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6]

조회 수 3045 2003.06.30 15:51:04
소리샘
작성일: 2002/07/15 04:02
작성자: 녹차향(ippnii76)


방학이 되고.. 하루종일 잠을 잤다.
몇년 같았던 몇주 동안의 학교생활의 피로를 걷어내려는 듯.. 자고 또 잤다..
눈을 뜬 건 새벽 두시가 넘어서였다.
머리가 아프다..
침대맡에 기대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모든 생각이 정지된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이 말만 입안에서 반복되어 맴돈다.

무기력증에라도 걸린걸까..?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가 귀찮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버티고 앉아있을 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갑자기 허기가 진다.
그러고 보니 자는 동안 몇번이나 밥 먹으라며 깨우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천천히 방을 나왔다.
부엌에 들어가 밥통에서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몇가지 반찬을 꺼냈다.
밥에 찬물을 부었다.
입안이 깔깔해서 도저히 맨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수저를 들고 한숟갈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리고 헛웃음이 난다.
이렇게 우스운 일이 다 있구나..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에.. 배고파서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 꼴이라니..
그동안.. 배가 고팠던 적이 있었나...
엄마의 성화에.. 친구들 성화에.. 그냥 무의식적으로 수저를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배가 고프다.
예전처럼.. 먹을 때가 지나니 배가 고파진다.
그릇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래도 밥을 퍼서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엄마...
옛날.. 아빠가 돌아가시고나서 한동안 음식에 손을 안대던 엄마가..
어느 날 밤에 혼자 상을 차리고 밥을 드시던 생각이 난다.
흐느껴 울면서 밥을 드시던 엄마..
엄마가 왜 저럴까.. 그땐 밥을 먹으면서 왜 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엄마가 밥을 드시니 다행이다.. 이렇게만 생각했었다.
이제야 엄마가 그때 왜 우셨는지 알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따라 죽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는 고파지고..
살겠다고 이렇게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죄스러웠을까..
나도 이런데.. 아빠를 보낸 엄마심정은 더했겠지..

식탁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왔다.
책상 앞에 앉았다.
뭘 해야할지 몰라 잠시 책꽃이를 훝어보다가 서랍 밑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준상이 얼굴을 그린 면을 들추려다.. 이내 덮어버렸다.
준상이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마치 준상이를 배신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유진이 너.. 이젠 내가 죽었다는 게.. 슬프지 않은 모양이구나..
내가 없어도.. 이제 너 아무렇지도 않은거구나.. 그런거지..?
준상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난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준상아..
슬프지 않아서가 아냐.. 어떻게 내가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어..
네가 없는데.. 네가 죽었다는데.. 어떻게 내가..
눈물이 핑.. 돈다.

근데 있지.. 준상아..
이상하지..? 나.. 벌써 익숙해졌나봐..
니가 없는 이 세상에.. 벌써 익숙해졌나봐.
니가 없으면.. 나.. 살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
그냥.. 이렇게 살아지나봐..
때가되면 배가 고프고.. 또 때가 되면 졸립고..
이렇게 하루하루가 가면서.. 점점 무뎌지나봐..
다들.. 그렇게 하나씩 잊어가며.. 사는 걸까..?
준상아..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네가 생각나도 가슴이 아프지 않고..
그러다.. 네가 생각나지 않는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두려워.. 준상아..
다시는 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렵고..
시간이 지나면.. 네가 보고 싶어지지 않을까 봐.. 두려워..
널.. 잊어버릴까봐.. 너무 두려워..

내일이면 개학날이다.
날이 밝자마자 외출할 준비를 했다.
아침을 준비하러 나오신 엄마가 내방 문을 연다.
유진아. 너 아침부터 어디 가려고 그래?
어.. 잠깐 바람 쐬러..
그래도 밥은 먹고가야지.
아냐.. 괜찮아. 나가서 이따 사먹을께.
갔다 올께요. 엄마.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어디에 가려고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냥 이대로 학교에 갈 수는 없었다.
뭔가 단단한 결심이 필요했다.
이런 맘으로 학교에 갔다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 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어디행 인지도 모른채.. 그냥 버스가 가는 대로 앉아있었다.
한참을 그냥 앉아있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수...?
아.. 호수로 가는 버스였구나..
잠깐 망설이다가 버스에서 내렸다.
준상일 보내고.. 애써 외면했던 곳..
하루에도 몇번씩 생각나는 곳이었지만.. 차마 올 수가 없었지..
준상이를 보낸 곳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 펌











댓글 '1'

달맞이꽃

2003.06.30 20:04:26

소리샘님 ..
하루 걸려 비가 오니 온 집안이 근적 거리고 습하네요 ..반짝 햇님이 얼굴을 내 밀때 얼른 빨래며 이불이며 옥상에 널고 나니 기분도 상쾌하니 좋은데요 .후후후~~~이심전심 올려주신 겨울연가 씨디도 들으면서 바쁘면서도 한가한 오후를 맞이하고 있담니다 .지금은 초 저녁 ..저녁은 드셨는지요 ..언제고 유진이를 준상이를 만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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