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작성일: 2002/07/12 02:46
작성자: 녹차향(ippnii76)


거의 일주일만에 학교에 간다.
가방을 챙기며.. 돌덩이가 얹혀있는 듯 무거운 마음을 애써 추수렸다.
만원버스에서 시달릴 엄두가 나지 않아.. 평소보다 훨씬 일찍 나섰다.
언제나 뛰어내려가던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한산한 버스 안..
버스에 오르자마자.. 어쩔수 없이 눈길이 뒷좌석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텅.. 비어있는 뒷좌석..
중간 쯤에 손잡일 잡고서서.. 뒷좌석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곧 멍하니 뒷좌석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이 나온다.
준상이와의 첫 만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혀 잠을 깬 날.. 멀뚱하게 날 쳐다보던 준상이의 얼굴..
천천히.. 뒷좌석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자리였던 왼쪽 창가에 앉았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기댄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가끔씩.. 비어있는 옆자리를.. 확인하면서...

이제 난.. 버스에서 잠드는 일 따윈.. 절대 없을꺼야..
눈물이 툭.. 떨어진다.
누군가 날 깨우는 일 따윈.. 다신 없을꺼야..
아무도.. 너 대신.. 날 깨우진 못할꺼야..

버스에서 내렸다.
학교가 가까워지면서..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두려움... 학교에 간다는게.. 웬지 무서워진다.
입술을 깨물고.. 발걸음을 빨리한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바닥만 쳐다보고 걸었다.
교문..
교문에 들어섰을 때.. 난.. 내가 느낀 두려움이 뭔지 깨달았다.
멍하니 교문앞에 서서.. 학교를 바라보았다.
날 스쳐지나며 바쁘게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
나무.. 건물들.. 내리쬐는 햇살까지..
모든게 그대로다..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이거 였구나..
한 사람쯤 사라져도.. 금세.. 그 자린 묻혀 버린다는 거..
그래서.. 곧..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는 거..
그런데.. 난.. 그럴 수 없다는 게.. 그게.. 두려웠던거야.
나 혼자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게.. 그게 무서웠던 거야..

학교 뒷편 그늘 진 곳에.. 쭈그려 앉았다.
팔에 얼굴을 묻었다.
어떡하지..? 교실에 들어갈.. 용기기 안나..
그 곳 조차도.. 널 기억하지 않고 있으면.. 어떡하지..?
네가 없어졌는데.. 그런데도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는게.. 견디기 힘들어.
아무리 찾아도 널.. 볼수 없고.. 네 목소리 들을 수 없다는게.. 무서워..
준상아.. 나 어떡하지..?
나 좀 잡아줘.. 여기서 도망치지 않도록.. 나 좀 잡아줘.. 준상아..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종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으로 연신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랐다.
교실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더 뛴다.
제발.. 예전 그대로가 아니기를.. 조금이라도.. 달라져 있기를..
문을 열었다.
웅성웅성거리는 아이들 소리..
잠깐 나를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하는 아이들 모습..
한 순간.. 모든게 낯설게 느껴진다.
비어있는 준상이 자리..
그 것만이.. 이곳에 준상이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유진아..!
진숙이가 달려와 내 손을 덥석 잡는다.
유진아.. 이제 괜찮아..?
진숙인 눈물까지 글썽인다.
진숙아.. 나.. 괜찮아..
많이 아팠지..? 저번에 갔을 때.. 너 막 헛소리도 하더라..
정말.. 이제 나은거야?
그래.. 진숙아.. 고마워..
날 차갑게 쏘아버던 채린인..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후.. 가느다란 한숨이 삐져나온다.
상혁인...?
상혁인 굳은 얼굴로.. 책만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상혁이에게 갔다.
상혁아...
이제 괜찮니..?
상혁인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한마디 툭 던진다.
응..? 어...
너 우리집에 왔었다며.. 고맙다구..
아냐.. 뭘.. 수업시간 다 됐어.
어..? 어.. 그래..
복잡한 기분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왜.. 상혁이가 화가 났을까...?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계속되는 수업..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대답하는 소리만.. 커다랗게.. 귓가를 울린다.
..... 무슨 내용인지 알겠지?
네...
아이들 목소리 속에서.. 순간.. 준상이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얼른.. 준상이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는 비어있을 뿐이다.
심장이 쿵쿵 뛴다.
내가.. 왜 이러지..? 자꾸.. 준상이 목소리가 들려..
아니야.. 준상인 죽었잖아..? 이제 준상이는.. 없어..
볼펜을 꽉 쥐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필기를 한다.
이를 악물고.. 아무소리도 들릴 틈도 없이..
유진아.. 너 지금 뭐하는거야..?
옆에서 진숙이가 낮게 속삭인다.
어..?
너 지금 뭐쓰고 있냐구..
노트를 쳐다보았다.
엉망이다.
볼펜에 너무 힘을 줘서.. 글씨 쓴 곳이 깊이 패여있다.
같은 내용이 몇번씩이나 써있다.
너.. 괜찮아..?
볼펜을 툭.. 떨어뜨렸다.
손가락이 욱신욱신 쑤신다..

