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혼자 가요...

조회 수 2311 2002.05.23 21:36:14
토미
          '금강산의 이산(離散) 시인'

     52년 수절 끝에 북쪽 남편 임한언 할아버지(74)를 만난
     정귀업 할머니(75)는 이번 방북 기간에 이렇게 불렸다.
     정할머니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선
     시(詩)보다도 절절한 이산가족의 한과 정서가
     묻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못 만났으면 넋새가 되어 울고 다닐 것이다."
     반세기 동안의 이산과 상봉의 한을 정할머니는 이렇게 표현했다.

     남편 손을 잡고 금강산 구룡연을 찾은 정할머니는
     "하늘과 땅을 합친 것만큼 좋다"고 기뻐하더니
     헤어지면서는 "시곗바늘이 한 점도 쉬어주질 않아요. 가다보면 아주 가는 날 있겠지.
     그 때는 후회 없이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작별상봉 때는 남편에게 연인처럼 다짐을 놓았다.
     "사진 보며 내 생각해요. 나도 보고싶으면 사진 볼 거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이 다가오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52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 어떻게 또 혼자 가요. 나 집에 안 갈 거야. 이제 어떡하라고요...."
     정할머니는 남편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랫동안 도리질을 했다.

  금강산 취재단의 <이산의 시인(詩人) 정귀업 할머니>기사 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아버님이 모아놓으셨던 신문을 뒤적이다가 본 기사인데... 참 마음이 아픕니다.
  정귀업 할머니의 찢어지는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민족의 슬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역사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52년 동안 숯처럼 타버린 그리움의 한(恨)이 어떻게 하루 상봉에 풀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그저 도리질치는 할머니와 함께 울며 "사랑해요, 할머니. 힘내세요, 할머니."라는 말씀밖에는 드릴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할머니'... 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니 생각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인 안도현님이 쓰신 산문집散文集 <사람>中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본문 195-196쪽, '돈을 버는 방법, 돈을 쓰는 방법'中에서

  제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외갓집을 가면 당신은 어른이 다 된 저를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사내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알았제? 저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다른 데로 말을 돌렸습니다. 명색이 시인이라는 자가 돈을 많이 벌겠노라고 늙으신 외할머니 앞에서 떵떵거리며 침을 튀길 수도 없고, 설혹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을 속에다 품은들 그게 또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은 안동역 대합실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외할머니보다 더 연세가 들어 보이는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이십대 중반의 손자에게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쌈짓돈을 받지 않으려는 손자와 그것을 기어이 주려는 할머니 사이의 실랑이는 손자가 마지못해 돈을 받아 쥐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때 그 할머니가 손자에게 신신당부하던 말을 저는 살짝 엿들었습니다.
  서울 가거든 부디 돈 많이 벌어래이, 알겠나?

  어찌 그리 똑같을 수 있는지요. 두 분 할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분들의 말씀을 오로지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돈이 생활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는 것을, 떳떳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그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할머니들은 손자에게 말씀하시고 싶었겠지요. 그러니까 세상을 오래 살아온 할머니들의 손자에 대한 삶의 격려사쯤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인은 가난해야 시를 쓴다지요?"

  가끔씩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질문이 살 속에 얼음으로 박혀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저에 대한 질책으로 던진 말이 분명히 아님에도 저는 가슴이 뜨끔해집니다. 그럴 때면 지금 나는 가난한가, 가난해서 시를 쓰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답니다. 사람들은 아무래도 시인이라는 이름 밑에 가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가난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여러 은유적 의미를 떠나, 돈이 없어 궁핍한 상태를 일단 가난이라고 한다면, 저는 시인이라고 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시인을 따라다니는 천형이 아닙니다.

  (...) 시인이 직업이 될 수는 없어도 다른 직업인들과 마찬가지로 시인도 돈을 벌어야 합니다. 시를 써서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시를 써서 돈을 벌었다는 시인을 저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세상이 도대체 우리 앞에 오기나 하겠는지요.

