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법정..

조회 수 2957 2002.04.23 23:19:38
포도좋아
이글은 법정스님이 고 정채봉님을 추모해 적은 글이에요...
읽고 넘 감동해서 울 식구들과 함께 그 감동 나누고 싶어요..
요며칠 어수선한데 이 글읽고 감동 받으시길 바래요...
참 이글 조금, 아니 많이 길거든요...
제가 손으로 직접 쳐서 올리는 거니까 정성을 생각해서 끝까지 읽어주세요..^^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법정

그는 아주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이다. 한때 머물던 육체를 떠나 자신의 틀에 알맞은 새로운 몸을 가지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이 몸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이 몸을 지닌 것이므로, 이 몸이 제 할 일을 다 했을 때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 한쪽에 벗어 놓는다 그는 때가 되면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친지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면 평소 그의 모습과 무게가 새롭게 떠오른다. 정채봉님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간 지 한달이 가까워진 이제 그의 모습과 무게를 되새기며 슬퍼한다. 사람이 가고 나면 그에 대한 기억만 아프게 남는다.
지난 연말 마지막으로 그를 방문했을 때 환자는 기분이 좋아 일어나 앉아서 전에 없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말을 많이 했다. 그 날은 다른 방문객이 없어 식구들뿐이었다. 불쑥 들어선 나를 보고 더 못 뵐 줄 알았더니 다시 뵙게 됐다면서 아주 반가워했다. 그 전에 갔을 때는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어 내 마음도 울적했었다.
그날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그를 안아 주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것이 이 생에서 우리 사이에 마지막 하직인사가 된 셈이다.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뼈만 남아 앙상한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몇 차례 길가에 차를 세워야 했다. 살아서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정채봉님을 처음 만난 것은 샘터에서였다.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원고를 가지러 강 건너 다래헌에 왔었다. 그 시절에는 편집기자가 직접 원고를 받으러 왔었다. 그 무렵 다래헌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나는 지난 겨울 우이동에 있는 그의 집 거실 사진틀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두 사람이 다 펄펄하던 시절이었다.
불일암에서 지낼 때, 내 '산방한담' 칼럼에 오자가 무려 대여섯 군데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실린 글에 오자가 나오면 몹시 불쾌하다. 독자에 대한 결례일 뿐 아니라 편집자의 성실성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랫절에 내려가 전화로 원고를 더 보내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편집책임자인 그가 예고도 없이 불일암에 왔었다. 내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밤차를 타고 사과하러 내려온 것이다. 훈육주임 앞에 선 학생처럼 풀이 죽어 있는 그의 모습을 대하자 내 마음도 이내 누그러졌다. 함께 부엌에 들어가 아침을 지어먹었다.
  
어느 해 이른봄, 그는 소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내 왔었다.
  ' 스님, 생신을 축하 올립니다.
   오늘이 있어 저의 생도 의미를 지닐 수 있었기에 참으로 저에게도 뜻 있는 날입니다.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께서는 늘 절 구경을 다니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 몰래 한 푼 두 푼 모
   으신 돈이 여비가 될 만하면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제가 털어가곤 하였습니다.      
    그 때의 제 속임수란 "할머니, 제가 이 다음에 돈 벌어 절에 모시고 갈게요"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제 손으로 월급을 받아오기 훨씬 전에 저쪽 별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 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었습니다.  
   스님의 생신에(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짚어주시리라 믿습니
   다.  스님께서는 제 혼의 양식을 대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한번 축하 올립니다. 스님 !
       정채봉 올림'

봄볕이 들어온 앞마루에 앉아 이 사연을 두 번 읽었다.  함께 부쳐온 봄내의를 매만지면서 대숲머리로 울긋불긋 넘어다 보이는 앞산의 진달래에 묵묵히 눈길을 보냈다.
입산 출가 이래 나는 한 번도 내 생일을 기억한 적도,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도 없다. 그것은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주민등록에 기재된 생년월일은 실제 출생일과 같지 않다.


재작년 가을 보내온 엽서에는 순천에 가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묘지가 산업도로로 편입되는 바람에 옳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적고 있었다.

'기억에 없는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 유골로 이루어지게 되어 눈물을 좀 흘렸습니다. 저의 나이든
  모습이 스무 살의 어머니로서 가슴 아파하실까봐 머리에 검정물을 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이 사연을 읽고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묻힌 양지 바른 그 발치에 지금 그도 누워있다. 그가 홀로 되어 몹시 외롭고 안쓰럽게 여겨지던 시절, 책을 읽다과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 함께 음미하고 싶어 써보낸글이 있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살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는
  이런 순간에 맞닥뜨릴것 대비하여 미리 연습하면서 살아간다.…'

한평생 외롭게 살아온 그가 그의 문학과 정서를 길러준 고향의 흙과 바람,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서 쉬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하게 여기고 싶다. 이 다음 생에는 부디 덜 외로운 집안에 태어나 튼튼한 몸으로 이생에 못다한 일을 두루 이루기를 바라면서 명복을 빈다.

올 때는 흰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오고 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댓글 '2'

변은희

2002.04.24 03:17:46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었습니다.좋은 글 고맙고 감사합니다.늘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우리지우

2002.04.24 08:55:04

그냥 글읽으면서 눈물이 남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고맙고요.. 포도의 향기가 묻어나서 넘 좋아요... 좋은 하루 되시고요.. 가슴 깊이 스며드는 글 주셔서 넘 감사해요... 얼굴은 뵐수 없지만 포도좋아님의 맘이 이곳에 묻어나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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