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3] 녹차향

조회 수 3118 2003.05.17 08:52:21
소리샘
유진의 겨울연가.. (3)


작성일: 2002/10/01 02:31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일단.. 피하고 보자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계약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내가 빠지는 건 괜찮겠지..
그와 계속 만날 일이 없으면.. 다.. 괜찮아 질꺼야.
내 마음을 숨길 일도.. 상혁일 속일 일도.. 이젠 없을 테니까..
그와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저.. 세상엔 참 많이 닮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만 생각하면 돼..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스키장 공사 건에서 손을 떼겠다는 내 말에 정아 언닌 잠시 난감해 했다.
하지만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는 일은 가끔 있는 일이니까 그쪽에서도 별 문제 없을 꺼라 생각했다.
이유를 묻는 언니에게 그냥 못하겠다고 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언니와 승룡이가 스키장 공사를 맡기로 했다.
언니가 마르시안에 간 사이.. 난 조금은 불안해하며 사무실을 지켰다.
마르시안에서 돌아온 언니가 계약서를 흔들어 보였다.
후... 다행이다.. 잘 된 모양이다.
하지만 안심하기도 잠시..
점심 먹으러 간 자리에서 다른 때와는 달리 괜히 이것저것 챙겨주고 말도 많더니..
마르시안에서 내가 공사를 맡는 것을 계약 조건으로 달았단다.
당연히 언닌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난감했다..
그 조건으로 계약까지 한 마당에.. 못하겠다고 계속 고집을 부릴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프리젠테이션을 하기로 한 날..
아침 일찍부터 자료를 정리하고 또 확인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설명할 내용들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고.. 처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두렵기까지 했다.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날 보며 언닌 의아해 했다.
[유진아. 너 왜 그래?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늘상 니가 해 왔던 거잖아.
뭐가 그렇게 걱정돼? 계약도 했구만.. ]
[어.. 그냥.. 언니. 나 인제 가봐야겠다. 갔다 올게.. ]
[그래. 이따 끝나고 나서 전화나 한 통 해주구.. ]
[응. 알았어. ]

가는 내내..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흔들리지 말자..
그와 난.. 그저 일을 함께 할 뿐이다..
그는 그저 마르시안의 이사이고.. 이민형이고.. 채린이의 애인이야.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우린 일 관계로 만났고.. 난 맡은 일만 하면 되는 거야..
냉정해지자.. 정유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수하지 말고..

마르시안에 들어서기 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묘한 설레임..

유진아...
그의 음성이 귓가를 스치고.. 그의 환한 미소가 가슴을 쓸어 내린다.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쩔 수 없구나.. 정말..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거니..?
아니라고.. 피해야 한다고 그렇게 자신을 닦달하더니..
그래도.. 보고 싶었나 보구나..
너도 참.. 못 말리는 바보구나.. 정말..

프리젠테이션을 할 회의실에 먼저 들어가 마지막 점검을 했다.
조금 뒤.. 회의실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저번에 그에게 한 실수가 생각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후... 후....
표나지 않게 심호흡을 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진행하는 동안.. 그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잠깐 잠깐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릴 때면.. 그의 시선을 느꼈고..
그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고..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했던 어떤 프리젠테이션보다.. 몇 곱절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쉴새없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니.. 그냥 줄줄 외웠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간에 한번 흐트러지면 그 뒤에 할 내용을 모조리 잊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무사히 프리젠테이션을 마쳤다.
식은땀이 흘렀는지.. 등이 축축하다..

그에게 필요이상으로 딱딱하고 냉정해진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유진아.. 이렇게 불러 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게 불러달라고.. 애원이라도 할 것 같았다.

사람에게 이성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에게 쏠리는 마음을 감추고 밀어낼 수 있다는게.. 다행스러웠다.

그가 나에게 보이는 관심이.. 부담스럽고.. 한편으로 두렵기까지 했다.
그의 관심이란 게.. 그저 일 파트너에게 보이는 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와 가까워진다는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그에게 냉정할 수 있을 지..
그를 준상이와 착각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지도..
모든 게 자신이 없었다.

그의 식사제의를 단번에 거절하고 나와버렸다.

그는 이런 내가 이상했을 것이다.
살면서.. 나처럼 그를 경계하고 피하려드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의식적으로 그를 피하려드는 내 모습이.. 그에게 호기심을 불러왔고..
그래서 더 관심을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내 첫사랑과 닮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는 날 그저 측은하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시작했더라면..
어쩌면 그가 날 사랑하는 일도..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를 일을..
내가 애써 숨기려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 버린 건 아닐까..

그냥.. 우리 운명이었다고 생각하고 말까..

처음이 어떻든.. 결국 그와 난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다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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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님 글방 펌











소리샘 (2002-11-07 15:14:37)  

유진의 심정을 어쩜 이렇게 잘 그려 놓았는지
녹차향님 글에 녹아 있는 유진이의 마음이보이네요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 다 잡고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스럽군요
준상...민형...
그 이름 만으로도 심장이 또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감당할 수 없어  
정말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데
그래도 볼 수있어 좋으니 어쩜 좋을까  
  

댓글 '4'

달맞이꽃

2003.05.17 10:45:15

그러게요 .소리샘님 ~
이 음악만 드어도 한쪽 심장이 툭 덜어지는 아픔이 느껴 오네요 ..잠시라도 그들을 확인하고 싶어서 유진에 그림자를 준상이에 흔적을 찾느라 온밤을 하얗게 지새던 지난 겨울이 생각납니다..아주 조그만 흔적이라도 잡고 싶어서 얼마나 애태웠는지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지금은 슷로 마음을 달래줄 아는 자제력도 생기더군요 ..후후후~~~~~~소리샘님 ...고맙습니다 ..가슴은 시리지만 그들에 기억만으로도 매우 행복합니다 ...좋은주말 보내세요 ^*

★벼리★

2003.05.17 23:22:34

우와..정말..그때의 한장면한장면과..유진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게..만드는 글이네요..정말 겨울연가가..더 애절하게..느껴져요...

2003.05.17 23:50:51

소리샘님... 대단하시네요
겨울연가 왕팬이시군요
심장이 또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주면 행복하게 받으세요
피할수록 더욱더 안타깝기만 하답니다
두분으로 인하여 겨울연가 속으로 다시 들어간 느낌입니다
happy !

온유

2003.05.18 17:20:42

저도 연가에 푹 빠져서 그 밖으로 나오기가
그렇게 힘들었는데............녹차향님의 글속에
유진이가 그 속에서 다 드러내지 못했던 애절한 마음들이 그대로 묻어 나오네요.아 연가여~~~
당신들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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