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10]

조회 수 3035 2003.07.08 11:05:38
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10)


작성일: 2002/07/23 05:15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아침부터 집안이 부산하다.
엄만 대청소를 하자며 일찍부터 온 집안의 창문을 열고 다니신다.
화악... 찬 바람이 방안에 들어닥친다.
이불을 목 위까지 끌어덮으며 투덜거렸다.
[아휴.. 추워.. 엄마! 이렇게 추운데 무슨 대청소야..! ]
거실쪽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춥긴 뭐가 추워.. 너 개학하기 전에 서랍정리도 해야되고.. 인제 봄이잖니..]
봄...
맞다.. 지금 봄방학 중이지.. 봄이 오긴 왔나보네..
그렇게 생각하니.. 햇살이 따뜻해진 것 같긴하다.
갑자기 허무한 느낌이 든다.
준상아... 겨울은 가버렸대.. 인젠 봄이래..
참.. 웃기지..?
하나도.. 변한게 없어.. 변함없이 계절은 이렇게 바뀌는 구나..
넌.. 겨울속에 멈춰버렸는데..
내 기억속의 넌.. 언제나 두꺼운 옷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데..
하지만 이젠.. 겨울이 아니래..
다른 사람들은.. 또 나도.. 이젠 겨울을 벗어버리려고 하는데..
너만.. 겨울 속에 있구나.. 너만..

[언니!]
희진이가 달려와 이불을 확 걷어친다.
[야. 정희진! 뭐하는 거야?! ]
[엄마가 빨리 옷장 정리하래. 이 게으름뱅이야.. 메롱 ~]
희진인 혀를 낼름 거리며 후다닥 도망을 친다.
[야! 정희진! 거기 안서? ]
희진일 잡아서 기어이 꿀밤을 먹이고 만다.
[엄마..! 언니가 막 때려!]
[때리긴 언제 때렸다구? 버릇없이 언니를 약올려? ]
[아이구.. 그만들 해라.. 큰거나 작은거나 똑같아가지고.. ]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청소를 시작했다.

옷장을 열었다.
차곡차곡 개켜있는 겨울 옷들..
차례차례 옷들을 꺼내 상자에 담았다.
이삿짐을 꾸리는 것 마냥.. 마음이 심란하다.
엄마가 봄옷을 넣어둔 상자를 들고 들어오신다.
[엄마.. ]
[응..?]
[이상해..]
[뭐가? ]
[그냥.. 마음이.. 이상하게 겨울옷 꺼내기가 싫어지네..? ]
[왜..? 겨울옷 정리할때면 인제 봄됐다고 좋아하더니..? ]
[그러게.. 옛날엔 그랬는데.. 근데 인젠.. 겨울이 가는게 싫어..
그냥 이대로 계속 겨울이었으면 좋겠어.. ]
[훗.. 고3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는거니?
너무 걱정하지마.. 언제 엄마가 좋은대학 가라고 성화하디..? ]
[그건 아니구.. 그냥.. ]
겨울옷은 한두벌만 남겨놓고.. 봄옷들로 옷장을 채웠다.
한결 가벼워진 옷들과는 반대로.. 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옷장안에 쌓여있던 묵은 먼지들이 모두 가슴속에 쌓인 것 같이 답답하다.
후...
정말.. 겨울이 다 지나간 것 같네..?
다신 겨울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아니.. 겨울이 다시 오는게.. 두려울 것 같아..
눈이 오는 걸.. 어떻게 볼까.. 어떻게... 후.....

청소를 끝내고 거실에 나와 희진이가 먹는 과자 몇 개를 집어먹었다.
엄만 세탁소에 맡길 옷들을 정리하고 계신다.
[유진아.. 생각해봤어? ]
[어? 뭘..? ]
[대학은 어디로 갈지.. 무슨 과를 택할건지.. ]
[글쎄...? 아직 생각 안해봤는데? ]
[생각해놔야지 거기에 맞춰서 공부할거 아니니..?]
[엄만..? 어림도 없어. ]
희진이가 툭 끼어든다.
[뭐? ]
[언니처럼 게으른 학생이 어떻게 대학을 가? 안그래? ]
[이게..? ]
희진이에게 또 꿀밤을 먹인다.
[어딜.. 쬐끄만게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 ]
[치.. 언니가 뭐가 어른이야? 나랑 똑같은 학생이면서.. ]
[뭐..? 국민학생하구.. 고등학생이 어디 같은 학생이야? 쬐그만게..]
희진인 툴툴거리면서 과자봉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돈 걱정은 하지말고.. 너 가고 싶은데 가.. ]
[엄만..? 누가 돈 걱정한대..? ]
[너 하나 뒷바라지 못해주겠니? 희진인 아직 멀었잖아..
서울에 있는 대학 가도 돈 대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서울 가면 얼마나 돈 많이 드는 줄 알어? 그냥.. 여기있는 대학 갈꺼야.
엄마 일도 도와야지.. ]
[너 없어도 충분해.. 이젠 장사도 제법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 알았어? ]
엄마는...?
돈도 많이 없으면서.. 진짜루 비싼 대학가면 많이 쪼들릴꺼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일부러 씩씩하게 대답한다.
[알았네요.. 엄마 말대로 하지 뭐..
나중에 사립대 간다고 해도 말리지마.. 알았어? ]
[그래라.. 누가 말린다니..? ]

