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님을 적어보았습니다...

조회 수 3028 2002.03.22 04:21:52
토미
     "莫見乎隱이며 莫見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

  호주에 있는 후배에게 자필自筆로 편지를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서두에 적은 글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숨은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은 없으며, 작은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누가 보건 안 보건 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후배에게 쓴 편지에 적은 글인데... 님들도 알고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한자음漢字音은 일부러 달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옥편玉篇 한 번 뒤적여 보시라고 말입니다.

  신영복님이 쓰신 <나무야 나무야>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알고 지내던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는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으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지요.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는 데도 늘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을 느꼈지요.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두 발로 우뚝 선 우리의 삶과 사랑,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일 겁니다. 그것은 바깥에서 얻어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씨를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한 그루 나무와 같은 거겠지요.

  처음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읽어가면서 이 구절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주춧돌이 있고 기둥을 세워야 지붕을 얹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기초와 순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 그루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를 뿌리고, 그것을 가꿔야 비로소 한 그루 나무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주춧돌과 씨를 먼저 생각하고, 그 토대 위에서 기둥을 세우고 물을 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글은 제가 가지고 있는 신영복님의 저서著書를 중심으로 적어야 하겠습니다.
  이분이 지으신 책이 모두 5권인데, 그 중에 4권을 가지고 있으니 거의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고 먼저 소개하는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자면... 저자가 20년 넘게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 부모님과 형수님, 계수님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들을 모아놓은 옥중서간입니다.
  이 책에는 그가 1969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기록한 글들과 1970년대 초반 안양과 대전 교도소에서 쓴 편지들이 빠짐없이 담겨 있어 저자 20대의 사색 편린들과 어려웠던 징역 초년의 면모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일부 편지의 원문을 그대로 살려 실었을 뿐 아니라 수신자 중심이 아닌 시기별로 구성되어 있어 저자의 20년 20일 동안의 옥중생활과 고뇌 어린 사색의 결정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본문은...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를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제가 소개하는 두 번째 책은 기행문형식을 취한 서간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나무야 나무야>입니다.

  이 책을 소개하자면... 한 마디로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라는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돌아다닌 여행기입니다.

  이 책에서 제 마음을 사로잡은 본문은... 세상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秀와 장莊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속성인지도 모릅니다. 이 둘 가운데 하나만을 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수秀보다는 장莊을 택하고 싶습니다. 장중함은 얼른 눈에 띄지도 않고 그것에서 오는 감동도 매우 더딘 것이긴 하지만 그것의 '있음'이 크고 그 감동이 구원久遠하여 가히 '근본'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책을 고를 때 본 리뷰가 책 속에 끼어 있어 적어봅니다.

  "난 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하리라던 그 마음 어린 꿈이 생각나네∼" 한 소녀 가수가 청순한 목소리로 불러 인기를 모은 노래 가사의 한 부분이다. 제법 높은 음을 내야 하는 이 부분에서 그만 목소리가 갈라져 머쓱해 하는 딸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너그러운 미소를 보냈지만 어쩐지 가슴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 들어 거울 안의 내 눈망울을 찬찬히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언제부터 내겐 하늘색 고운 빛이 사라졌을까. 가끔 설거지를 하다 보면 기분 나쁘게 미끈거리는 물때를 닦아야 할 경우가 있다. 단지 깨끗한 물만 담아 놓았을 뿐인데도 합성수지 물통 밑바닥에는 물때가 거뭇거뭇 앉곤 한다. 불투명하고 주둥이가 좁은 물통은 말끔히 닦아내기도 어렵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에 쌓이는 때가 있다면 필경 그러할 것 같은 모습이다.

  순수가 삶의 절대 명제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 시절, 순수의 잣대를 벗어난 사고나 행동은 가차없이 비난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여간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 이제야 사고가 유연해진 거라고 짐짓 여유를 부려 보지만 과연 그럴까,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오래 전 순수라 이름 붙였던 것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에 사로잡히면서 책표지 주인공의 안경 너머 맑은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삽시간에 주위가 고요해지고 어디선가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하다.

  신영복님의 <나무야 나무야> 는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라는 조그만 이름표를 달고 있다. 책장을 펼치면 글과 글 여백 사이로 개울물이 흐르는가 하면 눈 쌓인 골짜기며 산봉우리가 살짝살짝 스쳐지나간다. 그들이 내는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도 담겨 있다. 멀리 떠난 누군가가 고맙게도 나를 잊지 않고 멋진 그림 엽서를 보내왔을 때의 두근거림으로 읽어 내려간다.

  조금은 낯설어 하는 나를 향해 '당신'이라 부르며 옆자리에 다가와 앉는 친절한 그의 목소리. 분명 단호하지만 소근거리듯 이어지는 작은 목소리를 행여 놓칠세라 숨마저 죽인다. 아무리 엽서라 한들 그토록 짧은 문장을 골라 쓸 수 있을까.

  생각을 고르고 가다듬는다는 것이 정녕 무엇인가를 배운다. 그 위에 보태진 절제란! 작가는 이와 관련한 궁금증을 염두에 둔 듯 '옥중에서 검열을 염두에 두고 엽서를 적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글은 그렇다 치더라도 군데군데 빛을 발하는 그림 솜씨 또한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든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맑은 눈망울을 간직하는 데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작가에게 이런 우문愚問을 던지려는 찰나 책속에 담긴 현답賢答들을 만난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책은 '80일간의 세계일주'와 같은 기행문이라고 할 수 있는 <더불어 숲 1,2>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를 쓰자면... 여행은 돌아옴입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돌아옴이며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정직한 귀향이며 겸손한 만남입니다. 이 정직한 귀향과 겸손한 이해가 없는 한 서로 다른 세계가 평화롭고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세기의 아픈 과거로부터 새로운 세기를 향하여 떠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 4권을 적어보았는데... 아마 이 중에서 읽어보거나 제목을 들어 본 책이 있으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시간 아시면 대여를 해서라도 한 번 읽어보세요.
  책을 읽다보면 감동하는 것이 있는데... 이 분의 삽화揷畵실력입니다.
  아마 직접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벌써 시간이...
  지금 자면 몇 시간 못 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자야죠. 낮에 졸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마종기님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의 웃음은
     무기물질이다.
     불 태워도 타지 않고
     땅에 묻어도 도저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악곡樂曲이 되어
     깊이깊이 연주되는.

     당신의 웃음은
     내 거실의 창밖이다.
     내가 당신을 내다볼 때
     당신은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람, 안개도 하늘도 되는,
     당신의 웃음은
     어디에 가도 멀리 둘러싸는
     내 풍경風景이다.

  웃음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웃음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꽃보다 더 화사합니다. 돈도 들지 않고, 품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웃으세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며 활짝 웃으세요. 미워하는 사람을 향해서도 웃으세요. 당신의 웃는 얼굴, 웃는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이 웃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타지우와 제가 웃는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그럼... 아침부터 웃는 일만 생기기를


댓글 '1'

투명껌

2002.03.22 13:37:08

저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명깊게 읽었거든요~~ 요즘 너무 책하곤 담을 쌓고 살았네요.. 올해엔 토미님의 소개하는 책이라도 꼭 읽도록 노력해야겟어요.... 항상 도움되는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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