊혀지지 않는 마음을 갖고 있다).'

  --- page.79

  <난-널-사랑해> 에는 여러 가지 사교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난 사랑하지 않아요' '난 당신의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등등. 그러나 진짜 거절은 '대답 없음'이란 말이다. 나는 청원자로서뿐만 아니라 발화자로서도(적어도 그 의례적인 표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부인되기 때문에 더 확실히 취소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부인된 것은 내 부탁이 아닌, 내 실존의 마지막 수단인 내 언어이다. 내 부탁만 거절하는 것이라면, 나는 기다렸다 그것을 다시 시작하거나 재개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질문할 권리마저도 빼앗겨 버린 나는 영원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 page.202

  '김윤수'의 <아직도 나는 그대에게 가지 못합니다>中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있잖아요
     저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부터 꽉 껴안아요
     아이는 간지럽다고 하면서도 더 꼭 안으래요
     꼭 껴안고는 여기저기 뽀뽀를 해요
     그리고는 소곤거려요 "사랑해"
     아이는 못 들은 척 "뭐라고"
     있는 대로 소리쳐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아들이라고
     몇 번이나 대답해 주면 콧노래로 흥얼대며 할 일을 찾아요

     꾹 끌어안기가 제 특기래요

  아버지와 아들의 정겨운 모습이 그림처럼, 추억처럼 제 눈앞에 펼쳐집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까실까실한 수염이 제 볼을 찌르곤 하던 기억이 다시 살아납니다. 꾹 끌어안기. 천 번 만 번해도 좋은, 하면 할수록 더 아름답고 더 그리운, 가장 밀착된 사랑의 몸동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밤공기가 싸늘합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도록 손이 곱아집니다.
  그럼... 쉬세요.


댓글 '5'

김문형

2002.10.30 22:18:27

토미님. 자주 뵐수있어 참 좋네요. 저도 지금 녹차를 마시며 있어요. 감기가 독하다네요. 건강 하세요. 참 허리는 괜찮으신가요?

코스

2002.10.30 23:07:53

인생을 한권의 책이라는 비유를 해봅니다. 공들여 한장한장 넘기는 사람,아무렇지 않게 책장을 넘기는 사람, 한동안 같은 페이지만 펼쳐놓는사람,들 사이에 저는 어떤 페이지를 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토미님의 글이네요. 표현하는 사랑에 익숙치 못한 우리네들에게..스스로에 의해 채워진 썰물의 잊혀지지 않는 마음... 이부분이 마음에 와 닿는건 왜 일까요...토미님의 사랑의 글로써 우리의 마음을 살찌게 해주셔서 감사해요.저희들에게 주신거 보다 더 많이 즐거운 시간과 함께 행복하세요.^_^

바다보물

2002.10.31 00:39:53

토미님 휴가를 잘 보내시나요?휴가가 끝나더라도 가끔 이렇게 찾아주실거죠? 좋은 책 좋은 글 항상 고마워요 토미님도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달맞이꽃

2002.10.31 06:59:43

글에서 부모님 얘기가 자주 나오는걸 보면 굉장히 ,효자이신것 같아요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계신것 같고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실것 같고 ,,후후후 오늘도 ,님이 많이 궁굼해 지네요 ,후후후..좋은글 .항상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래요 ^**

세실

2002.10.31 10:45:07

토미님을 아프게하는 그 사람이 무지 부럽기도하고 안타깝기도하고 .... 생각해보면 한 때 나도 그사람이 아팠던 적이 있었네요. 강산이 두번 바뀌고 지금 그사람은 내게 아무런 아픔이 되지못하는데...토미님 조금 더 맘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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