눈물이 고인다.
나가고 싶어..
교실에서.. 아니 학교에서.. 나가고 싶어..
나..너무 힘들어.. 준상아..
나 혼자만.. 달라졌나봐..
나 혼자만.. 니가 없다는 걸.. 알고 있나봐..
다들.. 다 잊어버렸나봐..
니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 조차도.. 다 잊어버렸나봐..
왜 다들.. 똑같지..?
니가 있었을 때나.. 니가 없는 지금이나.. 왜 다들 똑같은 거니..?
시간이 지나면.. 나도 그렇게 될까..?
다른 아이들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될까..?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널.. 기억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정말.. 내가 널 잊어버리게 되면.. 그럼.. 어떡하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낯선 느낌에..
그리고.. 참기 힘든 그리움에..
난.. 물먹은 솜처럼.. 지쳐버렸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교실을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빨리.. 학교에서 나가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유진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상혁이가 뛰어온다.
상혁아..
상혁인 가뿐 숨을 내쉰다.
후.. 유진아.. 잠깐.. 얘기 좀 하자..

벤치에 앉았다.
무슨.. 얘긴데..?
유진아.. 저기.. 아까는 미안했어. 너한테.. 화 낸거..
아냐..
나.. 너한테 화난거 아냐.. 나한테 화가나서 그런거야..
상혁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상혁인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너.. 준상이 보내고.. 그렇게 슬퍼하고.. 아프기까지 하는 거.. 너무 속상했다..
그만큼.. 니가 준상일 좋아했다는 거니까..
준상이 이름을 듣자.. 다시 가슴이 아파온다.
상혁아.. 준상이 얘기.. 하지 말자..
하지만 상혁인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질투가 났었나봐..
순간.. 준상이 녀석이 너무 부럽고.. 미웠어..
후.. 바보같지..? 죽은 녀석이나 질투하고 있다니..
그런 내가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났었어..
그런데.. 괜히 너한테 화풀이나 하고... 미안하다. 유진아..

후... 상혁아.. 그만 하자.. 나.. 너무.. 힘들어..
힘없이 일어섰다.
나 먼저 갈께.. 미안해..

유진아..
난.. 안될까..?
상혁아.. 제발..
너 힘들 때.. 내가 곁에 있어주면 안되겠니?
준상이 대신.. 내가 널 지켜주면 안되는거니?
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못들은 것 마냥..그대로 걸었다.

상혁아.. 제발.. 그러지마..
나..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준상이 하나 만으로도.. 난.. 죽을 만큼 힘들어.. 상혁아.
그냥.. 이대로 놔두면 안되겠니..?
제발.. 날 그냥 놔둬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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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펌











댓글 '3'

★벼리★

2003.06.26 22:55:17

유진이가 이렇게..힘들었겠네요..
그런 유진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뚝~ 떨어져요..

소리샘님 늘 감사드려요..

운영자 현주

2003.06.26 23:13:32

한동안 버스만 타면 맨 뒷자석에 앉고는 했었지요.. 요즘은 안그러지만......^^ 근데 유진인 어떻게 그 교실에서 공부를 할수 있었을지.....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픈데.. 녹차향님이 잘 표현해주셨네요..
소리샘님..오늘도 조은 하루 보내셨지요? ^^ 내일도 기대할께요....^^

달맞이꽃

2003.06.27 14:29:16

현주씨도 그랬나요 ?
후후후후~~난 유진이처럼 따라도 해 봤는데 바람에 휘 날리던 긴 머리는 아니여서 아쉬웠지만 느낌 만은 같을려고 안간 힘을 썼지요 ㅎㅎㅎ멋진 준사이 대신 울달이 대신 했지만 즐거웠어요 ㅎㅎㅎ차멀미도 쪼깨 났지만 참을수 있었답니다 ..비가 많이 오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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