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피네
꼭 삼성 미술관 선전하는 것같지만, 제 의도는 그것이 아니구고요..
마인드스페이스란 주제로 열리는 작품과 설명이 자세히 되어 있길래
스타지우 가족님들 감상하시라고 퍼왔어여.. ^^
저는 읽어보고 기간내에 시간 내서 호암갤러리에 가볼까 합니다. ^^
그럼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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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마인드 스페이스 mind space


■ 기 간 : 2003. 2.28(금) ∼ 5.18(일) / 80일간, 월요일 휴관


■ 장 소 : 호암갤러리


■ 출품작 : 작가 8명, 작품 15점



삼성미술관이 2003년 첫 전시로 소개하는 마인드 스페이스는 오래도록 현대미술이 간과해온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다.

전통적으로 종교적 감정의 피난처 또는 신앙의 세속적 형태로서의 역할을 대신해 온 미술은 20세기에 와서 그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의 죽음'이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물질로 환원시킨 과학적 세계관 아래서 미술이 더 이상 정신의 영역을 언급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성과 개념성을 천착해 온 모더니즘과 미술의 문화, 정치적 맥락화를 모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관통하면서 현대미술은 객관적 현실의 거울로서만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의식적 차원에서 정신성을 논의하는 일은 사라졌지만 전통적인 형식의 파괴나 무정형(Informel), 또는 재료의 물질성을 추구하는 행위 속에는 일종의 종교적 경험이 내재해 있다고 보여지며, 20세기의 조형적 발명품인 격자형태(grid)에서 조차 우리는 절대적 정신에 대한 지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신성 혹은 내면지향성의 추구가 미술의 본래적 특성 가운데 하나이며 작가들의 근원적인 관심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소외된 정신의 문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분열된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이 맞닿아 있는 지점인 '마음'에 관심을 기울인 전시다.

마음이란 물질과 정신의 중간 지점에서 육체와 영혼을 포괄하는 내면적 경험의 장이며 성찰과 관조를 통해 늘 가다듬고 응시되어야 할 부분이다.

마음을 일깨우는 일은 현대미술이 포기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오늘날처럼 우리의 모든 감각기관이 외부로만 향하고 있는 현실에서 내면세계를 지향하는 일은 존재의 균형감각과 전일성 획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정신과 육체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정신주의로의 복귀라기보다는 오히려 동양의 사상적 전통에 가깝게 다가간다.

오늘날 동양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물질문명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들 삶의 요소 요소에 스며들고 있다.

이번 전시의 참여작가들 상당수가 동양문화에 대해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들의 작품이 명상적이고 영적이면서 동시에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점은 이전의 형이상학적 이상을 추구하던 추상작품들과의 본질적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은 시각만이 아니라 후각, 촉각 등 감각적인 체험의 통로를 마련하고 물질로부터 상상력을 얻고 있으며, 육체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사색을 출발점으로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내면적 성찰과 사색, 집중, 생성과 소멸에 대한 관조, 해원, 치유, 마음의 평화 등을 키워드로 하는 이번 전시는 깨달음에 도달하는데 지식을 배제하는 선불교의 가르침처럼, 개념과 논리를 집적한 구체적인 이미지나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대부분 텅 빈 공간으로 제시된다.

결국 작품은 매개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할 뿐, 작품을 수용하고 해석하며 그로부터 뭔가를 이루어 내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

오늘날 예술작업이 이론을 시각화하는데 몰두해 있어서 예술의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릴 처지에 놓여 있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 어떠한 언어적 개념이나 철학 사조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매우 독자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예술로부터 기대하는 어떤 것을 충족시켜준다.

관객들은 스스로의 감각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작품을 대면하면서 그 안에서 묵상하고 휴식하면서 위안받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무제(붉은색 바탕 위에 검정색과 오렌지색),


1962, 캔버스에 유채, 175.5×168cm


ⓒ Mark Rothko / ARS, NewYork-SACK,Seoul,2003








러시아 이민자로서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마크 로스코는 당시 전쟁과 공황으로 황폐해진 불안의 시기를 동료 화가들과 더불어 추상적인 화면에 표현해 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가들이 행위의 궤적을 강조하는 표현주의를 추진하고 있을 때, 로스코는 단순한 색면 회화를 전개시켜 나갔다.

이번 전시의 도입은 로스코의 작품에서 비롯되는데 어둡고 중성적인 벽면은 전시 공간의 불필요한 조명을 조용히 흡수해 버리고 그 위에 걸린 그림들만이 그 내부로부터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다.

