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의 겨울연가 [17] 녹차향글 펌

조회 수 2996 2003.06.11 09:02:05
소리샘
유진의 겨울연가.. (17)


호숫가를 바라보면서.. 난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왜 이곳으로 왔는지..
[나가서 바람 좀 쐬죠. ]
[다른데 가면 안될까요..? ]
[왜요? 난 좋은데. 내리기나 해요. ]
그가 먼저 차에서 내려 내 쪽의 문을 열고 재촉했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리긴 했지만.. 마음은 자꾸 이곳을 나가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심한 파도를 맞은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이곳은 그리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준상이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면 당장이라도 달려오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지만..
이곳에서 볼 준상이와의 추억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쉽게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얼마나 많이.. 이곳까지 왔다가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섰던가..

그런데.. 저만치에서 준상이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그를 따라가야 하는 걸까...

이곳은 10년 전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벤치가 여러 개 더 놓여있고.. 호수에 들어가지 말라는 푯말이 새것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말고는
나무도.. 호수도.. 모두 예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준상이와 나도..

호숫가를 걷는 동안.. 난 마치 꿈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덧 그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고.. 내 눈엔 10년 전 그때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현실과 과거.. 지금의 내가 어느 곳에 서 있는 것인지 조차 모호할 만큼..

[잠시만요? ]
그리곤 그는 어디론가 바쁘게 뛰어갔다.
잠시 현실로 돌아왔던 난 다시 과거 속으로 빠져들었다.
준상이와 함께 달리던 가로수 길..
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준상이와 내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탁탁..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
[춥죠? 이거 입어요. ]
그가 점퍼를 펼쳐 내 어깨에 걸쳐주는 대로 몸을 맡기고 서 있었다.
다시 가로수 길로 고개를 돌렸을 때.. 저만치서 자전거를 탄 연인의 모습이 보였다.
내 눈은 그대로 그들에게로 고정되었다.
그 자전거 위엔.. 준상이와 내가 타고 있었다.
준상이와 내가 탄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나쳐 갔을 때..

내 눈앞엔.. 준상이가 서 있었다.
준상아....

그러나.. 날 보는 그의 눈빛이 놀람으로 흔들리면서.. 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또 그를 준상이로 착각하다니..
당황한 마음에 그의 점퍼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고 엉뚱한 농담을 하고 말았다.
[이.. 모자 재밌네요. 이렇게 쓰면 하나도 안보일 줄 알았는데 되게 잘 보여요. ]
그리곤 얼른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아냈다.
지난 추억에 빠져서.. 그에게 이런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그보다 앞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며 내 자신을 질책했다.

아직도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다니.. 너 정말.. 어떡하면 좋으니..
이젠 제발 정신을 차려.
10년이나 지났어.. 왜.. 아직도 그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니...
정말.. 바보같애...

[춘천은 처음인데.. 참 좋네요. 나무도 좋고.. 하늘도 좋고.. 호수도 좋고.. ]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모른 척 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림자가 진 곳은 아직 눈이 녹지 않았네요. 봄이 와야 녹겠죠? ]
그의 말대로 군데군데 그림자 진 곳은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눈들은.. 다들 녹아서 물이 되었을 텐데..  
그림자에 가린 눈들은.. 다른 눈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남았구나..
후.....
그림자... 외로움...

[혹시.. 그림자 나라에 간 사람 얘기.. 들어 봤어요? ]
[아뇨? 뭔데요? ]
[옛날에.. 그림자 나라에 간 사람이 있었대요..
그런데 그 곳에선 아무도 그 사람에게 말을 시켜주지 않았대요.. ]
[그래서요? ]
[그래서.. 외로웠대요.. ]
얘긴 다 끝났는데.. 그는 다음 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다예요. 싱겁죠? ]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요? ]
[친구한테 서요. ]
[음.. 알겠다. 외로웠던 사람은 유진씨 친구 같은데요? 그러니까 그런 얘길 했겠죠. ]
후...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맞아요..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많이 외로워했던 것 같아요.. ]
새삼 어두워 보이던 준상이의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왔다.
[그 친군.. 지금 뭐해요? ]
그는 점짓 모르는 척.. 내 시선을 피했다.

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그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이 내게 어떤 곳인지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가 뭐예요? ]
[들켰어요? 유진씨가 그랬잖아요.. 되새김질 할 게 별로 없다고.. ]

난 그가 지금까지 모른 척.. 이곳엔 우연히 들른 것처럼 행동한 것이 불쾌했다.
준상이와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단 말인가..
되새김질..? 내가 언제 그래달라고 부탁이라도 했었나?
그가 허락도 없이 나와 준상이 사이에 끼어든 것 같은 기분에 울컥 기분이 상했다.

