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상이 없는 곳에서 유진이의 10년[9]

조회 수 3071 2003.07.07 09:18:20
소리샘
준상이가 없는 곳에서.. (9)


작성일: 2002/07/20 05:09
작성자: 녹차향(ippnii76)


오늘이 우리가 하는 마지막 방송이다.
짧은 봄방학이 지나고 나면.. 방송부는 후배들이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방송실에 모였다.
마지막 방송을 어떻게 멋있게 끝낼것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선.. 준상이의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 그런거지...
누군가의 빈자리는 곧 누군가에 의해서 채워지기 마련이고..
한사람 쯤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상관이 없는거야.
준상이가 없어도 방송을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구나.. 그렇구나..
마지막 방송이라는 서운함도 잠시..
준상이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시려워진다.

상혁이와 용국인 방송시설을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고..
채린이와 진숙인 방송멘트를 손보고 있고... 난 음악을 고른다.
LP 몇 장을 골라냈다.
그리고 난.. LP 한장을 앞에놓고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
처음..
눈물이 핑.. 돈다.
이것 하나가..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너의 전부구나..
이것 밖에.. 남은 게 없구나..

[야. 정유진.. 뭐해. 다 골랐으면 갖고와.]
채린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움찔 고개를 들었다.
[어.. 여기..]
채린이가 LP를 뒤적인다.
그리고 처음.. 을 보고는 타박을 한다.
[정유진. 이건 왜 가져왔니? 오늘 방송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해?
오늘 방송은 즐거운 분위기로 가기로 한거 몰라?]
아.. 그랬었지.. 참..
이 음악은.. 어울리지 않겠구나..
[깜빡 했어.. 고르다 보니까.. 그냥..]
[넌 정신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참나.. ]
[얘는.. 뭘 이거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니? 안 틀면 그만이지..]
진숙이가 민망한 얼굴로 나와 채린일 번갈아 쳐다본다.
상혁이가 다가와 처음 LP를 보고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왜 내가 이 음악을 골랐는지..
어떤 마음으로 듣고 싶어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으로..
상혁인 복잡한 얼굴로 처음 LP를 한참 쳐다본다.
난.. 상혁이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생각해보니.. 이 음악으로 끝내는 것도 괜찮겠다.]
[뭐?]
채린이가 짜증난다는 목소리로 묻는다.
[마지막 방송이니까.. 조용하게 마무리 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애.
어때.. 괜찮겠어? ]
[멘트 다 썼는데 이제와서 바꾸라구? 아휴.. 짜증나.. 정말.]
채린인 신경질적으로 마지막 멘트를 볼펜으로 북북 긋는다.
상혁이와 눈이 마주쳤다.
[안 그래도 되는데.. 미안해..]
상혁인 여느때의 편안한 얼굴로 돌아와 있다.
[아냐.. 그렇게 마무리 하면 어떨까 아까부터 생각했었어.
너 때문에 바꾼거 아니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그.. 그랬었니..? 그럼.. 다행이구..]

[채린아.. 멘트 다 고쳤어? 시간 다 됐어. 시작하자.]
멘트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음악이 깔리고.. 상혁이가 시작하라는 손짓을 한다.
[오늘은 한 학년을 마감하는 날입니다.
여러분들..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계시나요?
1학년 여러분들은 이제 후배가 들어오면 막내를 벗어난다는 기쁨에 들떠 있을테고..
2학년 여러분들은 이제 죽었구나.. 하면서 축 처져있는 건 아니죠?
자.. 2학년 여러분.. 힘들 내자구요.
그런 의미로 힘찬 음악으로 문을 열겠습니다. 아바의 댄싱퀸 입니다.]
음악이 나가고.. 상혁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 멘트가 남았다.
[오늘로서 저희들의 방송도 마지막이네요.
그동안 실수도 많았고..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늘 즐겁게 들어주신 선생님과 학생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지난 1년을 차분히 돌아보고.. 새 학년을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음악을 준비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난 1년동안의 추억들을 떠올려 보세요.
옆에 있는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실 꺼에요.
.............
이것으로.. 방송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제일고등학교 방송반이었습니다.]

