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지 않기를.....

조회 수 3016 2002.08.14 01:05:43
토토로










"엄마, 나도 장갑 하나 사 줘. 응?"

나는 단칸방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벌서 한 시간이

넘도록 엄마를 조르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엄마는 눈길 한 번 안 준 채

부지런히 구슬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 목적을 달성해 보려고

울먹울먹하는 목소리로 마구 지껄였다.

"씨…딴 애들은 토끼털 장갑도 있고 눈 올 때 신는 장화도 있는데

난 장갑이 없어서 눈싸움도 못 한단 말이야…".

"애들이 나보고 집에 가서… 씨… 엄마랑 같이 구슬이나 꿰래."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왔다.

엄마의 재빠르던 손놀림이 갑자기 멈춰졌다.

"오섭아, 누가 그랬어? 누가 너더러 구술이나 꿰랬어?"

침착하면서도 노여움이 배어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주눅이 든 나는 그만 생각에도 없는 말을 계속 내뱉었다.

"애들이 그러는데 엄마가 연탄 배달을

하도 많이 해서 내 얼굴이 까만 거래…."

나는 미닫이문을 꽝 닫고 나와 눈 쌓인 골목길을

외투도 없이 걸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사실 그런 놀림을 받은 적도 없었고

힘들게 밤낮 일하시는 엄마를 슬프게 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오늘 점심 시간에 눈싸움을 하다가 장갑이 없어서

손이 조금 시려웠을 뿐이었다.

나 말고도 장갑 없이 눈싸움 한 아이들은 몇 더 있었다.

손을 호호 불어 가면서 하면 까짓 별거 아닌데….

그런데 괜히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온 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그날 저녁 엄마는 아무 말도 없었고 나 역시 그랬다.

중학교 다니는 형만 겨울방학에 들떠 혼자 떠들어댔다.

나는 낮에 엄마를 속상하게 한 것을 용서받고 싶었지만

저녁상 물리고 자꾸만 졸음이 몰려와

아랫목에서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그날 밤 엄마는 내 머리맡에서 밤새 구슬을 꿰는 것 같았다.

"오섭아, 이거 끼고 학교 가거라."

다음 날 아침 미적미적 학교갈 준비를 하는 나에게

엄마는 빨간색 벙어리 장갑 한 켤레를 건네주었다.

"엄…마…."

장갑의 손등엔 하얀 털실로 작은 꽃모양까지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장갑을 받아들고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학교를 다 마친 뒤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언덕을 오르는데 저만치서

연탄을 나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반가워 엄마에게 달려가 빨간 벙어리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목에 매달렸다.

"집에 가서 아랫목에 있는 밥 꺼내 먹거라."

그러면서 내 얼굴을 만져 주는 엄마의 차가운 손.

다시 손에 끼우시던 엄마의 장갑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그 추운 겨울 날씨에 차디찬 연탄을 나르시면서

엄마는 낡아빠져 여기저기 구멍이 난

얇은 고무장갑 하나를 끼고 계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들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겨울이면 연탄 공장에서 성탄절 선물로 고무장갑 안에 끼라고

배급해 주는 붉은 털장갑을 풀어

밤새 내 벙어리 장갑을 짜 주셨다는 것을….

실이 얇아 이중으로 짜야 했기에

하룻밤 꼬박 새워야만 했다는 것을….

그후 내가 지어낸 악의에 찬 말들에 대해 어머니께 용서를

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손이 커져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펴지지 않을 때까지

겨울마다 그 장갑을 끼고 또 끼었다.

그리고 결혼할 때 나는 내 처에게 뜨개질을 잘 하느냐고

물어 보고 그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쌀쌀한 아침저녁의 기온이

또다시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던 어느 날.

어디서 사 왔는지 뭉실뭉실한 털실 세 뭉치를 바구니에 담으며

아내가 넌지시 내게 말했다.

"올 겨울에는 어머님께 따뜻한 털스웨터 한 벌 짜 드리려구요.









댓글 '1'

김구희

2002.08.14 20:10:17

눈물 흘렸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고서야 저두 깨달았으니까요 마음이찡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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