  (...) 돈을 많이 벌되, 제발 좀 나눠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을 기다리며 쓴, '땅'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제 이야기를 접어야겠군요.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안도현님의 산문집 <사람>을 읽다보면 참 편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항상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면... 특히 산문집을 고를 때면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산문집을 읽는 게 좋을까? 나와 너무 달라서 하는 말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사람. 화성인이나 목성인은 물론, 너무 똑똑한 사람이거나, 너무 냉철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알아듣기도 힘들 거야. 그렇다고 나와 너무 닮은 사람이라면, 그 산문집도 읽기 지루하지 않을까? 나와 똑같이 산다면 뭐 궁금할 게 있겠어.

  그런 점에서 시인의 책은 저에게 이름만으로 내용을 보지 않고 고를 수 있는 기쁨을 줍니다.
  저에게 고르는 기쁨을 주는 시인의 산문中에서 눈에 띄는 몇 구절을 적어봅니다.

  아들아, 너는 만년필을 아느냐. 만년필 잉크 냄새를 맡으며 코를 벌름거려 보았느냐.
  내가 지금의 너만한 아이였을 적에, 나에게는 만년필이 없었다. 돈이 없어 그걸 사지 못한 게 아니다. 나는 너무 어려서 만년필을 사용할 자격이 없었던 거다. 어린것들은 연필로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게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연필은 글씨를 썼다가도 마음대로 지울 수가 있는 필기 도구다. 하지만 만년필 글씨는 한 번 쓰면 더 이상 고칠 수 없다. 다시 고쳐 쓸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소리다. 글씨도 삶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책임을 지지 못하면 만년필을 쓰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만년필이 무척이나 갖고 싶었다. 그 무렵 나의 꿈은 양복 윗 주머니에 턱 하니 금빛 만년필을 꽂고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코끼리 한나절만 부르면 끝나버린당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집을 고치는 데 코끼리를 부르라니요! 그것도 아프리카도 동물원도 아니고 조선의 산골에 말이지요. 나는 이 화두를 붙잡고 잠시 상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연상에 의한 탁월한 언어 창조 앞에 저는 무한히 경건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마을에 오기 훨씬 전부터 할머니는 '포클레인'이라는 발음도 힘든 서양말을 '코낄'라는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제와 같은 그 몸집과 코의 생김새, 그리고 역할의 유사성, 기막힌 어감의 조화, 어쩌고저쩌고 긴 설명 필요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포클레인은 코끼리입니다.

  이 독특한 안동 지방의 방언을 이해하느라 전라도 출신의 제 아내도 적잖게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습니다.
  하루는 부엌에서 국을 푸고 있던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야야, 가지껏 퍼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까짓것 국물이나 푸라는 것인지, 아니면 난데없이 국에다가 가지를 넣으라는 뜻인지 아내는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며느리가 답답해 보였던지 어머니가 손수 국자를 들고 '가지껏' 국을 푸는 시범을 보이셨답니다.
  가지껏 - 최대한 많이많이, 국그릇이 넘칠 정도로 가득히....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은 '휴 프레이더'의 <나에게 쓰는 편지 -Spiritual Notes to Myself>中에서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어 적어봅니다.
  밑에 나오는 구절처럼 우리로 인해서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합니다.
  그럼...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우리는 말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어." 하지만 우리는 배우자를 화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무슨 말과 어떤 행동을 해야 상대가 화를 낼지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가 상대를 화나게 하고, 질투 나게 만들고, 두렵게 할 수 있으면서 왜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직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당신의 배우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연습을 해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의 달인이 될 것이다. 자식, 친구, 형제자매, 또는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압력을 가하지 말아라. 만일 당신이 배우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면 우선 당신이 압력과 요구의 근원이 되지 말고 최후 통첩을 멈춰야 한다.


댓글 '2'

세실

2002.05.24 08:51:34

나로 인해서 ... 우리로 인해서 .. 가족이 ..사회가 행복해진다면 더 이상 보람있는 삶이 있을까요? 다시 읽어도 정귀업할머니 눈물겹습니다. 토미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sunny지우

2002.05.24 15:10:12

토미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분단의 아픔을 뼈져리게 느끼게 합니다. 죽어서야 하나될수 있을까요? 자유로이 만날 수있다면...가족애 -자신이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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