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김용호 기자>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그동안 닫혀있던 한, 일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졌다. 그 중 대표적인 기획이 한일 합작 드라마이다. 그 첫번째는 일본 TBS와 한국 MBC가 함께 제작한 ‘프렌즈’이다. 이는 처음으로 한일 양국에서 방송돼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MBC는 일본 후지TV와 합작으로 ‘소나기 비 갠 오후’ 그리고 ‘
별의 소리’를 제작, 방송했다.
한일 대중문화 평론서 ‘한국을 소비하는 일본-한류, 여성, 드라마’을 쓴 히라타 유키에는 이런 한일 합작 드라마들이 일종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 합작 드라마는 모두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와 관련이 깊다. 즉 양국간의 외교적 역사적 갈등이 깊이 반영된 것이다”며 각 드라마들의 인물설정의 전형성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프렌즈’의 두 주인공 지훈(원빈)과 토모코(후카다 쿄코)를 보면, 지훈은 확고한 꿈을 가진 열정적인 청년임에 비해, 토모코는 인생의 목표도 특별한 꿈도 없는 정체성이 불확실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는 ‘소나기 비 낸 오후’의 대진(지진희)와 치즈루(오네쿠라 료코)도 비슷하다. 독립적인 여성인줄 알았던 치즈루는 한국에 와서 대진을 만남으로 해서 바로 그에게 종속된다. 이는 ‘별의 소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곡가 지망생인 성재(조현재)는 제주도에서 관광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여행 온 미사키(
나카고시 노리코)를 만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도 일본 여성인 미사키는 후회와 죄를 안고 사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그것을 극복하고 용서를 해주는 존재는 한국 남자인 성재이다.
아직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의 정서는 한국 여성이 일본 남자들에게 종속되어서 사랑하는 모습을 포용하지 못한다. 이는 얼마 전 화제가 된 서울 홍익대 앞 외국인 남자들과 한국 여성들의 파티 장면에 과격하게 반응한 네티즌들의 움직임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한국 남성들의 일본 여성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한일 우호를 위해 제작된 이런 드라마들은 굳이 한일 양국의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기획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 배우 유민과 초난강으로 알려진 쿠사나기 츠요시가 다소 어수룩한 그리고 코믹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이유에서도 한번 확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도 한국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 남자들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일본 여자들에 대한 환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맞춘 것이다.
본격적인 한류 붐이 일어나고 배용준, 류시원, 권상우, 송승헌 같은 한국 배우들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하지만, 대표적인 ‘겨울연가’의 히로인 최지우를 제외하고는 한류 남성들의 파트너는 일본에서 그다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반대로 일본에서 한국 여성을 소비하는 패턴이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류 이전 일찌감치 윤손하는 일본에 진출, ‘다시 한번 키스’, ‘
파이팅 걸’ 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오고 있다. 하지만, 가수로 활동하는 보아가 무국적성을 앞세우는 것에 비해 윤손하는 전형적인 ‘한국여성’으로만 그 역할을 한정시키고 있다. 이는 일본 드라마 ‘결혼의 조건’에 출연했던 김윤경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드라마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한국 여성들의 역할이 아직까지 일본인들의 삶과 어울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것은 일본 여성들이 한국 남자배우들에게서 특별한 매력을 찾고 있는 반면, 일본 남성들이 한국 여배우들에게 열광하고 있지 않는 이유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반전되고 있다. 일단 일본 남성들의 한국 진출이 적극화되고 있다. 강한 남성성을 내세우는 카리스마넘치는 가수 각트가 계속해서 한국에서 프로모션을 취하고 있고, 키무라 타쿠야를 중심으로
타케노우치 유타카 등의 일본배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는 소지섭, 김정은과 함께 일본배우
오사와 타카오가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본 남성이 소비되기 시작한 만큼, 한국 여배우들의 일본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손예진이 적극적인 일본 프로모션을 시작하며 큰 반응을 얻었다. 최지우는 처음으로 일본의 연속 드라마에 출연해 타케노우치 유타카와 호흡을 맞춘다. 오는 11월부터 촬영에 들어가 내년 3월 일본TBS 방송을 통해 방영될 예정인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우에다 히로키 PD는 “기존의 한류드라마를 따라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밝혔다.
한류가 일본에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고, 한국 배우들과 일본 배우들과의 교감이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최지우의 일본 드라마 출연은 의미 있게 지켜볼 수 있다. 더구나 상대배우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일본 남자배우 중 한명인 타케노우치 유타카이다. 이번 기회로 기존의 한일 합작 드라마들이 묘사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들의 캐릭터의 정형성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이 일상성을 확보할 수 있을 때 한국의 문화교류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보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양국의 어두웠던 역사를 넘어서 현실을 아우를 수 있는 팬들의 여유로운 시선을 기대해본다. (사진설명=한일 합작 드라마 '프렌즈','소나기 비 갠 오후', '별의 소리'(사진 제공=MBC),일본에서 활동하는 윤손하>
yhkim@newsen.co.kr
손에 잡히는 뉴스, 눈에 보이는 뉴스(www.newsen.co.kr)
copyrightⓒ 뉴스엔.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