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12] 녹차향

조회 수 3037 2003.05.29 12:32:41
소리샘
"wheel of fortune"..?

참내.. 운명의 남자는 무슨....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구든 걱정이라도 하고 있는 얼굴이면 버릇처럼 카드를 펼쳐놓는 언니의 못 말리는 취미..
오늘은 내 걱정거릴 맞추겠다며 또 카드를 뽑게 했다.
[어? 연애카드네? 너 김반장님 걱정하는 거 아니었구나? ]
풋.. 언니말 들은 내가 바보지..
언닌 그 답이라고 나보고 갖든지 내 운명의 남자한테 주든지 하라며 나머지 카드 한 장을 주고 갔다.
카드를 다이어리에 대충 끼워 넣고 방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네..?
김반장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해고를 철회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후....

현장에 도착하니 김차장님이 먼저 나와 있었다.
[아참. 소식 들었어요? 김반장님 해고 건 철회된 거... ]
[네? ]
[이민형 이사가 아까 서울 올라가기 전에 처리하고 갔어요. 앞으로 관리 잘해요. ]
김차장님은 소식만 전해주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해고 건이 철회된 건 정말 고마운 일인데.. 왠지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
어제.. 내가 너무 말이 심했던 건 아닌가..
그를 비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몰아 부쳤던 것이 맘에 걸린다.

아저씨가 계신 숙소로 찾아갔다.
아저씬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계셨다.
얼마나 담배를 피셨는지.. 앞에 놓인 깡통 한 개가 담배꽁초로 가득하다.
[아저씨. ]
[어? 왔어..? 휴.. 미안혀.. ]
[아저씨... 저기.. ]
[그려. 인자 짐 싸야지.. 유진이 너한테 미안하게 됐다. ]
[훗.. 짐 안 싸셔도 돼요. 아저씨 해고 안됐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또 술 드시고 밖에서 잠들고 그러심 안돼요?
그땐 제가 먼저 아저씨 해고 할 꺼라구요. 약속하실꺼죠? ]
[어? 정말여? .... 헛헛.. ]
곧 아저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 고마워.. 그럼 그럼.. 다신 이런 일 없을껴.. 약속한다니께? ]
[그럼 됐어요.. 오늘까진 푹 쉬시구요.. 내일부터 다시 일하세요. ]
[아녀. 인자 말짱허다구. ]
[제가 하자는 대로하세요. 오늘까진 쉬시는 거에요? 저 그만 갈께요. ]
옷을 챙겨 입으시는 아저씰 만류하고 숙소를 나왔다.
기뻐하시는 아저씰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런데.. 하루종일 왠지 맘이 허전하다.
꼭 있어야 할 사람이.. 한 사람 없는 것처럼..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참내.. 이런 기분은 또 뭐람..?
그런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일만 하자고 맘먹은 지가 언제라고..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서 의식적으로 피할 땐 언제고..
아저씨의 해고 건을 철회해 준 것 하나로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이 한풀 누그러진 건가..?  
여전히 복잡하지만.. 그래도 여지껏 어느 날보단 한결 밝은 기분으로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막 뒷정리를 끝내려는 데 상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상혁아. ]
[지금 뭐해? ]
[응.. 지금 막 일 끝났어. 근데 너 지금 방송할 시간 아냐? ]
[훗.. 지금 나 어딘지 알아? ]
[어딘데? ]
[너 지금 있는 곳. ]
[뭐? ]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만치서 상혁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어떻게 온 거야? ]
[유능한 DJ랑 일하는 사람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훗. ]
[치.. 너 이렇게 땡땡이 치다간 금방 짤릴꺼다. ]
[하하.. 짤리면 니가 나 먹여 살리면 되지 뭐.
근데 말이야.. 난 너 너무 보고 싶어서 이렇게 달려왔는데..
넌 나한테 보고 싶었단 소리도 안 해주네? ]
[그래. 너무 너무 보고 싶었다. 됐지? 가자. ]

언니와 같이 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언닌 김차장님의 전화를 받더니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어디가? ]
[야. 상혁이 눈치 보여서 어디 앉아있겠냐?
난 외로운 사람들끼리 술이나 한 잔 하러 갈랜다. 둘이 오붓하게 보내라. 간다. ]
[누나! 천천히 놀다 와요. 하하. ]
[의그.. 그래. 그냥 밤새고 오마. ]
언닌 상혁이를 살짝 흘겨보며 방을 나갔다.

이런 저런 얘길 나누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난가? 천천히 오랬더니 빨리도 온다. 우리끼리 있는 게 배 아팠나 봐? ]
상혁이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상혁인 문 앞에 그대로 서서 누구와 얘길 나누는 것 같았다.
누구지? 언니가 아닌가?
[상혁아. 누구야? ]
뜻밖에도 문 앞엔 이민형씨가 서 있었다.
[유진이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
[아뇨.. 일 얘긴데.. 나중에 하죠. 그럼.. ]

좀.. 이상했다.
서울에 갔다고 했는데.. 갑자기 밤에 날 찾아오다니..
밤에 얘기해야 할 만큼 급한 일도 없을 텐데... 무슨 일이지..?
얼굴빛도 좋지 않아 보이던데...