처음..이 나가고.. 밖에선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마지막 방송을 자축하는 얘기들이 오간다.
잠시 유리문 저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방송이 끝나면 씨익 웃어주던 준상이가.. 잠깐 보였다 사라진다.
오늘.. 나 잘했지? 오늘은 실수 하나도 안했다..?
그리고.. 이 음악.. 듣고 있니..?
너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채린이한테 한소리 들을꺼 알면서도 고른거야.
너.. 지금 듣고 있는거지..? 그렇지..?
이 자리에.. 너도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툭툭..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다.
밖에서 상혁이가 빨리 나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다.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송실을 정리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야.. 드디어 끝났다. 이제 점심시간에 느긋하게 밥 먹을 수 있겠다 야.]
근데 좀 섭섭하다.. 이대로 끝낼 순 없지 않겠냐?
이따 학교 끝나고 뒷풀이 하는거.. 어때 좋은 생각이지? ]
[으이구.. 하여간 놀 껀수 만드는데는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인제 우리 고3인거 잊었냐? 공부해야쥐.. 공부.]
용국이와 진숙이가 투닥거린다.
[야야.. 언제부터 니가 공부했다구 그러냐? 새삼스럽게..? 니들은 어때?]
[좋다.. 방송반 대장으로서 내가 한턱 쏘지. 끝나고 모여.]
상혁이의 말에 모두들 환호를 보낸다.

청소를 마치고 모두들 모여 교문을 나섰다.
상혁이와 난 아이들보다 조금 뒤처져서 걷고 있다.
[아까.. 그 음악.. 준상이 생각나서 고른거지?]
[어..? 으응.... ]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후.. 나도 오늘 준상이 생각 많이 나더라.
잠깐이었지만.. 준상이도 방송반이었는데..
오늘 같은 날 준상이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치..? ]
상혁이가 갑자기 길가 울타리에 뛰어 올라간다.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몇걸음 걸어간다.
[요즘.. 너 이거 안하더라? ]
[응? ]
[너.. 이런데만 보면 꼭 이랬었잖아..근데 왜 요샌 안하니? ]
[ ... 그냥.. 재미없어져서.. ]
멍하니 상혁이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냥 재미없어서.. 그런거야..
그런데 올라서서 비틀거리는 거.. 정말 이제 재미없어졌어.
특별한 사람한테만 손 잡아줄꺼라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럼 뭐하냐구..
이제.. 다 필요없어졌는데.. 이제.. 내 손 잡아 줄 사람 같은건.. 없는데..
인제 손 내밀 일 따윈.. 하지 않을꺼야..
하나도.. 재미.. 없어.. 하나도..
**************************************

겨울연가 사람들 녹차향 글방 펌













댓글 '3'

소리샘

2003.07.07 09:28:11

정말 유진이가 그랬을 것 같아서 흠짓 놀라게 되네요
녹차향님 글 읽으면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유진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나 싶죠
이 글은 아주 길답니다 10년 세월이니 좀 지루하셔도 천천히 봐 주세요
얼마나 힘들게 유진이가 10년을 보냈는지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면서 ,,,

★벼리★

2003.07.07 17:51:46

그랬구나, 그랬었구나..그렇게 생각하게 되네요..
유진이가 그 이후론 높은데 올라가서 일자로 걷기도 안하고.. 준상이 없는 10년이 그랬었구나..방송반 모두에게도 유진이에게도..
소리샘님 재밌게 볼께요..^^

코스

2003.07.07 20:12:19

맞아요!! 소리샘님...매번 읽으면서 녹차향님이 유진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시는지...놀랄때가 있답니다.
맞아..그래..그랬을꺼야..하면서요.ㅎㅎ
매번 좋은글 감사드리구요...지루해 하지 않으면서 천천히 글을 즐길께요.
소리샘님...무더위에 건강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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