점심을 먹고 집을 나왔다.
버스 타는 곳에 서서.. 몇대의 버스를 보냈다.
버스가 오는 방향을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준상이 집은 어딜까..?
나보다 먼저 버스에 타고 있었으니까.. 준상이 집은 저쪽일텐데..
학교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스 승강장이 나올때마다 멈춰서서 집이 모여있는 곳을 둘러본다.
저기.. 어디 쯤에 준상이 집이 있을까..?
비슷비슷해보이는 집들을 열심히 쳐다본다.
어떤 집에서 살고 있었을까..? 저기.. 빨간지붕 집일까..? 아님.. 저 집..?
모르겠어.. 어디가 준상이 집인지..
한번쯤.. 집에 데리고 갈 수도 있었잖아..?
그럼.. 보고 싶을 때.. 가끔 찾아갈 수 있을텐데..
어쩌면.. 그 집엔 벌써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을 지도 몰라..
여자애가 집밖에서 계속 서성이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그래도.. 알고 싶은데.. 준상이가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후.. 아니다.. 이제와서 그걸 알아서 뭐하겠어..
이제 준상이는 더이상 살고 있지 않은 집을.. 가서 본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몇 정거장을 지나고.. 이젠 포기하고 만다.
더 걸어가 봤자.. 준상이 집을 찾을 수 있는것도 아닌데 뭐..
다리가 아프다..
결국 돌아오는 길엔 버스를 탔다.

준상이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게 뭐가 있지..?
서울에서 전학왔다는 거.. 수학을 잘한다는 거..?
피아노를 잘 쳤고.. 손재주가 좋아서 고장난 것도 잘 고친다는 거..?
참.. 그래.. 불량학생이라는거.. 고등학생이 담배도 피웠으니까..
정말.. 불량학생이었어.. 땡땡이도 잘 치고.. 훗.. 정말.. 그러네..?
또.. 뭐가 있지...?
내가.. 알고 있는게.. 또 뭐가 있지..?
준상이가 좋아하는 게.. 겨울.. 하얀색..
좋아하는 동물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 이건.. 못들었네..?
그때 만나서 얘기해준다고 그래놓고.. 약속도 안지키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인제.. 안 울기로 했잖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눈을 떴을땐 이미 집을 한참 지나쳐버린 뒤였다.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한숨을 내쉬고..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펌











댓글 '4'

영아

2003.07.09 00:00:41

소리샘님 ~
드라마속의 유진이의 모습을 생각하며 ...녹차향님의 글 오늘도 잘 봤습니다....
첫사랑를 저토록 못잊어 하는 유진이 너무 안스럽고 가슴 아프군요....
녹차향님 긴 글 감사합니다....비가 많이 올 거라고 하네요,,,소리샘님 건강하시구요,,항상 고맙습니다....

코스

2003.07.09 00:21:30

소리샘님...저..내일 읽을께요.
이 글을 조금은 음미하면서 읽고싶거든요.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을수가 없네요.ㅎㅎ
좋은밤 되시고 행복하세요.^_^**

초지일관

2003.07.09 01:02:39

안녀하셨찌요? 저번에 뵈었는데..이태원서...
잘~읽고 갑니다..그림이 그려지네요..
좋은 날 되세요..

달맞이꽃

2003.07.09 13:04:26

소리샘님 ..
비가 많이 오네요 ..
연가 노래가 오늘은 그들이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군요 ..
눈에서 마음에서 ..녹차향님에 글에 예쁜 답글은 못달지만 마음으로 읽으려고 많이 애를 쓴답니다 .후후후~~~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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