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든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조회 수 2992 2003.04.20 11:58:30
토미
     잠이 든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먼길을 걸어와 지금 당신이 제 옆에 잠들어 있는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분명히 언젠가 낯선 타인이었을 당신이 제 손이 미치는 곳에서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게 마냥 신기합니다.
     당신이니? 당신이 삼십 억 명 중 한 사람이었던 여자이었니?
     그렇게 쉼 없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전 가슴이 뻑시게 저리고 아파옵니다.
     나 같은 남자 뭘 믿고 더없이 소중한 마음과 몸을 맡기고
     저처럼 아늑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지,
     순간순간 놀라면서도 전 눈물이 납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촛불 같은 당신 잠과 꿈을 꺼뜨릴까
     조심조심하며 밤새 저는 당신 마음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해인'의 시집詩集 <눈꽃편지>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사랑과 믿음의 완성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랑과 믿음의 총체이며, 결산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맡기고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님들 곁에 누워 잠이 든 분은... 혹은 같이 잠이 들게 될 분은 별보다 귀한 하늘의 선물일 것입니다.

  이렇게 비 오고 어두운 날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고통처럼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침이면 그 사람의 잠이 든 모습을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든 사람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이른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여름날의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들이 이처럼 고운 빛깔이었나, 한겨울 가로등 불이 이렇게
     따스한 주황빛이었나...
     익숙했던 모든 풍경들에 새삼 감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지는지요?
     어쩌면 사랑이란 잃었던 시력을 찾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별이 가혹한 이유도 세상이 다시 밋밋했던 옛날로 돌아가기 때문일 겁니다.

  시인 '김하인'의 시집詩集 <눈꽃편지>에는 가슴 시리도록 아프고 저린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겨울편지.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 겨울, 나뭇가지뿐인 나무와 유리창 성에꽃으로 펜과 종이 삼아 씁니다. 어느 곳에 당신이 사는가를 모르는 전 창백한 내 마음에다 상처의 무늬를 쓰고 읽습니다. 요즘 환한 불면입니다. 다시....당신을 만나 당신과 꺼진 전등 속에 들어가 잠 잘 수 있다면. 당신을 더욱더 편안하고 따스하게 맞을 텐데. 전 당신 가슴속으로 눕고 당신은 제 마음속에 누워 햇빛 날리는 창문을 이 삶으로부터 선물 받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내다본 나 이외의 세계는 다 어둡지만 전 당신만으로 밝습니다. 슬픔이 이토록 무한 동력으로 발열하는지 그저 불면마저 신기해할 뿐입니다.
  --- page.13

  당신의 향기.
  무슨 향수 쓰시나요. 그대에게선 뭐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향기가 났었습니다. 향수는 뿌리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믿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헤어진 뒤에야 그 향기의 근원을 알았습니다. 당신이므로, 세상의 유일한 당신이므로 당신이란 향기가 났다는 것을. 당신이 제게 준 눈빛과 미소, 몸짓과 장난스러움, 이 모든 것이 미묘하게 작용 일으킨 사랑이었다는 것을. 당신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떤 향수를 쓰시느냐는 바보 같은 질문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제게 어떤 사랑을 쓰시느냐고 묻겠습니다.
  --- page.53

  첫사랑.
  오래도록 기다렸습니다. 저 아닌 다른 사람이 저보다 더 소중하고 더 간절하게 되기를. 제가 살고 죽어도 영원히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섬겨야 할 사람을 기다려왔습니다. 이 세계가 당신을 통해 운행되고 제 마음이 당신 감정에 의해 모래성으로 지어지고 허물어지게 만들 손을 가진 당신.... 첫 식탁을 차리듯 제 삶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에 담아 당신에게 내어놓습니다. 풀잎을 세우는 햇빛처럼 꽃을 피우는 비처럼 나무를 세우는 바람처럼 그렇게 제 마음의 첫 순입니다. 당신을 통해 꽃피길 바랍니다. 이후 삶을 살며 그 어떤 절망과 참담한 시련일지라도 당신 떠올릴 때마다 제가 순해지고 맑아지고 착해질 수 있도록 당신 사랑으로 축복해 주십시오.
  --- page.89

  헤어진 나입니다.
  하루. 오늘 이 하루 속엔 세상의 어떤 일들이 담겨집니다. 누군가 태어나고 죽었을 것이고 산비탈과 도로에선 사고가 났겠고 도시 곳곳에 빌딩과 집들과 가로등이 세워졌을 겁니다. 수천만 통의 편지가 쓰여지고 부쳐졌으며 받아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하잘것없어지고 무의미해지는 까닭은 전 죽어지지 않은 죽음을 수천 번 죽으며 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헤어졌으므로 이 세계가 불타고 온 우주가 슬픔에 잠기며 제 목숨이 하잘것없이 내던져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망가졌고 제가 비참하므로 사람들 모두가 가엾어졌습니다. 그게 오는 제 하루입니다. 살아서 다시 맞고 싶지 않았던 오늘은 바로 당신과 헤어진 날입니다.
  --- page.123

  봄인데도 몸이 한기를 느낍니다.
  아마 기분 탓인가 봅니다...

  따뜻한 부활절 하루 되세요.

댓글 '6'

2003.04.20 12:09:44

토미님. 오랫동안 스타지우를 서성거린 사람입니다. 처음 님의글을 접하면서 제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었습니다. 한동안 님의 글을 접할수 없어서 안타까웠는데 너무나 반갑습니다..
써미지우님과 토미님이 계신 이곳은 너무나 아름다운곳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하얀사랑

2003.04.20 14:19:24

토미님 정말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잘 지내셨쬬?^^*

코스

2003.04.20 20:12:59

닫힌 문을 여는 것은 안에서 문을 닫은 사람이 해야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문을 열도록 유도할수 있지만 문을 여는 행위는 안에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아무리 평등하게 비치는 태양빛이라 해도 닫힌 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 처럼 인간사이에 오가는 사랑도 그와 같지 않을까요.
토미님....오랜만에 읽는 님의 글이 가뭄끝에 맞는 단비 처럼 제 마음을 기쁨으로 꽉~채워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남은 시간 좋은 시간 되세요.^^

온유

2003.04.20 23:16:57

토미님 님이 올리신 <눈꽃편지>란 시집을 꼭 한번 읽어 보구 싶네요.지금 사랑을 하는 사람,사랑이 떠나간 사람,서로 간의 사랑이 정체기에 접어 들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이 두루 읽으셔도 넘 괜찮을껏 같은 시집이네요.토미님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늘 건강하시구요.....

sunny지우

2003.04.21 01:47:39

토미님~
어느영화제목으로 알았습니다.
님의 글중에 `혹이 같이 잠이 들게 될 분은
별보다 귀한 하늘의 선물일 것입니다'라는 글귀
너무 마음에 닿는 군요.
누군가가 나에게 무장해제의 마음과 삶을 보인 다는 것 ....
가족들과 특별한 이웃들...이겠지요?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달맞이꽃

2003.04.21 08:14:03

토미님이 오셨군요 ..
이제야 우리집에 들어오니 희비가 교차하네요 ..반가워요 토미님 ..정말 궁굼했담니다 .늘 좋은글로 님에 향기를 접할수 있음이 참 행복합니다 ..많이 바쁘시드라도 아주 조금만 시간을 내시어 흔적을 보여 주시면 좋겠는데 ..후후후~~걱정이 되거든요 ..아프신게 아닌가 ..아님 집안에 일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며 후후후~~~~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오셔서 정말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자주 님에 향기를 맡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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