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 [13]

조회 수 3031 2003.07.14 11:34:41
소리샘
작성일: 2002/07/26 12:50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준상이가 없어도.. 시간은 가고.. 또 다시 그 날은 돌아왔다.
12월 31일...
얼마전부터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아려왔다.
왜 그럴까.. 그러다 달력을 보고 그 이유를 알게되었다.
준상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부터.. 1년전 그때처럼.. 가슴이 뛰었던 거였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그때의 두근거리던 설레임이..
지금은 심장이 뛸때마다 바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는 것..
그동안 입시에 몰두해서 잠시나마 멀리할 수 있었던.. 준상이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이..
이젠 몰두할 일이 없어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꽉 채우고 있었다.

난 며칠 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하루종일 누워 지냈다..
하루에도 몇알씩 진통제를 삼켜보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잠깐씩 선잠이 들때마다.. 준상이가 보인다.
3학년이 되고 한번도 나타나지 않던 준상인.. 그동안 참았다는 듯 매일같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꿈에 나타난 준상인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슬픈 듯.. 아니.. 나한테 실망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날 바라보기만 한다.
나도 준상이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입안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맴돌 뿐..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깨어나면 베개가 축축하다... 그러다 또 잠이 들면 반복되는 꿈들..

엄만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게 아니냐며 병원에 가자고 하신다.
난..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 간다고.. 괜찮아 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엄마..
그냥.. 좀 쉬면 괜찮아 질꺼야..

밤이 되자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불도 켜지 않는 방에서 멍하니 앉아 한참을 있었다.
몸을 일으켜 책상앞에 앉았다.
서랍 깊숙히 넣어놓았던 테잎을 꺼냈다.
그동안 꺼내보기만 하고 차마 듣지 못했던 준상이의 선물..
카세트에 꽂고 play를 눌렀다.
조금뒤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준상이의 목소리..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준상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많이 서운했니..? 내가 널.. 잊고 산 것 같아서.. 서운했니..?
그래.. 나 정말 그랬었던 거 같애.. 너무.. 잘 지냈던 것 같애..
네가 서운해하는거.. 당연해..
그런데 있지.. 준상아.
나.. 두려웠다..? 네가 생각나는게.. 너무 두려웠어..
널 잊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것 만큼.. 네가 생각나는 것도 두려웠어..
네가 생각나면.. 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미친게 아닐까 싶을만큼.. 널 찾아 헤매는 내가 너무 힘겨웠어..
그래서 널.. 떠올리지 않으려고 무척 애쓰면서 살았어..
한편으론 이러다 널 정말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
우습지..? 니 옷자락을 붙잡고.. 널 밀어내려 애쓰는 내가..

탁.. 테잎이 다 돌아가서 카세트 버튼이 튀어오르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후...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무심코 쳐다보다.. 한켠에 꽂혀있는 합격통지서가 눈에 들어왔다.
합격통지서를 들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 귀하가 00대학교 건축학과에 합격한 것을 알려드립니다....
허무한 웃음이 난다.
참.. 우습다..
준상이가 죽고..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공부고 뭐고.. 더이상 나한테 중요한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대학에도 합격하고..
준상이의 죽음은 아무 상관없이.. 이렇게 난 내 갈 길을 걸어 가는구나..
갑자기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진다.
솔직해져봐.. 정유진..
정말로.. 준상이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준상이가 파고들 틈이 없도록..
그래서 공부했다고 생각하니..?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넌.. 네 미래를 위해서 한 것 뿐이야.
좋은 대학에 가기위해.. 그래서 졸업후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안그러니?
여태까지 네가 준상이한테 얘기한건.. 그냥 변명일 뿐이야.
준상이가 죽었는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네 모습을.. 준상이가 보고 서운해 할까봐..
그래서 네 자신에게 변명을 늘어 놓은 것 뿐이라구..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아니라고.. 너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니..?

이제까지 느꼈던 죄책감보다.. 더한 죄책감이 심장을 옥죄어 온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울컥 울음이 쏟아진다.
아니야.. 아니야..!
난.. 그러지 않았어.. 그랬을 리가 없어.. 그런게 아니야..
하지만.. 그 말에.. 자신이 없어진다.
난.. 어쩌면.. 정말 그랬을 지도 몰라..
내 자신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거였는 지도 몰라..
어쩌면.. 난.. 준상이와는 별개로 내 미래를 준비한 건지도..
그런 내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몰라..
그래서 준상이를 거기에 끌어들였던 거야..
준상이를 잃은 슬픔때문이라고..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라고..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거야..
사실은 그게 아니었으면서..

어떡하지.. 준상아..?
난.. 널 사랑할 자격이 없어..
난 정말 나쁜애야.. 널.. 정말 사랑한게 아니었나봐..
미안해.. 준상아..
날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어떡하지.. 준상이한테 미안해서.. 나.. 어떡하지..?
난.. 정말 나쁜 애야... 나쁜 애..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펌











댓글 '2'

달맞이꽃

2003.07.14 12:17:34

소리샘님 ..녹차향님 ..
주일은 잘 보내셨나요 ?
오늘은 게시판에 연가 노래로 출렁이는군요..
날시가 정말 더워요 그죠? 시원하고 활기찬 월요일이 되시고 한주로 이어지길 바람니다 .

지우님팬

2003.07.15 10:47:03

준상이를 잊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유진이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군요...
소리샘님 ~ 방금 겨울연가 사람들 홈을 잠깐 둘러보니 어제가 생신이셨던 같은데....
늦었지만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0^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세요...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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