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매거진12월호 커버스토리 - 권상우 -

조회 수 3039 2003.12.11 01:13:45
운영자 현주


절대적인 사랑을 희구하는 청춘의 표상 권상우

‘때를 벗다’라는 말이 있다. 잘 안 쓰는 말이지만, ‘티를 벗다’라는 말도 있다. 이 두 말은 권상우를 만나면서 드는 두 가지 느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막 풋내를 털기 시작한 청년의 어깨에 내려앉은 제법 믿음직스런 태가 그를 그렇게 보이게 했다.
어른이 되려면 시간이 좀더 필요할 것만 같은 그에게서 소년의 이미지가 느껴졌다고, 소년의 느낌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하면 실례일까. 실례를 무릅 쓰고 꺼낸 말 앞에서 그는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 어른 되려면 멀었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스타가 된 기분이 어떠냐고 아주 통속적인 질문을 던져도 그는 천진하게 웃고만 있을 뿐.
그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왠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던 것도 생리적으로 폼을 잡거나, 근사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유형의 사람과 거리가 있다는 데 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걸터앉아서, 닥치는 질문에 그저 편하게 응하는 그의 모습에 비하면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갖가지 형식과 굴레들은 덜 자유롭고, 자유롭지 못해 삭막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는 막 다려진 와이셔츠 같은 청춘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비가 와도 구겨지거나 젖지 않을 흰 와이셔츠처럼 왠지 그는 맑은 날 소풍을 나선 귀족 같았다.

그가 하고 싶었던 사랑, 천국의 계단
두 남자와 한 여자가 한 공간에서 사랑의 감정을 교류한다. 두 남자는 때로 적이 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는 그도 나 자신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송주(권상우 분)가 놓여 있다. 사랑은 갑갑하고 목마른 것인데도 뛰쳐나가지 못하고 원 안에서만 맴돌아야 하는 것. 그만 두라고 스스로 쉬임 없이 주문을 걸고 있는데도 그 주문의 반대방향을 향해, 사랑을 향해 자맥질해 들어가는 것. 권상우가 새 드라마 스페셜 [천국의 계단]에서 고민하고 있는 역할은 그렇다.
대본을 처음 받은 느낌이 ‘문득 사랑하고 싶어졌다’였다니, 그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 드라마가 될 것인지는 미리 짐작해 봄직하다.
“제가 하고 싶었던 사랑이 뭔지를 알게 해주는 드라마예요. 그래서 가슴이 조금 뛰었던 거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사랑은 그런 거예요. 세상의 그 어떤 반대도, 장애도 굴하지 않는 사랑이요. 지구 끝까지, 우주 끝까지 함께 하는 그런 사랑. 전 원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난 사랑할 준비가 다 된 것 같은데 아직 기댈 만한 사람이 나타나질 않았을 뿐이죠.”
권상우의 행동이나 말에는 들뜸이 없다. 굴절돼 보이게 하려고 적당한 포장을 내세우거나 머리로 살아갈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에게선 아무런 사심도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그가 한없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과 진정으로 평범한 사람이고자 한다는 사실 앞에서 놀라게도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이 평범했다고 말한다. 너무 평범해서 배우가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했다. 자기 자신도 그 평범함이 싫지 않아 큰 욕심 없이도 잘 살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그에게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느냐고 했을 때 겁도 없이 ‘연기하지 않는 자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거였다.
“굵게 살겠다는 건 아니에요. 10년 후에 내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잖아요. 잘 모르지만 아마 연기는 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좋은 작품을 제법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면 떠날 거예요. 아, 하고 싶은 게 하나 있네요. 지금 모습이 행복한 것처럼 10년 후에 난 행복할래요. 뭘 하건, 아무것도 하지 않건 간에요.”
그는 벌써 행복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 연배에 어울리지 않은 행복 타령이다. 행복은 그 맛을 곱씹어본 사람만이 두 번 다시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전 늘 만족하면서 사는 편이에요. 낙천적인 걸 타고났나 봐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아요. 현재 열심히 하고 있고 그 모든 결과에 만족하면서 사는 편이죠. 전 남들처럼 이상 같은 것도 없어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전 그냥 지금 잠을 자면 잠자는 시간이 좋고, 운동을 하면 운동하는 시간이 좋고, 극장 안에 있으면 극장에 있는 게 더 없이 좋은 사람이에요. 다른 걸 생각하지 않아요.”

한없이 맑은, 푸르른 청춘의 표상
새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끝낸 상태에서 새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막바로 투입됐다는 그는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작업을 통해 많이 성숙해졌다고 했다. 자신의 단점도 많이 알게 되어 고마운 작업이었다고 했다.
“장점은 조금이고, 단점은 많아요. (웃음) 힘든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어요. 힘든 여행은 돌아오고 나면 정말 오래 오래 생각이 나잖아요. 여행 다녀와서 달라져 있는 자신을 보면 얼마나 황당하고, 한편으로 좋아요? 이 드라마 역시도 저한테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 이번에도 욕심은 안 부릴래요. 전 이상한 사람이라서 욕심을 부리면 더 이상하게 나와요.”
그 어떤 배우보다도 흥행배우가 되겠다는 권상우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은 열려 있는 성향의 배우라는 점이다. 세상이 말하는 최고의 연기자들이 선 굵고 내면 연기에 강한 것을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아마도 권상우의 경우는 희화적이면서도 ‘청춘’을 대변할 수 있는 그 어떤 역할에 ‘딱’이지 않을까?
오래 풋내를 털지 않는 배우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한없이 맑아 보여서, 구김이 없어 보여서, 청춘의 심벌처럼 존재하는 배우가 하나쯤은 있어도 될 것이다.
문득 거울처럼 우릴 찾아와, 우리의 푸르던 청춘의 한 장 한 장을 들춰낼 것만 같은 그의 미소 앞에서 악수를 하자고 손 내밀어도 괜찮지 않을까. 더 쓸쓸해지기 전에. 우리가 나이의 무게로 더 묵직해지기 전에.

글 | 이병률·시인, 사진 | 서창식
출처: SBS


댓글 '3'

^_^

2003.12.11 01:30:09

권상우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인간됨됨이가 엿보여
마음이 편하네요.^^

달맞이꽃

2003.12.11 09:35:29

송주가 ...천국을 부숴 버리고 정서를 찾겠다는 그 말 꼭 ..지켜 보겠습니다 ..몰락하는 유리도 ...후후~
선이 악을 이기는 그날까지 ..그리고 정서를 못잊는 송주와 그 아픔 함께 하렵니다 .
기대했던 력셔리한 모습도 기대하렵니다 .후후`
4회에선 ............^0^

행운

2003.12.12 01:59:24

글을 읽으면서
그 표현력, 단어, 문장 하나하나에
사실감이 겹쳐 감탄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시인 이병률님이 쓰신 것이네요
이런 적절하고 델리킷하면서도 사실감 넘치는 글은
자주 볼 수 없는 글인데...
오늘 제가 행운이었습니다
언젠가 님을 꼭 한번 만나는 행운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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