[유진아. 저 사람.. 밤에 가끔 이렇게 찾아오니? ]
[응? 아니..? 일 얘기 라잖아. 뭐 급한 일이 있었나보지 뭐. ]
[그래..? ]
상혁인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바꾸려고 목소릴 밝게 높였다.
[근데.. 너 방 잡은 거 확실하지? 너 혹시 방 값 아껴보려구 여기서 잔다는 거 아니지? ]
[훗. 그럼 안 되냐? 오늘밤만이라도 같이 있으면 안될까?
내일 서울 올라가면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데.. 응? 응? ]
[야아. 징그런 소리 좀 그만해. 어디 여자들끼리 자는 방에서 잔다구 그래? ]
[야. 누가 무슨 짓이라도 한 대? 그냥 침대 밑에서 라두... 안될까? ]    
[됐어. 으이그.. ]

다행히 상혁인 기분이 다시 좋아진 듯 했다.
마침 언니가 돌아왔고.. 더 있다 가겠다고 투정부리는 상혁일 억지로 내보냈다.
[내일 아침에 와. 알았지? 잘 자. ]
[아휴.. 내가 졌다 그래.. 내일 아침에 올게. 너두 잘 자. ]
[훗.. 그래. ]

상혁일 보내고 나니.. 아까 그가 날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정말 일 때문이었다면.. 굳이 밤에 날 찾아올 이유는 없었을텐데..
김차장님을 통했어도 됐을꺼고.. 언니를 찾아도 될 일이니까.. 그런데 왜..
아저씨 일 때문인가...?
하긴.. 이건 더 말이 안되지.. 이미 아침에 처리된 일을 밤에 또 나한테 얘기 할 필욘 없으니까.
그럼 왜 왔을까...
하필이면.. 상혁이가 있을 때... 하필이면...
문득.. 상혁이 때문에 그가 그냥 돌아갔다는 것에 아쉬워하는 날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말도 안돼..
내가 신경쓰여야 할 사람은 상혁이여야 하는데..
갑자기 찾아온 그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 상혁일 걱정해야 맞는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난 오로지 그 사람이 찾아온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고..
그에게 호텔방에 둘이 있는 모습을 보였던 것을.. 그래서 그냥 돌아갔을 그를 신경쓰고 있지 않은가..
고개를 흔들었다.
후...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이건.. 아냐...

상혁인 점심을 먹고 서울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오전에 현장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내 눈은 그를 찾고 있었다.
점심때가 다 돼서야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저.. 김반장님 일.. 들었어요.. 고마워요.. ]
그는 날 무표정하게 쳐다보다가 뜬금없이 상혁이 얘길 물었다.
[약혼잔 갔어요? ]
[네? 아 예.. 점심 먹고 출발한다고.. ]
[그럼 가봐야 하지 않나? 점심때 다 된 거 같은데.. ]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도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밤에 찾아왔던 이유를 물으려다 그의 태도에 말이 막혀 그만 두었다.
[어쨌든.. 감사드려요. ]

[정유진씨! ]
몇 걸음 걷다가 그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날 불러놓고는 멍하니 손에 든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던 내 눈에 세워놓았던 목재더미가 스르르 쓰러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목재더미는 이제 금방이라도 그를 덮칠 찰나였다.
[안 돼! ]

난..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위험을 내가 대신 감수할 정도로.. 그렇게 용감하지도 않다.
그런 내가.. 목재더미 아래서 그를 밀쳐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난.. 순간적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너.. 괜찮니...?
준상아.. 너..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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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님 글방펌










댓글 '3'

운영자 현주

2003.05.29 15:47:09

어머........맨끝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소름이 쫘~~악 끼치네요.....감동스러워서...^^ 너 괜찮니?..........괜찮죠..아암~~
분위기깨는 소리하나 하자면... 전 겨울연가볼때마다 아는 분들의 보조출연으로 웃길때가 가끔 있어요..ㅋㅋ 이 장면에서 목재를 쓰러뜨리게 만드는 인부로 나온분은 겨울연가의 조감독님이세요.. 나중에 20회에 울 드래곤님과 함께 또다시 출연하셨죠..호호~ 소리샘님이 아시는 조성우씨도 그때 함께였던걸루 기억하는데...맞는지 틀리는지는 다시 돌려봐야겠네요...^^ 소리샘님.. 녹차향님도 함께 오셨음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녹차향님...좋은 글 잘읽고있어요..여기서 인사대신합니다....^^ 소리샘님도 좋은 하루보내세요~~

코스

2003.05.29 17:26:23

너...괜찮니..? 준상아..괜찮니..? 유진이가 그렇게 외쳤군요.
유진의 마음속에서 한시도 떠나있지 않는 준상...
녹차향님....준상을 향한 유진의 사랑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지네요.
글로써 만나는 겨울연가 시리즈 재미있게 잘읽고있습니다.감사드리구요.
올려주신 소리샘님께도 감사드립니다.남은 시간도 좋은시간이 되세요.^^

★벼리★

2003.05.29 20:37:38

리얼 러어브~ 움..그럴땐 그렇게 걱정이되는것이군요.. 내가 아파도 준상이 걱정..준상이가 아닐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준상이의 대학 기억때문에..자기 몸을 희생해서라도.. 구하는 그 심정.. 유진이는..정말 용감한 여자였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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