윤곽이 지워져 버린 단순한 사각형은 일견 바탕과 융합된 듯 보이지만, 바탕에 흡수되어 중력의 포로가 되는 대신, 끊임없이 공간 속을 부유하는 존재로 남는다.

부유하면서 빛을 발하는 존재 - 그것은 구체적이고 견고해 보이는 우리들의 삶이 무한하고 숭고한 우주의 질서 앞에서 실상은 지극히 유한한 것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일깨워 준다.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많은 이들이 슬픔과 혼돈, 안도감이 뒤범벅이 된 원초적인 감정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실존을 대면하고 그 비극 너머의 절대적인 영원 또는 숭고를 추구했던 작가의 고뇌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임스 터렐 (James Turrell)


보여진 것 사이


1991, 설치


ⓒPrivate Collection,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PaceWildenstein







빛이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자기의 복사물로서 우리의 시각활동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만 그 동안 그 자체가 주목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빛의 작가라고 알려진 제임스 터렐은 빛을 다른 대상을 조명하는 매체로서 만이 아니라, 독립된 물리적인 재료로서, 하나의 사물로서 인식한다.

빛으로 가득한 터렐의 공간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꿈 속에 있는 듯, 현실감에서 벗어나 무한하고 초월적인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빛에 대한 우리의 시각적 인식이 실제로 심리적인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밝기 속에서 우리의 홍채는 완전히 닫혀 있지만 조도가 낮아지면 홍채가 열리면서 우리들 눈으로부터 촉감과도 같은 감각이 흘러나와 빛을 만지듯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시각적 정보를 적게 가질수록, 즉 더 적은 양의 빛에 노출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인식과 감정의 기제는 더 활발해져서 훨씬 더 풍부하고 감성적이며 정신적인 경험에 도달하게 된다.

항공기 조종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십대부터 하늘을 비행했던 경험과 헌신적인 어머니의 교육은 터렐의 영적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퀘이커 교도로 성장한 그는 경배의 대상으로서 어떠한 상징물도 인정하지 않는 대신, "내면의 빛"을 맞아들이는 의식에 익숙해 있었다.

그의 작품은 직접적으로 종교적 의도를 내포하지 않으며 텅 빈 공간에서 관객은 스스로의 심리적 변화만을 지각하게 되지만, 무한한 빛을 주제로 하는 그의 모든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형이상학적 관심사가 개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애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무제


2001, 스테인레스, 래커칠, 152×122×34cm


Courtesy of Barbara Gladstone Gallery







대지의 모성을 느끼게 하는 애니쉬 카푸어의 조각 작품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여성적으로 보인다.

심연을 향한 입구처럼 붉고 깊이감이 있는 작품 <나의 몸 당신의 몸 II>(My Body Your Body II)는 통상적인 조각들이 수직적이고 견고하며 기념비적인 형태를 갖는데 비해 수평적이고, 연약하며 촉각적이다.

스스로  "나는 조각하는 화가다"라고 언급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조각은 반 조각적이며 회화적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은 유기체의 내부로 향하는 입구와도 같이 생명의 기원과 시작을 암시하고 붉은 색은 선혈을 상기시킨다.

또한 광택이 있는 붉은 원반형의 조각 <무제 Untitled>는 오목거울처럼 표면에 반영된 이미지들을 안으로 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텅 빈 신체의 임신'처럼 꽉 채워짐, 완전함의 경험과 텅 빔, 허상의 경험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현상을 이루어 낸다.

이처럼 하나의 접점에서 마주치는 상반된 가치들은 놀랍도록 큰 생명의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눈에 보이는 것과 미지의 것, 양과 음, 정신과 감각, 삶과 죽음처럼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상반된 힘에 대한 관심은 카푸어가 자신의 정신적 토양이라 할 수 있는 힌두교를 재발견하면서 비롯되었다.

인도인이지만 영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카푸어는 20대 후반에 고국을 방문하면서 이 세상에 편재한 신들과 물질, 그리고 색채를 재발견하게 되었고, 생성과 성장, 소멸의 자연현상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윤회를 믿는 힌두교 사상을 작품 속에 반영하였다.