[그만 가죠. ]
난 입술을 굳게 다물고 휙 돌아섰다.
그가 내 팔을 세게 움켜쥐고 날 돌려 세웠다.
[내가 유진씰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궁금해요? 얘기 해 줘요? ]
그의 목소린 격양되어 있었지만 단호했다.
[이리 와 봐요. ]
그는 내 팔을 잡고 호수 바로 앞까지 끌고 갔다.
[봐요. 보라구요! ]
그에게 양어깨를 잡힌 채 꼼짝없이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뭘.. 뭘 보라는 거에요..
난 그만 눈을 꼭 감아버렸다.
[눈떠요. 눈뜨고 보라구요! ]
난 가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일렁이는 수면 위로 반사되어 부서지는 햇빛..
새소리... 뺨을 스치는 바람...
그것들을 바라보며.. 느끼며.. 멍하니 서있었다.  
아름.. 답다....

내 어깨에 느껴지던 그의 힘이 스르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의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여기.. 이렇게 아름다운데 유진씨가 본 건 뭐죠?
추억밖엔 없죠.. 슬픈 추억밖엔 안 보이는 거죠..? ]
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그 말들은 내 가슴을 갈갈이 찢어놓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만 해요.. 그만 해요.. ]
난 그의 팔에서 놓여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는 내 팔을 더욱 세게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마음을 그렇게 꽁꽁 묶어 놓고 누굴 사랑할 수 있겠어요.
유진씨야 말로 그림자 나라에 혼자 살고 있는 거잖아요.
계속 그렇게 거기서 혼자 외롭게 살고 싶어요?
이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을 놔두고 거기서 계속 살꺼에요? 봐요. 보라구요! ]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요! 제발.. 이제 그만 하라구요.. ]    
그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하지만 몇 걸음 채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쭈그려 앉고 말았다.
얼굴을 손으로 감싸쥔 채 끅끅.. 울음을 토해냈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러는 거야?
무슨 자격으로.. 내 마음까지 관여하려는 거야?
내가 어떻게 살던..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왜... 날 이렇게 만드냐구.... 왜....

차차.. 마음이 가라앉았다.
몸을 일으키자 휘청.. 다리가 힘없이 꺾였다.
난 날 부축하려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차에 오르자마자 난 고개를 창가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
그도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래.. 그의 말이 맞아..
어쩌면 난... 내 스스로 그림자 나라를 선택한 건지도 몰라..
난.. 준상일 잊으려 애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도..
준상일 가슴에 묻으면서.. 내 마음까지 같이 묻어버렸던 걸까..
그리고 남은 껍데기만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걸까..
그래서 난.. 그 긴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상혁이 조차 사랑할 수 없었던 건가..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어도.. 상혁이와 함께 있어도.. 엄마와 희진이와 함께 있어도..
순간 순간 외로움을 느꼈던 건.. 그래서였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난 그림자 나라로 한 발짝.. 한 발짝.. 들어가고 있었던 건가...
내가.. 그랬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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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글방 펌










댓글 '5'

소리샘

2003.06.11 09:07:17

사랑스런 지우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항상 많은 사람들 사랑 가운데 행복하길 바래요
늘 주님의 사랑 가운데 축복된 생활로 더 많은 이웃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지우씨 이길 바랍니다
행.복.해.야.해~
늘 건강하길,,,
주님이 지켜주실테니 믿고 감사하는 마음이길 ,,,

영아

2003.06.11 16:11:33

소리샘님...
오늘도 변함없이 ....^^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도 유진과 준상이의 아름다운 사랑에 흠뻑 젖어봅니다...
소리샘님 ...녹차향님 ...감사합니다...
장마철로 접어들려는지....날씨가 비가왔다 개였다... ..소리샘님 건강 조심하세요...^^

2003.06.11 19:31:20

읽을수록 녹차향님은 정말 대단하심을 느끼고 또 느낌니다
어떻게 저렇게 유진과 민형(준상)의 속마음, 미묘한 심리변화까지
가슴에 절실하게 와닿는 필체로 표현할수 있는지 ?
진정 놀랍습니다
혹...
녹차향님은 겨울연가 작가님이 아니실까요... ?
아님...
현재 혹은 미래에 스타작가님임이 틀림없을것 같습니다
변함없이 '겨울연가' 올려주시는 소리샘님 감사합니다

코스

2003.06.11 23:59:13

소리샘님...오늘도 잊지않고 올려주셨네요.
7월정모 준비로 바쁘실텐데...ㅎㅎ
님의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주 크게 감사하고 있다는거 잊지마세용~~!!^^

소리샘

2003.06.12 00:06:49

전 정말 녹차향님 글은 울 식구들만 읽기 아까워서
많은 곳에 소개 하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함께 나눌수 있어 정말 좋아요 함께 공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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