볼프강 라이프 (Wolfgang Laib)


그 어딘가에-확신의 방


1997, 내부: 밀랍, 나무, 324×78-123×485cm


Installation: Carre d'ArtMusee d'art contemporain de Nimes, 1999


ⓒWolfgang Laib








볼프강 라이프의 작업은 재료가 곧 주제라 할 만큼 자연 속에서 채취한 재료들 -꽃가루와 쌀, 우유, 밀랍 등-을 가공하지 않은 채 그대로 제시하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그 모든 재료가 자연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공함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개입시키는 일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의 작업은 공들여서 재료를 얻는 과정 자체가 예술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밀랍의 방은 자연에 참여하고 그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가장 잘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꽃가루나 밀크 스톤, 쌀로 만든 작품들이 재료의 연약함 때문에 늘 관객과의 만남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에 비해 2톤 분량의 천연 밀랍으로 만든 방은 관객을 그 안으로 수용하여 자연의 선물인 향기와 빛과 따스함에 둘러싸여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세상에 주는 선물로서 2000년에 피레네 산맥의 작은 동굴에 완성한 밀랍의 방을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 모양은 입구가 좁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천연 동굴의 형태 또는 자궁의 형태를 닮았다.

동굴은 은신처이자 고요한 휴식의 공간이며 생명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라이프는 그 내부를 밀랍이라는 유기적인 재료로, '다른 행성에서 온 초월적인 재료'로 마감함으로써 신비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라이프의 작품은 너무나 연약하고 고귀해서 감히 만질 수 없는 자연의 산물에 대해, 풍성한 감각에 대해, 순수에 대해, 작가가 헌신한 시간과 우주의 시간에 대해 그리고 자연과 우리 마음의 상호작용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라니 마에스트로 (Lani Maestro)


요람


1996, 거즈, 노끈, 야자수 잎으로 엮은 매트


Photo: Paul Litherland, Courtesy of the artist







필리핀 출생으로 캐나다로 이주한 라니 마에스트로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근원적인 삶과 새로운 삶 사이의 긴장관계를 풀어내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마에스트로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하에서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친지들을 잃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은 이후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 끊임없이 그의 작품 속에서 반추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경험의 직시성과 현장성을 뛰어 넘는 풍부한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요람>(Cradle)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얇은 천으로 만든 모기장과 바닥 위의 매트, 그리고 공간 속에 모기장을 구축하려고 얽어 놓은 무수한 노끈들의 드로잉으로 구성된다.

모기장들과 그 사이로 난 복도는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경계가 희미한데, 이는 나와 타인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없애는 제스처이며 공간 속에서 우리의 신체가 경험하는 유목의 행로를 의미한다.

그 공간에 들어선 관객은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강요나 제재를 받지 않는데, 그것은 작품의 의미영역이 어느 한 군데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기억과 현재가 혼합된 이 설치공간은 과거 정의를 위해 싸우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헌정의 의미와 함께,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안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부드럽게 흔들리며 마치 엄마의 자장가를 들려주듯 부유하는 공간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위로의 감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 밍웨이 (Lee Mingwei)


편지쓰기 프로젝트(꿇어 앉는 방)


1998, 나무, 유리, 종이, 289.5×246.3×198cm


Courtesy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and YAGEO Art Foundation, Taipei








대만출신의 작가로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리 밍웨이는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 제시하는 대신, 예술가와 관객의 직접적인 만남과 상호작용을 작업의 핵심으로 추진하며 그 만남을 통해 관객은 내적 경험이나 각성에 도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그는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그리고 예술과 삶 사이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면서 예술활동이란 작가가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참여자(관객)의 내적 경험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믿고 그 신념을 실천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편지 쓰기 프로젝트(꿇어 앉는 방)The Letter Writing Project (Kneeling Booth)>는 작가가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이후, 생전에 미처 말로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쓰면서, 편지를 쓰는 행위가 얼마나 기억과 치유에 도움이 되는 행위인가를 깨닫고 구체화한 작업이다.

참여자들은 서거나(감사) 앉거나(통찰) 꿇어 앉는(용서) 행위 속에 깃든 수행의 의미를 선불교에서 빌어 온 이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이 그런 자세를 취하면서 마음 속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것을 타인들과 함께 읽으며 경험을 공유한다.

수신인이 없는 편지의 경우 불에 태워 무화시키는 의식을 별도로 행하는데,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과정은 마치 종교적인 행위처럼 (불교든 기독교든) 삶에 대한 우리의 각성과 고백을 이끌어 낸다.

참여자의 행위가 과연 예술적인 행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일상적인 행위마저도 리 밍웨이의 제안에 따라 제의적이고 미학적이며 정신적인 경험으로 거듭난다는 측면에서,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수자 (Kim Sooja)


바늘여인


1999-2000, 중국 상하이 퍼포먼스, 비디오 스틸








베니스, 상 파울로, 리용 등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대되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수자는 전통적인 천과 바느질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삶과 사회를 포용하는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이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던 그는 평면과 물질에 대한 관심을 천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추하면서 물감대신 바느질의 궤적을 따라 실과 바늘이 잇고 포용하는 파편들의 세계를 사유한다.

김수자에게 바느질 행위란 세상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상처 나고 결렬된 것을 보듬고 치유하는 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출품작인 <바늘 여인>(A Needle Woman)은 동경, 상하이, 델리, 뉴욕 등 환경이 전혀 다른 도시 한 가운데서 미동없이 서 있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작품이다.

지역의 성향에 따라 행인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의 존재는 스쳐 지나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관계 지을 뿐, 그 자신은 소외되고 사라져 간다.

전시장에서 정사각형의 공간 한 가운데 서서 4면에 투영된 비디오 이미지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작가의 뒷모습에 자신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느낌과 함께 스스로 치유의 바늘처럼 수 많은 인파들을 만나고 헤쳐 나가며 그들과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우순옥 (U Sunok)


따뜻한 벽


1996, 나무, 합판, 알루미늄, 전기패드, 종이, 조명


640×980×315cm, 동경국립근대미술관 설치장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바를 "없음"으로 할 것'을 목표로 작업에 임하는 우순옥의 작품세계는 대체적으로 지극히 간결하다.

그것은 텅 빈 공간에 대한 작가 개인의 환상과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보는 이의 정신세계를 풍부히 하고, 내면 깊숙한 곳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무언의 지침 역할을 한다.

작가는 비물질적이고 곧 사라져 없어질지도 모르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는 애정을 표현하면서 사라짐에 대한 애도 대신, 그것이 함께 했었던 긍정적인 만남의 순간을 기억하려 한다.

우순옥은 그간 한국의 전통 가옥이나, 곧 개조될 예정인 특정 공간을 기록하면서 본래의 장소가 가지고 있던 추억들을 은유적으로 재현해 내는 작업을 해 왔다.

그 작업들은 특히 과도한 개발과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그리고 과거를 쉽게 망각하는 한국 사회에 매우 유익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공간을 재현할 때, 작가는 그것이 물질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주로 텅 빈 공간인 채로 제시하는데, 대신 온기를 불어 넣는 장치를 고안하곤 했다.

삶이 함께 하는 공간은 온기를 머금고 있으며 삶의 기억은 언제나 따스했던 것으로 추억되기 때문에 작가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체온에 대한 기억으로 대체하면서 '따뜻한 벽'을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과 촉감을 교감하도록 하였다.



















댓글 '5'

김문형

2003.04.08 00:41:58

앨피네야.
아직 안자니?
아이들하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거 같구,
스타지우가족들과 함께 가볼까나?
근데 앨피네가 보여줘서 직접보면 어떨지....

앨피네

2003.04.08 00:50:29

문형언니 안주무시고 계세요?? ^^
전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잘거 같은데..
일안하고 이렇게 퍼다 나르고 있습니다. 히히..
여기에서 보는거하고 직접 가서 보는 것하고
느낌이 많이 틀릴꺼여요.. ^^
언제 시간 되면 다같이 가볼까요??
아이들이 보기가 좀 어렵다면, 현대미술관에 가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
암튼.. 좋은 하루하루되세요..

★벼리★

2003.04.08 02:25:55

우아씽.. 나 여기 가볼까나 했는데..쩝쩝..;;
언니 덕분에 사전답사도 하네..ㅋㅋ

달맞이꽃

2003.04.08 07:49:27

앨피네 .. 잘잤니?
후후후~~앨피네 덕분에 그림공부 열심히 하고 간다
이렇게 멋있고 고상한 거라면 아무리 퍼다 날라도 환영이라눈 ..ㅎㅎㅎㅎ그림에 대해 아는것 없지만 내 눈도 품격이 유지 될라믄 눈요기라도 자주 해야 되징 ㅎㅎㅎㅎ고맙다 ..좋은날 되고^*

드래곤^^

2003.04.08 16:44:09

언제나 미술관에 가면 생각나게 하는 제목이 있죠.."무제"항상 무제란 제목은 한곳을 차지 하고 있죠..여러분이 작품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기 힘들땐 무제라고 제목을 붙이세요..
전 학교 다닐때 많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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